그녀를 사랑합니다 - 1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11.01.24 07: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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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의 영락제는 자신의 정통성으로 인한 왕권의 약화를 염려하여 대규모 남만의 원정을 강행하게 된다.병사 수의 압도적 우위로 쉬운 승리를 예상했던 영락제였지만, 남만과의 전투는 생각처럼 흐르지 않았다.온갖 독초, 험악한 산세와 수풀은 병사들을 지치게 했고, 전투에서 죽는 병사보다 풍토병과 독에 중독되어 죽어간 수가 더 많아졌다. 결국 중앙에선 남만에서의 대규모 병력의 운용이 득보다 실이 많음을 깨닫게 되고, 소규모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전투조직의 필요성을 느낀다. 영락제는 이에 무림이라 불리우는 곳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공의 운용을 바탕으로 강력한 무공을 구사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무림은 영락제의 입맛을 충분히 돋구게 했다. 이에 영락제는 관과 무림의 불가침의 불문율을 깨고는 각 문파와 세가에게 무인들을 차출하도록 령을 내렸고, 문파와 세가들은 황제의 령에 반발하였으나 황제의 계속된 압박과 이어지는 보상에 결국 제자들을 차출해서 중앙으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직전제자나 일류급 무사들을 전쟁터로 보낼 수는 없기에 재능이 없거나 혹은 문파에서 반골로 찍힌 자들을 차출하였고, 황제는 이 사실을 알고 노하였으나 2류 무인들이라고는 하나 일반 병사와 비교하면 월등한 그들의 무력을 보고는 마지못해 이 들을 남만으로 보내게 된다. 자신들의 세력에게 버림받은 자들과 돈을 벌기위해 모인 낭인, 총 55인으로 구성된 '청룡대'는 전쟁의 초반 계속해서 승리하며 남만과의 전쟁을 빠른시일내에 마무리하는 듯 보였다.하지만 이 후 전면전을 피한채 일정한 기준 없이 불규칙적으로 벌이는 유격전으로 전법을 바꾼 남만에 의해 원정은 어느새 5년을 넘게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 전투가 이 전쟁의 마지막이 될듯합니다."

"이봐, 제갈 정말이냐?"

벌써 5년동안 이어진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끝을 이야기 하는 군사의 말에 다음 전투의 작전에 대해 논의 하던 조장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남만의 왕이 전사들과 식량을 한곳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함정이 아닐까?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잖아."

조장 명원이 무표정하고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제갈군은 명원의 질문에 하던 말을 멈추고는 눈을 감은채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는 대장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3년전, 설담 대장에게 당한 상처가 악화되어, 남만의 왕이 위중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5년전, '청룡대'의 대장은 중앙에서 내려온 무관이었다. 하지만 남만과의 첫 전투에서 그는 목숨을 잃었다. 이 후에도 중앙에선 계속하여 무관들을 내려 보냈으나 모두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거나 병1신이 되었다. 애초에 '청룡대'는 군인으로 훈련받은 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강자가 모든것을 가지는 무림이란 곳의 성격상 자신들보다 약한 대장의 존재는 이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주지 못했다. 이런 충성심의 부재는 결국 우두머리의 목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중앙에선 더이상 무관들이 내려오지 않았다. 명령권의 부재에 '청룡대'는 이합집산으로 날뛰었다. 민가를 습격하고 죽이고 짓밟으며 약탈했다. '청룡대'첫 전투가 끝나고 혈향을 지우기 위해 미친듯이 자신의 몸을 씻었던 대원들은 어느새 혈향이 몸에 깊숙히 스며들어 잘 느껴지지가 않는듯 남만인들의 시1체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할정도가 되었다.

 

"형, 이들도 부모가 있고, 아내가있고, 자식도 있고, 그렇겠지..?"

 

막 전투가 끝나 열기가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밀림에 널린 시체들을 바라보며 만향이 제갈군에게 말했다. 만향의 건조한 목소리에 제갈군은 서글퍼졌다. 어렸을적부터 마음이 약해 항상 눈물을 달고사는 녀석이었다. 사문에서도 그의 약한 성정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제갈군과 함꼐 이 전쟁터에 버려지게 되었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채 서글프게 웃는 만향의 모습을 바라보기 힘들어 제갈군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밥먹다 말고 무슨 흰소리냐?"

 

만향은 이런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다. 전쟁터에 필요한건 피에 미친 한마리 짐승이지 적을 죽이고 슬퍼하는 자가 아니다.

 

"내 손은 더이상 꽃도 난도 만질 수 가 없어. 너무 붉게 물들어버렸어."

 

"흐음. 걱정하지마. 나도 붉게 물들었거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건 다 내머리와 혀에서 시작되었어. 네가 잘해야 몇백명을 죽였다면, 나는 몇천명을 죽였다구."

 

제갈군은 덜익어 피가 흥건한 고기를 던져버리고는 연초를 꺼내 곰방대에 말아 넣고는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그러니, 넌 옛날처럼 꽃도 만지고 난도 만지고 그래도 되."

 

"그게 뭐야."

 

만향은 키득거리더니 자리에 털썩 누웠다. 제갈군은 따라서 누우려했지만 이번에 새로 보급된 상의가 더럽혀질까봐 묵묵히 서서 만향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새로 보급받은 거야?"

 

"그냥 앉아 있는게 편해서 그래."

 

"그렇구나."

 

"응."

 

"....."

 

"....."

 

제갈군은 자신을 올려다보며 그렁거리는 만향의 눈빛에 잠시 주저하더니 눈물을 머금고 털썩 자리에 누웠다.

 

"괜찮아?"

 

"아니. 전혀, 피와 뇌수가 내가 학수고대 하며 기다렸던 상의에 스며드는 기분이 더1러워."

 

"......"

 

"....."

 

이윽고 어색한 침묵이 지속되었다.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연건 만향이었다.

 

"이 전쟁 언제쯤 끝날까?"

 

"글쎄, 우리쪽이나 남만 둘중에 하나가 다 죽어나가면 끝이 나겠지."

 

제갈군은 허공에 연기를 내뿜으며 쓰게 말했다.

 

"만약에 말이야, 남만의 왕과 화해를 한다면 말이야..."

 

"그런 약한 생각은 버려.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 우리와 남만의 지금까지 흘렸던 피들이 용납하지 않을거야."

 

"그렇겠지? 나. 너무, 너무, 힘들때면 어머니의 죽음과 사람들의 비명과 자혜를 떠올려. 그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전부야. 우숩지?"

 

만향의 말에 제갈군은 눈을 감고 지난 날을 회상해본다. 어린시절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찰나적인, 하지만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시간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배다른 형제들. 몇년전까지만해도 뚜렷하게 명암이 구분되었던 얼굴들이 어느새 희미해져버렸다. 잊혀지지 않는건 그들이 제갈군을 버렸을때의 절망과 분노.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며 걷는 인간들을 지탱해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생각하면 미1쳐버릴듯한, 잊고 싶은 기억들이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아주고는 한다.

 

"날이 어두워졌네. 슬슬 돌아가야겠다. 가자."

 

제갈군은 만향을 잡아 일으키고는 전장을 지나 막사로 향했다. 전장에선 병사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꿈틀되는 남만의 병사들을 하나하나 창을 찔러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걷는 만향을 보고는 제갈군은 후우 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마 울고 있는 모습을 병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거겠지. 제갈군은 지금 만향의 모습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전쟁터에 적을 죽이고 눈물 짓는 녀석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힘내. 이곳은 전장이야."

 

제갈군은 자신을 바라보는 만향의 눈에 비치는 여러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만향의 눈을 바라 보던 제갈군의 의식에 순간 어둠이 내렸다. 한줄기의 빛마저 사며버린 완전한 어둠이었다. 제갈군의 목구멍 조 깊은 곳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형, 갑자기 왜그래?"

거무 스름한 아지랑이들 사이로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만향이 보였다. 제갈군은 비틀하며 뒤로 물러 서더니 이내 곧 자세를 바로 하고는 만향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거뒀다.

"아, 걱정하지마.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래.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신속히 끝내고 돌아간다."

걱정스레 쳐다보는 만향을 안심시킨 제갈군은 병사들을 재촉하였다. 무심한 눈빛으로 시체들 품을 뒤져 전리품을 챙기는 몇몇 병사들을 바라보며 제갈군은 작게 중얼거렸다.

 

"전쟁이란건 참 편해. 명분도 인의도 하물며 죄책감또한 지워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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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일이 수작업으로 필터링 했네요 ㅠ_ㅡ

이번엔 연중하지 않고 꼭 완결까지 할 생각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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