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 부탁드립니다.”

“허...참. 그러니까 그거 뭐 알라딘인지 아라비안 나이튼지에 나오는 그 지니란 말씀이시죠?”

“넵.”

남자는 잠시 지니라 자칭하는 신사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흠...그런가요? 지니라면 전 좀더....음 뭐랄까....몽실몽실 하다고 해야하나 뭉개뭉개 하다고 해야할까. 좀 그렇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요. 머리에 깃털이 달린 터번 같은것도 두른고 말이죠.”

“하하하. 그건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선생님에게 보이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선생님의 상상력이 투영된 결과에 불과하거든요.”

“네? 지니가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띠고 있을 거라는게 전적으로 나 자신의 상상이란 말인가요? 디즈니에서 내놓은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신사는 별다른 대꾸없이 어깨를 한번 으쓱 들었다 내려놓았다.

“하하. 다음에는 트럭을 몰고 온 택배아저씨가 산타크로스라고 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유머와 냉소 양쪽에서 모두 실패한 맨트를 무마하려는 듯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전부 나의 상상이라. 그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롭니다. 선생님”

“지금 이게 나의 꿈이라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아저씨의 꿈속에 들어와 있다는 건가요? 병마개를 연 순간 꿈에 빠져 들었다는 건가요 아니면 조난당한 꿈을 꾸다가 병마개를 연 순간 또 다른 꿈에 빠져 들었다는 건가요? 그도 아니면 내가 이제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그 찰나적 무한의 시간에 서 있다는 건가요? 음...이건 좀 그럴 듯 하네요. 최근 자살이란 단어를 머리에서 떨쳐내 본 순간이 없었으니까.”

신사는 호감을 표하는 웃음을 싱긋 지어 보이고는 대답했다.

“선생님 재밌는 분이시군요.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인데 선생님처럼 재밌는 분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그전에 잠깐 계약 조건에 대해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일은 일이니까요. 뭐 선생님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하지만 소원은 3가지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소원은 들어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제가 뭐 저기 위에 계신 분처럼 전능한건 아니라서요, 죄송스럽게도 일부 소원에 대해서는 제한이 있다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수리된 소원에 대해서는 사후 취소나 AS도 불가능 하오니 이 점에 대해서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명함을 받아든 순간부터 띠고 있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거 장난은 아닌 모양이네요? 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나의 상상속의 지니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쪽이 결국 나의 상상의 산물이라면 대충 소원의 메카니즘에 대해서도 알 것 같구요. 결국은 제로섬이죠? 내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다른 누군가로부터 돈을 훔쳐다 주는 것 같은. 그렇죠?”

“대단하신데요? 영업 비밀이라 제가 정확하게 그 메커니즘을 밝힐 수는 없지만 선생님 말씀이 딱히 틀렸다고도 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오해하고 계신게 있으신거 같은데, 저의 존재 자체가 선생님의 상상인 것은 아닙니다. 단지 고객과 가장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고객들이 각자 가지고 계신 이미지에 맞추어 겉모습을 바꿀 뿐인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실제란 말씀이죠?”

“실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어쭈 이거봐라?

“흠. 하지만 내가 가진 지니에 대한 이미지라 하면 말이죠. 그렇게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소세지를 빌었더니 화가난 마누라가 소세지는 코에나 붙여버리라고 두 번째 소원을 빌고, 결국 소세지를 때어 달라는 것으로 세 번째 소원을 빌어버린 동화는 짖굳지만 좀 귀여운 측면은 있죠. 하지만 언젠가 보았던 ‘위시 마스터’ 라는 삼류영화에서는 소원을 악의적으로 해석해서 결국 소원을 빈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그런 악마적 존재로도 표현하더군요. 동화라는게 잔혹성이 감추어지고 결국은 아이들이 듣기에 적합한 형태로 순화되어 전승된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지금 제가 비명을 지를 타이밍을 이미 놓쳐 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선생님도 참. 정말 위트 넘치십니다. 언제 일 얘기 빼고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 그전에 일단 시험삼아 하나 빌어보는게 어떠시겠습니까?”

남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다른건 됐고 리셋버튼이나 하나 주시죠?”

“네?”

“리셋버튼이요. 누르면 꺼졌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거 있잖아요.”

“아...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좀....그러니까 그게 시간의 가역성에 관련된 부분이라서요. 저희 알고리즘에서는 작동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게....”

신사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말을 흐리다 다시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리셋버튼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요새는 로또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걸 많이 선택하시죠.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남성분들 같은 경우에서는 전 세계의 최상급 미녀들로 구성된 하렘을 많이들 요구하시고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성형 대박 같은 것도 많이 하시구요. 역대 누적 순위로만 보자면야 영생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습니다만...”

“영생이라구요? 불과 삼십 몇 년 산거에 불과한데도 리셋버튼이 필요할 지경인데 영생이라뇨.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네. 첫 번째 소원 수리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