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와 요술램프3

gubo77 작성일 12.08.18 0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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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한 듯 잠시 멍하니 신사를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이거. 완전 당했네. 저보고 재밌느니 위트가 있느니 하시더니 정작 정말 재미있으신 분은 여기 따로 계셨네요. 그런 종류의 트릭은 따로 교육 받고 그러는 건가요? 어디가서 양아치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을거 같은데...”

 

아이고 선생님. 좀 봐주십시오. 저도 정말 창피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야 개인적으로야 고객님의 소원을 모두 최선을 다해 진심을 담아 들어드리고 싶지만 위에서 방침이 그러지 못해서 말이죠. 모든 소원을 최선으로 들어드리자면 저희로써는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저같은 영맨은 왠만하면 소원 한두개 정도는 이런식으로 적당히 뭉개도록 압력 같은걸 받게 됩니다. 이런걸 얼마나 잘 하느냐가 또 실적에 반영되고 하다보니까요......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때만 해도 고객님과 유대감 같은게 있었고 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소원을 들어드리다 보면 자부심 같은것도 느껴지곤 했는데....요새는 뭐 낭만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어디가서 양아치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죠. 그래도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니 정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나네요. 그럼 저도 만회도 해볼겸 해서 남은 두가지 소원은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아니. 제가 뭐 나무라는거 아니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애초에 소원 같은걸 바랬던 것도 아닌데요 뭘.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자면 남은 소원은 두 개가 아니라 한 개 뿐 아닌가요?”

 

? 수리된 소원은 한 개 뿐이니 두 개 남으신게 맞으신데요.”

 

에이, 아저씨. 또 왜그러세요. 제가 갑자기 부자가 되면 뭘합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야죠. 소원 한 개는 무조건 정해진거나 다름없으니 남은 소원은 한 개가 아니고 뭐랍니까?”

 

아 선생님. 조금 전에는 제가 비겁했던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저한테도 나름의 명예라는게 있는데 말이죠. 저는 고객님들이 저를 발견하셨을 때 처해 계신 상황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립적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던 것도 선생님이 여기에 있던 것도 어디까지나 우연이 겹친 것에 불과할 뿐이고, 제가 선생님이 처해 계신 상황을 일부러 유도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소원 한 개는 무조건 정해진 것이라 하시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여지도 있는 거구요. 그런데 그걸 마치 제가 또 무슨 꼼수라도 부린 양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로써도 기분이 딱히 좋다고 할 수는 없겠죠. 물론 선생님이 갑인 것은 맞으시지만 그렇다고....”

 

~~. 아니 제가 뭐랬다고 그렇게 정색을 하세요? 그렇게 기분이 나쁘시면 그냥 가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어거지로 공격적인 포지셔닝을 취해서 불리한 입장을 역전이라도 시켜 보시겠다는 겁니까? 제가 갑자기 픽업 아티스트에게 작업당하는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라도 된거 같네요. 그런것도 전부 교육 받으시나봐요?”

 

신사는 잠시 표정없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범한 것 같습니다.”

 

실수는요. 제가 뭐라고. 그냥 혼자 알아서 할테니 신경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아닙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섬 밖으로 나가는 부분은 제가 서비스로 그냥 들어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아이고 뭘 또 그렇게 까지야....그건 그렇고 아까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섬 밖으로 내보내고 소원 둘이라고 후려치지 않은 걸 보니, 아저씨가 사기꾼이던지 아니면 정말로 진지하던지 둘 중 하나이긴 하겠네요. 저로써는 어느쪽이든 상관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요.”

 

역시 선생님 유머감각은 일품이십니다.”

 

남자는 신사의 말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해변으로 걸어나갔다. 다시 쓰레기들을 살피는 듯도 보였지만 한동안 바다 멀리를 바라보기도 하는 등 딱히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해변을 거닐던 남자는 신사를 처다보지 않은 채 마치 혼잣말을 하듯 말을 꺼냈다.

 

내가 갑이라....”

 

, 선생님?”

 

아까 그러셨죠? 내가 갑이라고.”

 

. 맞습니다.”

 

살다보니 내가 갑도 해보고 참 별일이네요. 그런데 말이죠

 

네 선생님.”

 

혹시 그런말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공짜 점심은 없다는거.”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하잖아요. 소원들 들어주는 사람은 아저씨고 이득보는 사람은 난데, 내가 갑이라니요. 내가 몇 년 사회생활 하면서 보니까 기분 내는 사람은 갑이고, 재미보는 사람은 을이라 이거죠. 근데 나는 기분도 내고 재미도 보는거니 이건 영락없는 공짜점심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그러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줄도 알고 그래야 하는데 내가 워낙에 성격이 삐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공짜라고 그러면 괜히 뒤통수가 따끔거려서 말이죠.”

 

신사는 아무 말 없이 굳어진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자기가 정말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나보군. 좋아. 그렇게 선수끼리 다 까놓고 얘기하자하니 더 이상 내숭은 그만두지. 물론 공짜가 아냐. 거기에는 다 대가가 있지. 소원을 전부 들어주고 나면 너의 영혼은 내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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