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찰리가 나타난 때는 타깃의 호흡이 완전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그는 싱글벙글한 웃음을 짓고 있다.
“오늘도 수고가 많았어 로키.”
그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함께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가 눈짓을 하자,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시신을 처리한다. 그가 나에게 율무로 만든 차를 네민다.
“마셔, 마음이 가라앉는데 도움이 될 거야.”
“고마워.”
나는 흐르는 땀을 닦고 호호 불어가며 차를 마신다. 의뢰를 수행할 때는 긴장감으로 정신을 이것 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렇게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니 새삼스럽게 꽃샘추위가 차다는 생각이 든다. 3월 말이어도 확실히 춥다.
땀을 닦은 손수건을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주변을 정리하던 선요원 중 하나가 내게 손수건을 받아들고는 비닐팩에 넣는다. 아마도 그는 현장 주변에 있을 나의 생체적인 증거물을 수집하는 담당인 모양이다.
찰리가 데리고 온 모든 사람들의 정체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현장에서 이들과 몇 번 마주치면서, 내 나름대로 대충 이들의 역할정도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볼 때 이들은 몇 가지 전문적인 업무를 맡았고, 협업을 통해 소위 ‘뒷정리’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금 시신의 배를 갈라 간이며 쓸개며 쓸만한 장기를 확인해 적출해가는 이들을 나는 ‘장기 사냥꾼.’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마, 저렇게 적출해간 장기는 각종 암시장에서 판매되어 ‘우리’의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는데 도움을 줄 터이다.
두 번째로, 지금 붉은색 페인트인지, 아니면 정말 피일지도 모르는 액체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다니면서 벽에 기괴한 표식을 남기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나는 ‘디자이너’라고 이름을 지었다. 물론 저렇게 얌전하게 그래피티를 남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신을 최대한 고어틱하게 배열하는 이들도 있다. 내 나름의 연구로서 저들을 세분화 할까 했지만......... 그냥 포기했다. 어쨌든, 의뢰가 끝난 뒤 신문을 보면, 시신이 아주 기괴하게 일그러졌다거나, 잔뜩 훼손이 됐다거나 하는데, 신문 기자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일부로 과장되게 설정샷을 찍은 게 아니라면, 내 솜씨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디스플레이에 의한 것이다. 난 히트맨이지, 시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 내 일이 아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찰리는 이들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참 징그러운 걸 맡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눈하나 깜짝하지도 않고 이 모든 걸 웃는 낯으로 처리한다. 대단한 리더십과, 더 대단한 비위를 가진 남자가 분명하다.
어찌됐든 찰리의 지도아래 이 모든 과정이 3-4분만에 끝이 난다. 그말인 즉슨, 율무차를 다 홀짝이고 나서, 한잔 더 할까? 하는 그런 고민에 빠져있을 즈음에 끝난단 소리다. 난 찰리에게 한잔 더 달라고 할까 하다가 왠지 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포기해버린다. 결국 난 아쉬운 입맛을 쩝쩝 다시는 수밖에
모두들 철수하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한다. 몸에서 피란 피는 모두 뽑아냈는지, 벽은 처덕거리는 붉은 액체가 잔뜩 묻어있고, 시신들은 ‘처참하게 박살났다.’라는 말이 어울리도록 기괴하게 배열되어있다. 아마 아무리 비위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헛구역질을 참기 힘든 살풍경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두들 땀을 흘려 만들어낸 풍경이라고 생각했는지, 선요원들의 표정에는 뿌듯함에 가까운 표정이 묻어난다.
난 이런 풍경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비록 죽긴 했지만,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헌신 비슷한 걸 한다면, 그 사람도 제법 의미 있는 삶을 산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어쨌든 찰리는 박수를 치며 작업의 끝을 알린다.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수당은 3일 뒤에 사전에 알려주신 계좌로 입금 될 겁니다. 그럼 조별로 해산하도록 할게요. 십장님들은 조원들 인원총화가 다 끝나셨죠? 그럼 1조부터 퇴근하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모두들 동료들에게 간단한 인사의 말을 나누고는 물결을 이루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아침에 보았던 ‘역사의 플랫폼’의 모습을 생각해낸다. 삶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깔끔한 ‘역사’와, 사람의 죽음 뒤에 사람들이 모여든 더러운 ‘뒷골목’
..........난 역설적이게도, 후자의 장소가 삶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Channel 2. 아이리스
저녁미사에, 이어지는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서 전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오동나무로 짜여진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가지런이 정돈된 책장.......... 이 방에 늘 올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 방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제 가슴 한 구석이 뿌듯해짐을 느낍니다.
이 방을 얻기 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던가요.
이곳 수녀원에 부속된 고아원에서 가장 얻기 힘든 단어가 있다면 바로 ‘개인의 소유’입니다. 옷이고 책이고, 신발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언니나 오빠들에게 물려받거든요. 물론, 제가 쓰던 것을 동생들에게 물려주기도 했지만요.
후원은 끊이지 않지만, 그래도 물자는 언제나 부족하게 마련이랍니다. 그래서 일부 꾀 바른 원생들은 다른이들의 것을 몰래 ‘빌려쓰곤’합니다. 저도 그런 유혹을 단 한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어쨌든 18살이 넘으면 독립을 하는 친구들과 달리, 전 이곳에 남아서 수녀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그 대가로 저는 이 방을 얻었답니다. 처음으로 얻은 ‘나의 것’에 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럼 이 방에서 도대체 무얼 하느냐고요? 뭔가 거창한걸 기대한다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전 이곳에서 ‘아버님’의 말씀이 기록된 경전을 읽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리고 일기를 쓰곤 한답니다.
제 성격이 공상을 좋아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생각에 잠기는 것은 제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답니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고, 경전을 참고해 새로운 관점에서 사건을 조망해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일이 달라졌을까?’라고 생각을 해본답니다. 그렇게 전 제 나름대로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세계의 양식을 창조해보는 거랍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어느 학자가 그러더군요. ‘사람은 주변의 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요. 그래서 세상은 ‘단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자신만의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답니다.
물론, 이 생각은 ‘아버님’의 가르침과 맞서는 것이라, 이 수녀원에선 함부로 입밖에 내뱉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습니다만, 저는 이 생각이 일견 옳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입장과 생각이 하늘에 박힌 별처럼 다양하렌데, 세계를 어떻게 동일하게 볼 수 있겠어요.
저는 일기장에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봅니다. 페터와의 일이 떠오르네요. 그 아이에게 저는 학교에게 그만두지 말라고 하면서, ‘너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즐거움 거리를 주지 말자.’라고 했었죠. 그러면서, 아이에게 ‘사랑’대신 ‘증오’를 주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잠겼었죠.
‘사람의 아들’님은 산 위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었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라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대고, 누가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겉옷 까지도 가지게 하며, 너를 억지로 5리를 가게 하면 그와 함께 10리를 동행하고, 너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너에게 꾸려고 하는 자에게 거절을 하지 말아라.”
이 구절에 나온 대로 제가 페터에게 증오 대신에 사랑을 상기시켰다면 페터는 어떻게 반응 했을까요? 아마, 페터는 제 말을 납득하지 못했을 테지요. 아니, 그동안 묵혀둔 감정의 응어리를 저에게 폭발시킬지도 모르겠어요. 욕을 하고 발을 구르고 날뛰면서 자신의 마음에 담아둔 분노를 모두 쏟아내겠죠.
어쩌면, 가슴속의 모든 걸 쏟아낸 뒤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그 아이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라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지옥 같다고 생각한 학교생활에, 자신만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않았을까요?
Channel 1. 로키
1623년 3월 27일
응접실에 앉아서 조간신문을 읽고 있는데 펜릴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도 같은 신문이 들려있다.
“성난 코뿔소가 신문을 읽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장난스럽게 호들갑을 떤다. 성난 코뿔소라는 언급을 한 것은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애드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번 의뢰를 도운 디자이너가 힘 좀 썼는지, 타깃의 시신이 잔뜩 훼손이 됐었는데, 그 모습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마치 성난 코뿔소가 들이 박은 듯, 시신은 완전히 으깨졌다.’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조용이 해.”
“싫은데? 코부장?”
“코부장은 또 뭐야?”
“코뿔소 부장이라는 거지 뭐. 내가 우리 코부장님을 위해 춤도 만들었다고. 한번 볼래?”
펜릴은 얄밉게 낄낄거리면서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말을 타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제딴에는 원주민의 언어라고 할 만한 괴성을 지른다. 조용한 아침시간, 응접실이 소음으로 뒤흔들린다.
이쯤 되면, 아무리 감정을 억제하는 나라고 하더라도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난 재빠르게 펜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꺾어버린다. 녀석은 얼굴을 찡그리며 죽는 소리를 한다.
“야, 야! 아프다고! 놔줘!”
“이대론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가려거든 떠나가려거든.”
나도 모르게 노랫가사를 흥얼거리면서 나는 녀석의 팔을 더 심하게 꺾는다. 결국 펜릴은 좀 더 끙끙 거려보다가 힘없이 축 늘어져 항복의 신호를 보낸다. 난 녀석을 놔주고, 펜릴은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문지른다.
“빌어먹을, 팔이 빠진 것 같아.”
“빠졌으면 다시 끼워 넣으면 되지.”
내가 녀석에게 손을 내밀자, 녀석은 벌컥 화를 내며 손사래를 친다.
“손 치워 미친놈아! 화가 났는지 기분이 좋은지 분간이 안 되는 얼굴을 해가지고는.”
“별 수 없지. 감정이 없으니, 그걸 투영할 표정이 없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겠어?”
나와 논쟁을 해봤자 건질게 없다는 걸 알았는지, 펜릴은 투덜거리면서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토라가 대신한다.
“오빠, 오늘자 신문 봤어? 어? 근데 펜릴 오빠는 왜 저래?”
“나랑 같이 신문을 봤거든.”
“또 오빠를 놀리다가 봉변을 당했구나? 에이그.......... 하여튼 가끔 보면 둘 다 애야 아주.”
“축하해주러 온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셔?”
“그만 좀 틱틱거려, 안 그래도 표정 없는 사람이 쌀쌀맞게까지 굴면 때론 듣는 사람은 상처 받는다구. 자, 이거봐봐.”
토라는 눈을 흘기면서, 내게 편지봉투를 건넨다. 봉투를 뜯기 전에 슬쩍 훑어보니, 어제의 의뢰를 수임했을 때와 같은 모양의 소인이 찍혀있다. 아마, 이번에도.........
“사실, 축하해주러 온 것도 없잖아 있긴 했어. 축하해 오빠. 드디어 오빠가 대륙 최고의 거물과 거래를 튼거야.”
Channel 2. 아이리스
1623년 3월 27일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떳습니다. 창문가엔 아직 새벽의 어스름이 끼어 어둑어둑한 기운이 방안을 감싸고 있습니다. 전 창가로 다가가, 창틀에 턱을 괴고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기 멀리 있는 숲 너머에는 발간 불씨 같은 것이 하늘에 일렁이고 있습니다. 조짐을 보아하니 머지않아서 해가 떠오를 모양이네요. 가끔 볼 수 있는 이 장관을 보기위해, 저는 숨소리도 죽인 채 저 멀리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발간 불씨가 점점 이 먹빛 하늘에 옮겨 붙어 서서히 하늘 동편을 갉아먹으며 그 궤적을 넓혀갑니다.
이때가 가장 지루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순간입니다.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변하기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을 돌릴 수도 있지만 이때 눈길을 돌린다면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를 놓치게 됩니다. 경험적으로 그걸 알고 있기에, 저는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장관을 지켜봅니다.
동편 수풀 너머로 붉고 노란빛을 내는 활꼴의 광채가 살짝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몸을 약간 수그린다면, 그대로 수풀 속으로 사라질 정도로 그 크기는 작습니다만, 그 광채는 자신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대지의 힘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솟구치려 애를 씁니다. 광채와 지구의 강한 힘이 맞부딪치는 투쟁의 모습을 저는 숨을 죽여 가며 지켜봅니다.
광체는 자신을 끌어당기는 지구의 손아귀와 투쟁하며, 점점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제 빛의 덩어리는 절반 정도 하늘로 솟아났습니다.
한편 하늘에서 꿈틀거리던 불씨는 이제 불길이 되어 하늘의 절반을 살라먹었습니다. 그리고 빛의 덩어리는 이제 대지에서 거의 벗어났습니다. 대지의 손아귀는 이제 빛의 구체를 놓쳐버리고, 마지막 심술을 부리려는지, 그것이 내뿜는 빛의 일부를 끌어당겨, 빛의 덩어리에서 쏟아지는 빛살이 일그러진 채로 대지에 쏟아집니다.
이쯤 되면 빛의 덩어리의 승리가 확실하기에, 전 태양에게서 눈을 돌려 이 대지를 바라봅니다. 어둠속에서 자타의 구분을 잊어버린 만물이 광채의 도움으로 자신을 찾았습니다. 저는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태양이 주는 이 빛은 ‘만물’에게 고르게 주어집니다. 그가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던지, 혹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남을 착취하며 자신의 영달을 취했던지, 그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식물인지, 나아가 한낱 미생물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 빛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의라는 기준에 의해 나눠진 선과 악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적인 게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 세계에 거하는 피조물 중에 인간만이 정의의 이름으로 동족을 심판하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영양을 사냥하지만, 남겨진 영양은 사자를 비난하지 않잖아요. 태양이 주는 이 초인적인 스케일에 저는 자신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