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05

갑과을 작성일 14.01.01 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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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파티 플래너와 토라 사이에 격한 논쟁이 벌어진다.

 

음.......... 격한 논쟁이란건 어쩌면 나의 터무니없는 속단에 불과한 걸지도 모르겠다. 난 그들의 대화를 전혀 듣고 있지 않으니까. 단지 내가 격한 논쟁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그녀들이 꽤나 격양된 목소리와 어조로 서류를 탕탕 내려치며 때로는 각종 ‘변수’들을 들먹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세운 비상한 계획에 감탄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등 자축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이야기 인 것 같은데 왜 끼어들지 않느냐고? 우문인 것 같아서 굳이 대답을 해야 하겠냐만은 굳이 대답을 하자면, 나에겐 이런 이야기가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히트맨이다. 누군가를 죽였으면 좋겠다는 의뢰를 받으면,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계획을 세우고 변수를 고려하는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난 그저 지정된 장소로 정해진 시간에 가서, 타깃을 만나고 그를 제거하면 될 뿐이다. 난 그것이 내 도리라고 생각한다.

 

컨셉이 어쩌고, 장비가 저쩌고 해도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 외의 것은 사람의 목숨을 내가 거두는 것에 하등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취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것은 주제에 어긋나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사상을 이들에게 말한 적이 없어서, 나는 때론 곤란을 겪고는 한다. 예를 들자면

 

“그럼 로키 오빠에게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죠.”

“좋아요. 어차피 본인이 할 일인데, 우리끼리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보다 로키씨가 가장 마음에 드는걸 고르면 되겠네요.”

“그래서 오빠 생각은 어때?”

 

지금과 같이 아무런 의견이 없는 내게 ‘나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그렇다. 애초에 생각이 없으니, 그걸 표현할 언어가 없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이 가장 곤란하고, 그리고 싫다. 그들은 지금 나무 아래에 누워서 물고기가 떨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는 나무의 입장은 그저 미안할 수 밖에........

 

어쨌든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침묵이 흐른다. 말이 많은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런 잠깐의 침묵 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아우 진짜 이건 뭐 돌부처랑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짜증의 포문을 먼저 연 것은 토라였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고는 내게 쏘아붙인다.

 

“또 이야기 안 들었지? 도대체 이 중요한 회의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래요 로키씨 이건 당신 일이라고요. 아무리 당신이 솜씨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여유롭게 손 놓고 있으면 우린 뭐가 되냐구요.”

 

하아.......... 그래서 내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아직 모든 감정을 청산한건 아니었는지, 짜증이란 감정이 울컥 쏟아지지만, 가슴팍에 달린 ‘비정한 마음’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 해시시 용액이 핏줄로 흘러 들어간다. 난 해시시에 취해 약간 몽롱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취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짜증이 풀릴 때 까지 몇 번 더 언성을 높이다가 토론을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난 해시시 덕분에 처음의 평온함으로 돌아가 이들의 감정선을 관찰하는 역할을 취한다.


 

 

 

 

 

 

Channel 2. 아이리스

    

마르다 수녀님과의 짧은 여정은, 고아원 중앙현관에서 끝이 납니다. 이제 수녀님들의 업무 시간이 가까워졌으니까요. 마르다 수녀님은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고는 총총 걸음으로 달려나갑니다. 이제 현관에는 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약간의 긴장 탓인지 어께가 굳어서 그걸 풀기 위해 연신 어께를 빙빙 돌려봅니다. 참 시간이 흐르긴 흘렀어요. 그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긴장을 할 정도로 어려운 사이가 되어버렸으니 말이에요.

 

사실 원장 수녀님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 인식이 확대된 탓이겠죠. 아무것도 모를 때는 마냥 어머니 같은 분이었을 뿐인데 점점 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원장 수녀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알게 되면서, 제가 어려운 분이라고 혼자서 생각하게 되어버린거죠.

 

어쨌든 저는 소포를 들고 그걸 전해 드려야 합니다. 저는 심호흡을 하고 문가로 손을 가져다 댑니다.

 

“어? 무슨 일이니 아이리스?”

“!!”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등 뒤에 원장수녀님이 서 계셨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원장수녀님!”

“그래, 좋은 아침. 그런데 이 아침에 무슨 일로 온거니?”

“아. 그게........ 전해 드릴 물건이 있어서요.”

“그러니? 그럼 들어오려무나.”

 

원장 수녀님을 따라 저는 집무실로 들어옵니다. 막나무로 짜여진 조잡한 책상과 의자,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놓인 성모상, 때가 타다 못해 표지가 너덜거리는 성경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방은.......... 그대로입니다. 원장 수녀님과 저의 관계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게 변해버렸지만, 이 방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모습 그대로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걸까요? 전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쇠고기 스프를 대면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듭니다. 마음 한 구석이 따끈한 그런 기분이 들어요.

 

“어서 들어오렴, 차라도 한잔 마시겠니?”

“아........... 아니에요 오전에 구빈원에 가야 해서요.”

“하하, 아이리스도 이젠 어른 다 되었구나. 이렇게 책임감도 있고 말이야........ 그래도 이 어머니가 주는 차니까 잠깐 책임감은 낼놓고 한잔 마시렴. 아니면......... 이 어머니가 불편해서 그러니?”

 

전 왠지 제 생각이 들켜버린 것 같아서 원장수녀님께 차 한잔을 부탁드립니다. 원장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보온병을 들어 찻잔에 찻물을 따라주십니다. 어느덧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두 개의 찻잔이 책상 위에 놓여집니다.

 

“그래, 네가 소포가 낸 수수께끼를 풀었다지?”

“어라?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원장 수녀님은 대답대신 미소를 지을 뿐이십니다.

 

“이게 바로 그 소포구나. 혹시 열어보았니?”

“아니요. 엄연이 수녀님께 온 소포인데 제가 뭐라고 열어보겠나요?”

“흐음......... 내 소포인건 맞는 말이지만, ‘제가 뭐라고.’라는 표현은 좀 뺏으면 좋겠구나. 넌 소중한 나의 딸이란다.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원장 수녀님은 소포를 한쪽 구석에 밀어놓고는 제 얼굴을 빤이 바라보십니다.

 

“아이리스, 이 방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니?”

“글쎄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 방은 그대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그렇게 생각했다니 다행이구나. 최근에 길고양이 하나와 정을 붙였었어.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렸지만 이제 창가에 놓아둔 생선도 곧잘 먹곤 한단다. 그런데 에스더 자매님이 내 방이 많이 낡았다면서 가구를 조금 고쳤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난 거절을 했지. 이대로 방을 고쳐버리면 고양이가 낯설어 할 것 같았거든.”

“............”

 

뜬금 없이 나온 고양이 이야기에 저는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그런 제 생각을 알았던 걸까요? 원장수녀님은 제 눈을 바라봅니다.

 

“아이리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단다. 네가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대단한’사람도 나의 모습중 하나지만, 반대로 네가 그동안 알고있던 ‘어머니 같은’사람도 역시 나의 모습이란다. 그러니까, 너 만큼은 내게 주눅들지 않고 서스럼없이 내게 대해주었으면 좋겠어. 만일 내가 죽게된다면.......... 남들처럼 ‘윗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으로서 슬퍼해 주었으면 좋겠단거야............ 할 수 있겠니?”

“..........원장 수녀님,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 거에요?”

 

제 대답에 원장 수녀님은 싱긋하고 미소를 짓습니다.

 

“여전히 아이처럼 순진하구나.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거지 뭐.”

 

 

 

 



    

Channel 1. 로키

    

토라와 파티플래너의 긴 긴 토론이 끝나고 드디어 뭔가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마치 10라운드 경기가 끝나고 서로를 기쁘게 껴안는 피투성이의 복서들처럼, 그들도 지친 기색이지만 기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도대체 무슨 과정과 곡절이 있는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으나, 이런 장면을 보면 왠지 짠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로타네브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손바닥을 부딪쳐가며 박수를 친다.

 

“고결하신 숙녀들의 지적인 대결을 잘 보았습니다. 어찌 보자면 이런 논쟁과 갈등은 인과율이 비범한 인간에게 내린 낙인이자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더군요. 그럼 지적인 대결을 하시느라 허기가 질 텐데 식사를 하는 게 어떠신가요? 제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의 눈빛에 총기가 어리는 것이, 그들의 의사가 허락의 뜻을 취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출발하자고 말한다.

 

 

 

 

 

 


Channel 2. 아이리스

    

전 원장 수녀님의 방에서 나와 구빈원으로 갈 채비를 합니다. 원장 수녀님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느라 다른 수녀님들보다 훨씬 늦어졌거든요. 아무래도 조금은 힘들지만, 지름길로 가야할 것 같아요.

 

저는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봉사 사역에 필요한 도구를 이것 저것 챙겨봅니다. 제 몸과 손은 책상, 옷장을 정신없이 오가며 물건을 뒤적이지만 머릿속의 시간은 오히려 몸의 시간보다 천천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귓가엔 부스럭 거리는 소음이 들리지만 큰 의미가 있게 다가오기 보다는 웅웅거리며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요. 제 머릿속은 약간 복잡해졌습니다.

 

‘남들처럼 ‘윗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으로서 슬퍼해 주었으면 좋겠단거야............ 할 수 있겠니?’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도대체 원장수녀님은 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그만큼 저를 딸처럼 생각하신다는걸 알려주시고 싶었던 걸까요? 그렇게 ‘당신의 죽음’이라는 과격한 주제를 언급하실 정도로 나의 사랑을 간절하게 구하셨던 걸까요?

 

아닐겁니다. 제가 아는 원장수녀님은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사랑을 구하실 분이 아니란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짐을 지우실 분이 아니란 소립니다. 혼자 힘든걸 참고 계셨으면 참고 계셨을게 분명합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원장 수녀님이 행여나 조만간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는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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