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1624년 1월 9일
“그래서........ 찾아온 게 나다?”
도로시는 담배를 한 모금 빤 뒤에 나를 보며 씩 하고 웃었다. 그 바람에 무어라 형태를 묘사하기 어려운 무형의 연기가 그녀의 벌어진 입 사이로 줄줄 새어나왔다.
“결론만 놓고 보면 그렇지....... 찰리 어딨냐?”
“흐음....... 찰알리가아아아....... ‘어디 있냐.’라아아아......”
도로시는 창을 하듯, 나름 기교껏 말꼬리를 질질 늘이며 담배를 재떨이에 톡톡 털었다. 녀석은 아마 내가 애가 달아서 애원을 하던가, 아니면 화를 내던가 하는 반응을 보여주기를 원해서 저런 행태를 보이는 것 같은데, 비록 금은 갔을지언정 내 가슴팍에 박혀있는 ‘비정한 마음’은 아직까진 안녕하다.
“커피 한 잔 할래?”
“율무차는 없냐?”
“못 보던 새에 아재취향이 되셨어? 무슨 16세기도 아니고.......”
이 말을 필두로 한참을 투덜거린 끝에, 결국 녀석은 내 잔에 커피를 채워주었다. 참....... 저럴 거면 뭐 하러 굳이 물어본 걸까 싶다.
“놀라운 일이야? 예전에는 사람을 찾으려면 당신들에게 갔으면 되었는데, 이젠 당신들이 사람을 찾으려고 전당포집 문신쟁이 년을 찾아올 줄이야.......”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
도로시는 한 번 더 나를 도발하려 했었지만, 오히려 내 반응이 영 미적지근한 게 그녀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인지, 투덜대며 담배를 비벼 껐다. 녀석의 손에 들린 담배는 ‘치익’하는 단발마를 내며 그 자리에서 구겨졌다.
“자기도 바뀌었네. 전엔 재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지독히 재미가 없어졌지.”
“하루 이틀 일인가?”
“아니,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세상은 날로 발전하고 있는데, 왜 자기는 이 시국에 역주행을 하고 있는 거야? 아오! 진짜....... 목각인형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찰리는?”
그녀는 나를 빤히 보다가....... 소파에 몸을 던지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소파 위에서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댔다.
“워터프론트 어딘가에 짱 박혀 있갔지 뭐...... 근데, 찾아봐야 별 소용 없을걸?”
“왜?”
“허허, 진짜 니들 어쩌다가 이리 되었지? 소식이 완전 깡통인 걸? 걔 이제 좆 됐다는 소문이 이 바닥에 파다하다고.”
도로시의 말을 듣다보니 의문이 들었다. 찰리의 신변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인가?
“당신네들하고 계약 끊으면서, 그동안 관리해오던 자금을 슈킹깠다나? 그래서 그 새끼 밑에 있던 선요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 새끼 찾아다니고 있거든. 라스알게티 선요원 전부가 나섰으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겠지 뭐.”
도로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풀린 눈으로 킬킬대며 웃어댔다. 녀석의 즐거운 기색과는 별개로,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젠....... 찰리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에게는 더 이상 이용가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요원이 궤멸되었다 해도, 구심점이 되는 자를 설득하면, 그 조직을 다시 수복할 수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글러먹은 셈이다. 이제 선요원을 활용하는건 사실상.......
“근데, 자기랑 이야기를 하다가 든 생각인데 말이야........ 말해도 돼?”
“말하지 마.”
“굳이 꼭 찾는 사람이 ‘찰리’여야만 하는거 아니야? 보아하니 선요원을 이끌만한 사람이기만 하면 누가됐든 상관이 없을거 같은데.”
“.........”
도로시의 말은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던 내 의식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정신을 번쩍들게 만들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찾고자 하는건 ‘선요원을 이끌만한 사람’이지 꼭 ‘찰리’여야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앞서 지부장이 빠져있던 ‘프레임’의 함정을 지적하며 활로를 개척했었는데, 정작 나도 ‘프레임’의 함정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나는 도로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웬일인지 평소처럼 입을 나불거리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더 말해봐.”
“말하지 말라며.”
“내 손가락이 니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기적을 보고 싶냐? 그 와중에 놀릴 생각을 하고 있구먼.”
“눈치깠어?”
도로시는 낄낄대며 내 쪽으로 시나브로 다가왔다. 그 양태가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녀석이 처음부터 내 옆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그래. 너도 발이 제법 넓은 편이었지.”
“그럼, 어찌보면 찰리보단 내가 더 나을수도 있을걸? 녀석은 뭐랄까...... 예술가 쪽이라면. 나는.......”
도로시는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내 얼굴로 연기를 훅 뿜어냈다.
“진짜 나쁜 년이거든.”
“그럼, 선수끼리 바로 조율부터 해볼까?”
“오......”
녀석은 만족스러웠는지 내 손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간질이듯이 쓰다듬었다.
“난 이런 결단력 쩌는 남자가 섹시해 보이더라.”
Channel 2. 아이리스
1624년 1월 9일
수녀라는 직업의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사회가 그동안 눈을 감고 모른척 해온 것들을 많이 보아온 편입니다. 종류야 여러 가지죠 뭐. 가난한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 이 사회의 부조리가 재생산되는 것들........ 이런 단편적인 것 말고 장편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첫 발을 디디고, 늙어서 더 이상 당당하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며, 병들어 몸이 부자유함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받으면서, 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것들을 보아왔지요.
이런 긴 호홉의 시간적 흐름을 가리켜 라스알하게의 이교도 현자가 말하기를 ‘생 로 병 사’라고 한답니다. 한편, 또 다른 현자는 사람의 인생을 다른 식으로 요약하기를 ‘관 혼 상 제’라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쪽 사람들은 뭔가를 네 개의 글자로 표현하는 걸 참 좋아라하는 것 같지요? 뭐........ 이교도의 사례를 예로 드는 게 ‘책임 있는’ 종교인으로서는 좀 어긋나 보일 순 있는데 뭐 어쩌겠어요. 일단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는 앞서의 네 글자들 중에서 ‘병 과 사’ 그리고 ‘상과 제’의 케이스를 많이 접했던 것 같습니다.
‘신은 없다. 아니 죽었다.’라고 이야기 하며, 저희를 가리켜 ‘죽은 사람 팔아서 잿밥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백 보 정도 양보해서, 이제껏 죽은 이에게 바친 걸로 연명해 왔다고 하더라도....... 제가 지금 마주하는 죽음의 형태는, 사회가 ‘이것마저도 눈을 감고 모른 척 할 정도로 비위가 강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염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도 민망하게 처리된 시신에, 그들은 기름을 끼얹고 그대로 불을 당겨버렸습니다.
“.......으윽!”
살타는 냄새가 연기와 함께 저희들에게로 훅 끼쳐 들어왔을 때, 제 입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건....... 의지의 문제를 넘어섰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좋은 말을 가져다 붙여도, 이 연기의 본질은 시체인걸요. 그런 생각에 제 머리칼은 저절로 곤두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시체 무더기 속에 파묻혀버린 것 같아 솔직히 말해 역겨운 기분이 들었거든요.
“........ 괜찮아요.”
칠성이는 그런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남들 몰래 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채 다섯 마디도 되지 않았지만, 그 말속에는 수없이 많은 말이 함축되어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무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역한 기분은 차차 가라앉고, 물결치던 감정선도 차차 그 진동이 가라앉았지요. 종당에는 저는 시신이 다 탈때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찬찬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시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역겨운 연기’와 ‘초록빛을 발하는 불꽃’을 모조리 토해낸 뒤에 더 이상 그것들을 발하지 않는 검게 그을린 뼈만 남겨두었습니다.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그 뼛조각을 함께 지켜보았던 염장이 아저씨는 이제 기름 통 대신 망치를 대고 천천히 뼈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과감하게 내리치며 뼈를 크게 잘라내더니, 뼈가 어느 정도 부숴 지고 나서는 조각들을 막자사발에 담아 서서히 갈아댔습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타고난 뒤의 뼈는 그 주인이 숨을 거두기 직후 때 보다 더 잘 부스러지는 것 같아요.
뼈는 이윽고 곱게 갈린 가루가 되었고, 염장이는 그것을 유족에게 건넸습니다. 유족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뼛가루를 개천에 뿌렸습니다. 네....... 그 개천은 저희가 아침식사 후에 설거지를 하기 위해 물을 긷어다 쓰는 바로 그 장소였지요.
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신음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대신에 눈을 질끈 감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손을 잡은 칠성이는 제게 힘을 주려는 듯 그 손아귀에 더 힘을 주었지만........ 솔직히 두 번째 찾아온 역겨운 기분의 강도는 앞서의 것 보다 훨씬 더 강했습니다. 아니........ ‘훨씬’이라는 표현은 그 격차를 묘사하기엔 너무 부족했어요. 뭐라고 묘사를 해야 할까요....... 터무니없이 더 강하다? 어쨌든 그 강렬한 역겨운 감정은 저로 하여금 다른 행동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전....... 결국 칠성이의 손을 뿌리치고 골목으로 뛰쳐 들어갔어요. 경황이랄 게 없었던 저는 일단 몸을 기댈만한 기둥에 손을 얹고서, 오늘 아침에 제 뱃속을 채웠던 모든 것을 그대로 토해내었습니다.
그런 저를 언제 따라왔는지 아주머니는 연신 괜찮다라는 말을 하시면서 제 등을 쓸어내려주었습니다.
“다 끝났어.......”
“우으...... 이건.”
“그래, 이 장면을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너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곤 하더구나.”
“장례라 할 수 없어요. 이건........”
“시체유기지 그래.”
“이곳 사람들에게는 망자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사람의 죽음을 저런 식으로 대할 수 있는거지요?”
“굳이 대답을 하자면........ ‘결국 남은 건 살아있는 사람이니까.’라고 해두자꾸나.”
“네?”
저는 아주머니의 선문답이 무슨 말씀인가 싶어, 입가의 토사물을 닦아낸 뒤에 아주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당신의 앞치마로 제 입가를 마저 닦아낸 뒤에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너도 이곳에 한 달 정도 살아봤으니, 이곳은 산 사람이 살기에도 좁다는 걸 잘 알거야. 이런 곳에 어떻게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겠니?”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같아요. 한 때 함께 웃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을 저 뜨거운 불 속에 집어 넣는건...... 저라면 절대 못할 거 같아요.”
아주머니는 대답 대신에 제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아까의 화장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망자의 유족들은 여전히 뼛가루를 개천에 뿌리고 있었지요.
“잘 보렴.”
아주머니의 손가락은 유족들을 향해 있었고, 저는 끓어오르는 욕지기를 어쩔 수 없이 꾹 넘기며 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유족들에게는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이 된 것처럼 보였어요. 대다수의 지켜보는 사람들 외에 뼛가루를 강에 뿌리는 이가 있었고,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한 가운데에 한 여자가 흐느껴가며 종이에 적혀있는 것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뼛가루를 뿌리는 이는 상주야. 그리고 저기 종이에 적힌 걸 읽고 있는 사람은 부인이고.”
“........”
“저걸 읽는 사람은 사자가 평소에 가장 좋은 관계를 가졌던 사람이 주로 맡고는 하지. 편지에는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이나 기억나는 사건을 읽는거야.”
“........”
“읽어 내려가면서 결심하는 거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이야.”
“시신을 태운 것에 대한 속죄로 말이에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어쩌면 정말 중요한건 그 사람이 쓰고 간 육신보다는, 사자가 남긴 기억이나 추억이 아닐까? 그 사람을 기억하며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 같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