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36

갑과을 작성일 16.08.11 18: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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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지부장실을 나온 뒤, 나는 도로시에게 커먼브룩까지 데려다 주겠다.’라고 말했지만 녀석은 자기도 가는 길은 안다면서 호의만 감사히 받겠다는 말만 남기고 도망치듯이 지부를 떠났다. 나는 대문에 서서, 언덕길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녀석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수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갔어?”

. 방금.”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토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내 말을 잘 믿지 못하겠는지 문설주에 께끔발을 들어 쓰레기 산의 언덕길을 내려다보며 도로시의 기척을 살폈다. 언덕길을 내려다보는 녀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기....... 난 이만 가 봐도 되는 거냐?”

그래, 뭐 오빠가 갔다고 하면 간 거지 뭐.”

 

토라는 내 어께에 얹었던 손을 떼며 문설주에서 내려왔다. 그래, 무등을 태워달라고 하지 않은게 어디냐. 그거에 비하면 어께 빌려 준거야 뭐.......

 

지금 몇 시냐?”

“1145? 벌써 식사시간이네. 아까 부엌에 들어가 봤는데, 아주머니가 계란빵을 만들고 계시더라고. 내가 한번 맛을 봤는데 말이야.”

“.......오늘은 별로 생각이 없네. 너나 가서 먹어.”

오빠는 어쩌게?”

난 뭐...... 방에서 그냥 쉴란다.”

그래? 그럼 내가 먹고 나서 남겨가지고 올까?”

됐습니다.”

 

나는 토라가 더 붙잡고 늘어지기 전에 서둘러서 그곳을 떴다. 하아.......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냥 찰리를 데리고 오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떠난 여정 치고는....... 돌발 상황도 많았고, 예정에 빗나가는 일도 많이 생겼지. 10을 예상하고 갔다면, 나는 오늘 몇을 건진 걸까? 주판알을 굴려보면....... 3도 못 건진 거 같은데?

 

IATP 인간학 연수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라스알하게의 한 무관이 죽기 전에 자식들과 이별을 준비하던 중에 있던 일이었다. 그녀가 아끼던 아들이 그녀에게 저희에게 남길 마지막 교훈이나 조언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라는 말을 했고, 무관은 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인생사에서 벌어지는 일이 10이라고 한다면, 그중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3에서 4개정도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고사의 교훈은 어떠한 일을 계획하고 기대하더라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수확할 수도 혹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인생이니, 예상치 못한 일에 직면하더라도 허둥대거나 주눅 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삶을 모두 소진하여 얻은 깨달음인지라 인생의 전반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졌고, 그 때문인지 나는 의도치 않게 이 에피소드를 삶의 순간순간에 되짚을 정도로 가슴속에 깊이 새겨버린 것 같다.

 

일은 사람의 마음대로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이 왜 계획대로 되지 않는지 주눅 들거나 분노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정리하며 방문을 여니 내 방에는 답답이가 거울을 보며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아 삐죽삐죽 튀어나왔고, 옷매무새도 조금씩 흐트러진 것이 옷이라도 갈아입은 것 같이 보였다. 으음....... 그런데, 지금 녀석이 걸친 옷은 갈아입기 전과 똑같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웬일이냐? 네가 여기를 다 오고.”

“.......”

 

내 질문에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혹시 내 발음이 녀석에게 알아듣기 힘들었던가, 혹은 지금 답답이 녀석이 다른 생각에 잠겨있느라 내 말을 듣지 못한게 아닐까 싶어 나는 녀석에게 재차 질문을 해 보았지만, 녀석의 입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 내가 괜히 답답이라 별명을 지었겠는가. 어차피 성격이 어두운 것도 아니고, 지금이야 무슨 생각이 있어 저러는 걸테니, 그냥 내버려 두면 자기가 알아서 감정이 풀려 이리저리 말하고 다닐 녀석이다. 공연히 챙겨준답시고 말을 붙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녀석이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 아니....... 오늘 통틀어서 해야 할 일이 그거 하나였으니....... 오후에도 딱히 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 오후에는 뭘 해야 할까.......

 

저기, 로키군.”

? . ?”

혹시....... 바빠요?”

글쎄....... 별로 안 바쁜데? 오후에도 그럴 거 같고.”

 

내 대답에, 녀석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심이 섰는지 마침내 입을 떼었다.

 

오늘....... 일 끝나고. 술동무 해 줄 수 있어요?”

“......?”

.”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의외였다. 녀석이 술이라니.......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 않는가? 근 한 달 동안 녀석을 지켜보면서 녀석이 술을 좋아한다라는 징후 같은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 술 좋아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난 별로 술을 잘 못하는데 괜찮을까 싶다.

 

술동무라.......”

 

하지만 이 겁 많고 답답한 녀석이 이렇게 용기를 내어 나에게 술동무를 해달라고 하는걸 보면. 분명 녀석의 심경에 변화를 줄만한 일이 벌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길래 이런 부탁을 하는 걸까? 솔직히......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안될......까요?”

안될 거 없지 뭐. 일은 언제 끝나는데?”

 

 

 

 

 

 

 

Channel 2. 아이리스

 

많이 기다렸어요?”

....... 별로?”

 

로키군은 심드렁한 얼굴로 별것 아닌 것 같이 말했지만, 그의 발아래에 잔득 그려져 있는 낙서들은 그것들의 창조주와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별로 안 기다렸다니까 그러네.”

 

저는 그의 말에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먹먹하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스벤이 말한 것처럼 저를 잡아먹을 사람은 결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히려....... ‘감정표현이 서투를 뿐인 사람에 더 가까울 지도....... 하지만 일련의 악연들이 저희를 이런 식으로 일그러뜨린 거겠지요.

 

로키군은 멀뚱히 저를 보다가........ 손을 뿌리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계단이 너무 좁아 저희 두 사람이 함께 내려가기에는 힘에 겨웠지만....... 저는 아주 잠깐 이 계단이 조금만 더 늦게 끝났으면.’이라고 속으로 생각해보았어요. ....... 역겹네요. 제 자신이.

 

이런 눅눅하고 진창과 같은 행복감 속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새 계단이 끝나고, 저희는 도깨비 시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문화적인 배경에 차이가 있다 보니, 저는 이 도깨비 시장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를 했었더랬지요. 도깨비라는 단어를 신학적인 배경으로 이해한 저는 그곳이 흑마술이라던지, 악마숭배와 관련된 물품을 파는 곳 일거라고 오해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아주머니가 도깨비시장 다녀오자.’라고 할 때, 바보같이 아 저......그러니까,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다음에 갈게요.’라면서 슬금슬금 피했었지요. 그게 흑마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 그래도 굳이 그 당시의 어리석었던 제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이 도깨비 시장에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숨어있기는 했었습니다. 저희는 시장의 좌판과, 그곳의 사람들을 지나고 지나, 시장 구석에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아까 말했었던 악마의 소굴이지요. 악마와 같이 매혹적인 그런 존재가 숨어있어요. 이 좌판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그 악마가 뿜는 시큼한 냄새가 제 코를 간질였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술이 있지만, 여긴 그딴거 없지.”

정확히 말하면, 그딴게 필요가 없는 거겠지요.”

 

저희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좌판에 턱하니 앉았습니다. 그곳에는 저희 둘 말고도 악마의 냄새에 이끌려 이곳에 주저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손님들 사이를 육덕진 몸매의 매니저가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지요.

 

? 로키 아니야?”

안녕하십니까?”

호오...... 이 여자분은 누구?”

.......아니,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최근에 이곳에 왔죠.”

드디어 이 못난이가 애인이란 걸 만들려고 하는가 보구먼?”

그럴리가요.”

이봐요 아이리스씨. 저 녀석 평소에는 어떤지 몰라도 침대에서는 영 시원치 않으니까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전투에 임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아줌마가.......”

 

주모라고 불리는 이 매니저님은 자신의 개그가 만족스러웠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옹이그릇 한 동이를 탁자에 턱하니 올려주셨습니다. 옹이에는 뿌옇고 탁한 액체가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어어, 술 흐른다. 흘러요.”

아아, 아까운데 이대로 흘릴 순 없지.”

 

로키군은 옹이의 탁주가 흘러내리기 전에 재빠르게 입술을 대어 탁주를 빨아냈죠. 그의 용단 덕분에 탁주는 탁자에 넘치지 않았고, 그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닦으며, 그 손으로 v자 모양을 만들어보였습니다.

 

그럼 한 잔 할까?”

 

로키군은 노란 조롱박에 탁주를 따라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참 인상적인 것이, 라스알하게 도자기라하면 대륙의 귀족들이 껌뻑 죽을 정도로 세심한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스알하게 출신이 만든 이곳의 사람들은 그저 조롱박, 박과 같은 자연물을 그릇으로 대신 사용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것, ‘실제로 사용할 것에 대한 엄격한 분리...... 저 역시 로키군의 잔을 받은 뒤에, 그의 조롱박에 탁주를 한 가득 따라주었답니다.

 

첫잔은 끝까지 다 마시는 거 알지요?”

그럼.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예의이자 범절이지.”

 

저희 둘은 잔을 맞부딪친 뒤에 시큼한 냄새가 감도는 그 우윳빛 액체를 쭉 하고 들이켰습니다. 탁주는 제 혀에 시큼함과 달달한 감각을 남기고서........제 목 너머로 흘러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탁주의 여운은 그 이후부터 시작인지라, 저는 이곳 운터브룩에 발을 디디기 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추태를 부리게 되었습니다.

 

“.............”

맛 어때?”

기가 막히는데요?”

 

물론.......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로키군의 얼굴에서는 감정의 징후라는 걸 눈을 씻고 찾을 수 없었지만, 저를 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서 로키군이 내심 재미있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가 감정이란 걸 표현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는 제 모습을 보며 웃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술 마실 줄 아는 모양인데?”

정확히 말하면 운치를 아는 거죠.”

운치라....... 그럼 얼마나 더 운치를 아는지 확인 좀 해볼까?”

  

 

 

 

 

 

 

Channel 1. 로키

 

우리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나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과 교류를 갖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살다보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볼까? ‘우리에서도 특이한 치로 분류되는 유랑민족인 쥬드라는 족속은 시도 때도 없이 탈무드라고 부르는 것을 즐겨 인용하고는 한다. 짧은 내용의 이야기로 구성된 탈무드는 옛 선인들의 일화나 동물과 동물의 이야기인 우화 등 다양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길고 긴 유랑의 역사와 경험에서 우러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길지도 않고, 나름 촌철살인과 같은 날카로운 교훈도 담고 있어서 나도 어께너머로 즐겨 인용하는 편이다.

 

간단하게 그들의 탈무드를 인용해 볼까? 악마가 길을 가는데, 길가 옆 밭에 한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고 있더랜다. 악마는 농부에게 다가가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고, 농부는 이것은 포도나무라고 하는 건데, 거기서 열리는 과실을 발효시켜 나온 액체를 마시면 기분이 퍽 좋아지더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악마는 술이라는 것을 가지고 재미있는 장난을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농부에게 나도 이 나무를 가꾸는데 도움을 줄 테니, 대신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달라.’라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농부의 허락을 받은 악마는 포도나무에 양과 사자 그리고 원숭이와 돼지의 피를 거름으로 주었다.

 

이윽고 수확의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은 악마와 함께 과실을 수확하여 술을 담가 먹었다. 문제는 그 이후로부터 술을 먹으면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상의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술을 먹고 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양과 같이 순해졌다가, 사자처럼 난폭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음주를 계속하게 되면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러워 졌다가. 종당에는....... 돼지와 같이 추해진다고 한다.

 

말이 좀 길었는데, 내가 본 녀석은 지금........

 

어쭈? 내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잔이 빌 생각을 안한다? 이래스 이 누나 페이쓰를 따라갈 후 있겠어? ...... 쓉어먹을 쉐끼가 빠져가지고.......”

“........”

 

사자인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어디서 두 눈을 부릅뜨고....... ! 눈 안 깔아! ? 그런 식으로 나오면 이 언니가 때찌 할 거야 알았어? 응등이 까봐! ? 등짝 좀 보자고!”

“........”

 

원숭이 같기도 하고....... 도통 감이 오지 않는 가운데,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녀석이 양이었던 적은....... 첫잔을 기울였던 그 찰나의 순간뿐이었다는 거. 녀석은 나에 대한 비난이나 다그치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잔을 탕탕 쳐대는 동안, 나는 녀석의 행동을 분석하고 해석을 해보려고 부단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밝은 미래가 기대되지는 않는 것 같군.

 

는 마! 사람이 그르믄 안 돼! 주모니임, 여기 막주 한 홉 더 주세용!”

내가 뭘 그러면 안 되는데?”

 

실효성이 있으리란 기대는 거의 없지만, 나는 거진 원숭이와 대화를 나눈다는 심정으로 녀석의 말에 대꾸란 걸 해보았다. 내 경험이 맞다면, 이런 시도는 거의 무위에 가깝지만 최근에 읽었던 소설책에서는 원숭이의 지능이 사람들의 노력으로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자신의 연구자와 서투르게 나마 대화를 나누었던 대목이 있었거든, 나도 그 책에 나온 과학자라는 양반처럼 인내와 이해, 그리고 포용력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해 본다면......

 

그걸 아직도 몰라? 세상에 너 진짜 답이 없는 병진이구나! 내가 따라갈 여지도 없이 쌔가 빠지게 도망을 치잖아 엉? 쉐꺄 엉?”

“.......도망? 내가 뭘 도망을 쳐?”

 

역시 소설책은 다 거짓부렁 헛소리였다. 그래, 듣도 보도 못한 과학자라는 이상한 직업을 걸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소설책의 작가 놈이 워낙에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바람에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던 내가 잘못했다. 내일이 오면 당장 그 거짓부렁의 책을 책방으로 가지고 가서 반품을 하거나 환불을 요구할 것이다.

 

일단 내일이 오기 전에 이 오늘이란 놈을 어떻게 어떻게 대충 잘 수습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탈무드는 사람이 술을 먹고 나서 어떻게 어떻게 된다.’라고만 이야기를 했지, 그런 놈들에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한다.’라는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선조의 경험? 인생의 진리? 이렇게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게 무슨 진리라고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선조들이 답을 내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답을 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이곳에서 공연이 소란을 떨었다가는 큰 민폐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녀석에게 혼쭐이 나고 있으면 가부장적인 풍토가 강한 운터브룩에서는 여자한테 잡혀 사는 못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못난 놈이 되자.

 

몰라? 니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이 누나가 직접 알려 줘?”

 

답답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챘다. 덕분에 좌판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테이블로 쏟아졌다. 결심을 하자마자 이렇게 등을 떠밀어주는 녀석의 배려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면서 나는 녀석의 손아귀에서 볼썽사납게 대롱대롱 매달려야만 했다.

 

....... 선생님? 죄송하지만 감히 제안컨대 이 손을 내려놓고, 대화로 이 사태를 함께 해결해 보는게 어떨까요?”

닥쳐 이 병.......신새끼야.”

.”

....... 자꾸 도망치냐고!”

제가요? 전 지금 선생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데요?”

 

워오...... 상당히 대단한 기백이다. 이거 앞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내가 겁을 먹었다고 오해할 정도다. 물론 내 입에서 유래 없이 존대 말이 나오긴 하지만, 지금의 맥락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내 말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나의 용단이자 기지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이 모습을 우리의 누군가가 보지 않았으면 싶다. 아무리 감정이 없는 나라고 하더라도, 작금의 일은 우리의 요원들에게 있어서 석달 열흘 동안의 놀림감이 될거란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나는 녀석에게 화해의 제스쳐를 네미는 한편으로 녀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녀석의 손에 내 손가락을 집어넣어 이 결박에서 풀려나기 위해 은밀한 공작을 펼쳐보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이면작전은 실효가 없어서, 녀석은 내 말을 귓등으로 듣지도 않을 뿐 더러, 내 멱살을 잡은 손아귀에는 도통 힘이 줄어들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그거 말고 이 씨부랄 새끼야....... 난 말이야, 니가 어떤 싀끼인지 존......나게 궁금했다고.......은발 대가리 새끠야. 니가 어떤 놈인지 이해를 해야 엉? 내가 왜 니한테 그런 생각을 했읐는지, 왜 그런 좆같이 혐오스러운 마음을 이 염통에 담아두었어야 했는지 알....... 스 있그든.”

“........”

근데 넌 쉐끼야. ? ....... 니미 말도 제대루 안 나오네. ........ 씨바 내가 이 정도면 로키군을 어느 정도 알 거 같다.’할라가도 쩌만치 도망가 버리고, 또 씨발 존나게 쫒아가서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며는 아닌데?’ 하면서 또 씨바 존나게 도망가 버리고....... 너 지금 나 멕이냐? ? 그런거지 새꺄! 볼따구 대, 볼따구 대라고 씨발 강냉이 다 털어버리게!”

“.......”

 

솔직히 말해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녀석이 이곳에 온 한 달 동안, 나 나름대로 녀석이 나를 알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고 생각 했고, 또 녀석도 이곳에 잘 적응했다고 생각을 해 왔었는데....... 녀석이 이룬 결과에만 시선을 두느라, 녀석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생면부지의 타인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 그리고 그곳에 적응을 하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나도 경험했던 것을 왜 잊어버렸던 걸까? 그리고 그 고충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렇게 술기운을 빌어서 하소연을 했던 걸까. 술기운이 아니라면 멱살은커녕 눈도 못마주치고 쩔쩔매는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해도 할 수는 없지만, 난 녀석이 내게 하는 푸념과 투정에 대해서 어떠한 핀잔을 줄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렇게 투정도 부리는 것이다. 다만

 

안주 잘 씹었지? 그게 니 이빨로 씹는 마지막 음식일거야.”

“........저기요 선생님?”

 

투정이라고 하기엔 좀....... 이거 까딱하다가는 순조롭게 치아를 잃을 판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선생님? 그럼, 일단 뭐라도 물어보세요. 내가....... 아니 제가 선생님이 궁금한 거 다 알려줄테니까. 뭐든지 다 물어보세요.”

그래?”

네 그러니까 이제 그 주먹은 놓아주시고요. 왜냐면 제가 점점 말하기가 힘들어져서........”

그래!”

 

답답이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씩 웃으면서 손을 풀어주었고 나는 그제서야 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변의 시선에서 풍겨 나오는 딱하다라는 감정의 농도가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 씌발 구경났어?”

됐고 얼른 질문이나 들으시지?”

뭐든지 물어봐. 다 대답해줄테니까.”

물어봐?”

물어보십쇼. 전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녀석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제 손가락을 자신의 볼에 짚으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

.”

도로시랑 사귀냐?”

아니요. 그런 정신나간년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조차도 가지고 싶지 않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그럼....... 니가 저번에 말했던 그...... 뭐였지? ‘의젓한 가슴’?”

“‘비정한 마음입니다.”

그래! 그거 맞아 의젓한 가슴이지 내가 그걸 어디에서 많.......이 봤다 싶었거든, 혹시 그거.”

 

녀석의 시선이 내 가슴팍으로 향했다. 녀석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가슴으로 손이 갔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안의 작은 무언가가 매우 위태로워 질 것 같다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 그걸 멈출 수 없었다.

 

니 가슴팍에 박혀있는 거랑 똑같은 거지?”

......그건.”

맞아?”

맞아.”

맞아?”

네 맞습니다. 그럼요.”

 

연관 관계를 파악할 수도, 그리고 왜 했는지도 모를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녀석은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살기를 풀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럼 됐어!”

 

녀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뒤로 고꾸라져버렸다. 내가 재빠르게 녀석을 붙잡지 않았다면, 답답이 녀석의 머리는 그대로 테이블에 찍혀 시원한 바람구멍이 났을 터였다. 꽤나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충분히 재빨랐고, 녀석의 머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소동의 주인공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내 품에 안긴채로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녀석이 술에서 깰 때 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녀석을 내 옆에 앉혀놓고 답답이가 먹다 남긴 막주를 천천히 비웠다.

 

뭘 봐 씨바 구경났어?”

 

 

 

 

 

 

  

Channel 2. 아이리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저는 책과 가까운 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이런 말을 해서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27년 평생을 경전만 손에 쥐고 산건 아니랍니다. 이 세상에 바다와 같이 많은 책이 있는데 평생을 책 한권만 보며 산다면 이 얼마나 팍팍한 삶이겠어요? 그래도, 배운게 도둑질이라 다른 책을 읽어도 경전과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는건 부정할 수가 없다는거겠지만.......

 

경전을 제외하고 제 손을 가장 많이 탄 책은 바로 탈무드였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기록의 민족이라 불리는 쥬드는 수많은 간행물을 펴냈지만, ‘탈무드경전과 더불어 쥬드가 만든 대표적인 서적이랍니다. 둘이 서로 어께를 견주는건, 그만큼 그 둘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경전탈무드를 비교하는 말은 많지만, 제 개인적인 사견을 말하자면........ ‘경전은 위대하거나 엄숙하다면, ‘탈무드는 익살스럽고 친숙하지요. ‘경전이 깔끔하게 칼주름이 잡힌 수트라면, ‘탈무드는 캐쥬얼과 같죠. 그래서일까요? ‘경전은 글자하나, 점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에 비교적 원래의 형태가 잘 유지된 반면 탈무드는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고, 심지어 지금도 그 내용이 추가되고 있답니다.

 

탈무드에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 제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이야긴 이거에요. ‘술이란 녀석은 참으로 고약한 심부름꾼이다. 분명 위장으로 가라고 했는데, 자꾸 머리로 간다.’ 하하, 공감이 가나요? 솔직히 이런말 하면 ...... 재수없다.’ 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 말에 별로 공감이 가진 않아요. 물론 술기운에 추태를 부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지는 않아요. 뉴빌리지까지 갈 것도 없이, 밤늦은 이스트민스터의 번화가만 가봐도 거나하게 취해서 왁자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많이 봐온걸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결국 간접경험일 뿐, 제가 취해서 추태를 부리는 직접경험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취해서 추태를 부려본 적이 있는 사람에 비해 공감의 농도가 짙기를 바라는건 어려울 수 밖에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분명 저는 로키군과 함께 좌판에서 막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겠지만, 양초의 불이 훅하고 꺼지듯 뭔가 기억이 잘려나가고, 저는 지금....... 어딘가에 있습니다. 제가 어느 시점부터 이곳에서 이런 사유를 하고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저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거지요. 그런데...... 여기가 어딜까요?

 

주변을 둘러보니, 듬성듬성 자라있는 나무 말고는 온통 풀뿐인 광활한 초지가 펼쳐져있었어요. 이런 곳은....... 난생 처음입니다. 하지만, 뭔가 아주....... 그립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나 이상하죠? 난생 처음 본 곳인데, 고향을 본 것 같은 그리움이라니. 저는 고향은커녕 부모님의 얼굴도 모르는 고아인걸요.

 

한참동안 이 복잡하고 묘한 감정에 휩싸인채 이 초원을 둘러보다 문득, 저는 이곳에 저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이차!”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을 해봐야죠. 저는 풀밭에 제 몸을 던져 아무렇게나 그대로 드러누워버렸습니다. 그 모양새가 어떻게 보면 추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늘이 맑고, 풀내음을 머금은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와 제 코를 간질이는데 가끔은 이런 사치정도는 누릴수 있는거 아니겠어요? 따사로운 햇살이 제 눈을 자연스럽게 감게 만들어주는 이곳 이곳은 정말.......

 

천국인거 같은데?”

그렇죠?”

?”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제 옆에서 가로누워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화들짝 놀랐죠. 몸도 역시 마찬가지였던지라, 저도 모르게 몸이 벌떡 일어서지더라고요.

 

! 깜짝이야!! 누구세요?”

“.........”

 

남자는 대답대신에, 자세를 고쳐잡아 저와 마주앉으며 제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저를 보는 그의 눈은....... 이상하게도 초점이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깊은 심연과 마주한 기분이랄까? 아무리 소리를 쳐도 대답이 없는 벽을 보는 것 같았지요.

 

우리 구면인데....... 섭섭하려고 하네요?”

구면요?”

 

저는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동공에서 눈을 떼고, 이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나서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력이 일천한 탓일까요? 너무 가물가물해서 통........ 설상가상으로 그는 제게서 어느정도의 반응을 기대하는 얼굴로 저를 보고있었습니다. 저도모르게 등에서 식은땀 한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

 

그의 얼굴은, 차츰 실망감으로 굳어졌고, 제 등에서는 장마철의 계곡마냥 땀줄기가 터져나왔습니다.

 

성흔은 어떻게 됐어요?”

! 그때 그 천사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기억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 수면위로 퐁하고 떠올랐습니다. 반가운 한편으론 참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어요. 왜 그게 이제야 떠올랐던걸까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장난이에요 장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버리면 제가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잖아요.”

죄송합니다! 제가 죽일년이에요.”

 

천사님은 손사레를 치다가 제가 영 태도를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장난스럽게 제 볼을 꼬집었습니다. 그 바람에 화수분같이 쏟아지던 사과의 말이 뚝하고 멈췄지요.

 

고민이 있나 봐요? 이런데 온 걸보면.”

“.......?”

 

천사님의 말에, 문득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딜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이 훅하고 끊어지고, 웬 낯선곳에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상하리만큼 이곳에 대한 이질감 없이 속편하게 이곳에 드러누웠지요. 저란 사람은 참 대책 없구나 싶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인데요?”

글쎄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천사님의 시선이 저에게서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구름 하나없이 푸른 하늘을 보는 그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어요. 지켜보는 제가 보기엔, 마치 푸른 하늘에 메시지가 쓰여져 있고, 그는 그걸 읽어내려고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곳을 부르는 많은 표현이 있어서요. ‘해피플레이스라던지, ‘안식처라던지, ‘방어기제라던지, ‘AT필드의 안쪽이라던지....... 뭐 마음에 드는걸로 골라쓰세요. 아니면 아이리스씨가 원하는대로 하나 짓던가요. 이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당신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경험했을 때, 그로인해 자아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안전장치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안식처........”

그렇게 부르시려면 부르고요. 아무래도 방어기제, ‘AT필드라는건 좀 딱딱하게 들릴수도 있으니 그편이 더 정겹긴 하겠네요.”

만약 그런데가 있다면 평생이라도 있고 싶네요.”

그건 뭐 마음의 주인인 당신의 몫이죠.”

 

저는 초원의 한복판에서 다리를 쪼그려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까만 해도 구름한점 없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조각구름 하나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구름을 보는동안, 천사님은 말없이 한참동안 제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머니를 뒤져 피리를 꺼내 노래 한 소절을 연주했지요. 가사도 없고, 처음들어보는 노래였지만, 이곳 초원과 정말 잘 어울렸어요.

 

백도 말이에요.”

.”

제가 살아가는 삶에 따라서 그 모양이 형상을 갖춘다고 했었잖아요. 최근에...... 형상화 됬어요.”

 

천사님은 제 고백에 피리를 내려놓고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눈도 깜빡이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이 보였죠. 긍정도....... 부정도 없이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좀 예쁜 모양으로 잡힐 줄 알았어요.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라든지 말이에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좀 장난같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개떡 같다고 해야 하나? 하하, 정말....... 더럽게 추하더라고요.”

“........”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니 그냥 생각자체를 안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전 도로시씨와 토라씨를 질투하고 있었나봐요. 정말 지독할 정도로요. 근데 백도를 통해서 그걸 제 눈으로 직접 맞딱뜨리니까, 정말 제 자신이 추악하고 더러운 괴물이 된 것 같아요. 너무......추해요. 내가.”

 

한번 고백을 시작하니 말이 술술 나왔고, 저는 말을 토해내면 토해낼수록 제 마음이 가벼워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일이 무슨 소설책이나 드라마 같지 않더라고요. 고백의 말을 쏟아내는 것과는 별개로, 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제 자신은 한없이 추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입을 다물고 싶었지만, 제 방정맞은 입은 계속해서 제 추악한 감정을 계속해서 배설해냈습니다. 끊임없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이 있다면 아마 제 입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끝이 있었기에, 한참의 말을 내뱉은 뒤에 저는 한숨을 끝으로 제 고백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 아이리스씨.”

?”

사랑이란거 말이에요. 어떤거라고 생각하세요?”

...... 아름답지 않을까요? 지극히 선하고, 희생적이고.......”

사랑이 굳이 선하고 아름다워야 하는 걸까요? 반대로, 증오가 반드시 나쁘고 추한 걸까요? 질투도 마찬가지고.”

? 그건......”

자신이 얻고자하는걸 다른 사람도 똑같이 같길 원한다면, 그걸 꼭 양보해야 하는 걸까요? 나도 가지려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그렇게 양보할거 다 양보하면,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신은 당신의 삶에 칭찬이나 징벌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제가 도와줘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이야기 좀 할게요. 질투, 증오, 경쟁심, 시기심과 같이 나쁘다고 평가를 받는 감정, 그리고 사랑, 포용, 헌신, 양보와 같이 좋다고 평가받는 감정은 모두 유기체의 생존을 위한 거랍니다. 선악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다면, 애초에 사람에겐 선하다는 감정만 들어있었을 테지요.”

“.......”

당신은 선한 사람입니다. 또 한편으론 악한 사람이기도 해요. 인간의 양면성이 얼마나 이 세계에 풍요로운 다양성을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신을 기쁘게 하는지 당신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의 뜻이 그렇다는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죠. 전 그냥 당신이 너무 주눅 들어 있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런 거에요.”

 

천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붙은 풀을 툭툭 털어냈습니다. 저는 일어나지 않고 그가 그렇게 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 전 갈 건데, 아이리스씨는 어떻게 할래요?”

저도 가야죠 뭘. 근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뭐 든지요.”

천사님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계속 천사님 천사님 하니까 낯 뜨겁고 민망해서.....”

 

천사님은 제 말에 씩 웃더니 또다시 제 볼을 꼬집었습니다.

 

참 빨리도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타브리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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