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어찌할거유 대장?”
“이미 삼켜버린걸 어쩌겄어유. 냅두면 똥으로 나오겄쥬. 그리구 이제부텀 이년놈덜은 제가 맡겄슈.”
“이......잉?”
“우짤 도리가 없잖아유. 뒤꽂이는 묵어부렀지, 그렇다구 우리헌티 해를 끼칠 것 같지두 않구. 헛다리를 짚기는 혔지만 서두 저희를 위해서 포위망을 뚫고 온거니께유.”
주우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그의 부하에게 신호를 보냈다. 녹림당원은 주우의 손짓을 보자 우리를 묶었던 결박을 풀어주었다. 나는 팔을 주무르고 어께를 돌려보면서 관절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다행이 크게 결리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다.
“따라와유.”
우리는 주우를 따라 막사 밖으로 나섰다. 끌려올 때는 온전히 살펴볼 수 없었지만, 이곳의 지형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잘 들지 않은 칼로 마구잡이로 깎은 것 같은 험준한 산지가 야트막한 평지를 감싸고 있었다. 평지는 구획화 되어있었고, 구획에 따라 각기 다른 식생이 재배되고 있었다.
“나름 고생을 한 것 같군.”
“뭐가유?”
“땅 말이야.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게 관리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내 말에 주우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벙글 웃었다.
“눈썰미가 보통은 넘는구먼유. 모르는 넘덜이야 우리덜이 배고프고 심드니께 죽창 들고 뎀벼든다고덜 하지마는 경험자로서 나쁜짓도 배고프고 심없으믄 못허유. 생각혀보라고, 먹고 살자구 들고 일어섰는디 허면 헐수록 배고프면 누가 허것슈?”
“맞는 말이야. 이 대륙에 크고 작은 민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내부의 분열로 무너졌거든. 내부의 분열이라고 해서 권력욕? 이런게 아니라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된 거지. 결국은 먹고 살자고 들고 일어난 거니까...... 당신 말처럼.”
“아부지도 녹림당 일으키면서 그걸 강조혔슈. 일단 먹고 사는게 해결이 되야 뭘 혀도 믹힐 거라구.”
“아...... 주운이 너의.”
“잉. 울 아부지요. 나넌 울 아부지 생각하믄 참말로 낭만꾼이라고 생각혀유. 아부지가 구름이니, 비는 그 자식이 되지 않겄소. 허허 참, 낫들고 죽창 매면서 워쩌케 그런 생각을 혔나 싶지 않나유?”
“뭐...... 내 입장에선 낭만이라는 단어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아귀가 들어맞는 말이긴 한 거 같군. 비는 구름에서 비롯되니까.”
이렇게 떠드는 동안 우리는 언덕위에 서 있는 집 앞까지 오게 되었다. 오면서 봤던 대부분의 집들은 흙과 돌로 만든 벽에 짚단으로 지붕을 이어 올린 형태였지만, 이 집은 조금 달랐다. 나무로 된 골재에, 검은색 토기 같은 것이 서로 맞물려서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아부지는 우리는 성젠께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옷 입구, 똑같이 먹구, 똑같은 집에서 살어야 한다구 혔지만, 동지덜은 생각이 달랐슈. 그래두 대장인디 이 정도는 누려야 면구가 살지 않냐구, 이것만큼은 양보 못헌다구 고집을 부리더라니께유. 한창 실랑이를 혔지만 결국 아부지가 포기하셨슈. 그래서 이런 집에 살게 된거유.”
그가 뭔가 변명의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했는데, 집안을 들어가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을 구성한 재료가 다른 만큼, 정말 튼튼하고 질이 확연이 좋아보였거든. 그래도 집안의 내부를 꾸며놓은 가구들은 집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해보였다. 집안과 가구의 부조화는 아마 동료들보다 더 많은 호사를 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었다.
“지 왔어유.”
“옴마 낭군님, 오늘은 일찍 왔네유? 최근 작전 짠다구 새벽별 보며 오시드만......”
“잉. 각시두 잘 있었는가? 오늘은 손님덜이 왔어라. 아부지 뵙겄다구.”
“이잉? 아버님헌티 손님이유?”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아낙은 우리를 상당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을 모두 해석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녀의 눈가에 고여 있던 감정의 파편들을 대충 주워섬겨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맞게 정리를 해보자면...... ‘뭐하러 쓸데없는 일을 하러 온 거지?’에 가까워 보였다.
Channel 2. 아이리스
사모님.....? 아니, 아주머니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주우의 아내로 보이는 이의 안내를 따라 저희는 로트 클라우드가 있다는 방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버님. 주우 왔어유.”
“.......”
“들어가도 될까유?”
“.......”
문 너머로는 대답은커녕 아무런 기척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참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문 너머로 인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음에도 인사를 하는 모습은 뭐...... 라스알하게식의 예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방의 주인이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을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저렇게 자기 멋대로 들어갈 거면, 대체 왜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는지 의문이에요. 참...... 이들의 예법에는 허례허식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응?”
“아부지여유. 아부지. 손님이 왔어유.”
“.......”
“인사들 하셔유.”
“......?”
방안에는 침대가 놓여져 있었고, 그 위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깊이 자고 있던지 저희가 들어와도 반응이 없었어요. 아마 그가 로트 클라우드인 모양이에요. 주우는 아까의 컨셉을 그대로 밀고 가려는지, 곤이 자고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우리를 소개하는 걸로도 모자라 저희에게 한창 잠에 빠져든 노인에게 인사를 하라고 권하기 까지 했습니다. 무슨 동네의 예법이 이런가 싶네요.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방에 멋대로 찾아온 것도 모자라 인사를 하라고 강요하기까지 하다니 말이에요. 항의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지만, 라스알게티에서는 라스알게티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으니...... 저희는 약간 바보스럽긴 하지만 잠을 자고 있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희가 인사를 해도 그는 눈을 뜰 생각조차 없이 곤한 잠에 들어있었지요.
“언제 일어나지?”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겄어유. 한 달 전쯤부터 곤하다구 주무시드마는 그날 이후로 깨덜 못허요.”
로키군의 말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야 주우가 보였던 기행들의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것 같았거든요. 그가 왜 통보하는 식으로 방에 들어왔으며, 잠을 자고 있는 노인에게 인사를 권하는 것...... 그건 로트 클라우드가 깨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저는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주우의 얼굴은 이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어두워 보였어요.
“우리덜도 존나게 당황혔슈. 거사일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가지고 인나지를 못하니께.”
“거사?”
“잉. 우리덜은 ‘라스알하르게타 진공작전’을 준비허고 있었슈. 여적꺼정 파상공세로 원정군에도 피해를 솔찬히 줘버렸으니께 이제는 전면적으로 갔다가 들이박아두 되겄다하는 것이 우리 수뇌부의 판단이었슈. 그래가지고 설라무네 우리도 준비 빡시게 혔쥬. 군량미 늘리고, 무기도 쌔삥으로 갔다가 교체해불고, 군복도 맞추고, 삐라며 삼민기도 맹글고 말이쥬. 이제 거사일만 딱 정하믄 깔끔헌디, 아부지가 거사일 결정을 앞두고 요래 주무시기만 하셔버리네.”
“.......”
“츰엔 우리덜도 돌아가셨나 혔는디, 한지 갔다대면 숨은 쉬시는 거 같구, 가끔 뒤척이시도 하니께...... 암만 봐두 영판 주무시는 거요. 그래서 녹림당원 중에 용헌 무당이 있어가지고 굿도 혀봤는디 아따 무당 하는 말이 요상시러웠쥬. 몸에서 혼이 빠져 나간거 같다나 뭐라나. 그니께...... 몸이 주인을 잃어버리고 텅 비어버렸다는 거요.”
“......”
자신의 아비를 내려다보는 주우의 얼굴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절박함으로 서서히 일그러져갔습니다. 리더..... 그것도 그냥 리더가 아닌 아버지가 몸져 누워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이 절절하게 느껴졌을 것 같았어요. 그는 한참을 그렇게 로트 클라우드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습니다.
“그려두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게 우리라, 라스알하르게타에 계속 선을 대서 관리를 해왔쥬. 아버님 쓰러졌다구 암것도 안하고 있으면 아부지가 가만히 있겄어유? 우리 타박혔으면 혔제. 거게, 츰에야 수뇌부도 아부지 깨날띠 까지는 기다려보자 혔지만, 그게 몇 주가 넘어가니께 더는 기다리기 어렵다고 혔어유. 그려서 라스알하르게타에 있는 우리 쪽의 총책헌티 갔다가 그짝의 동태를 정리혀서 보고하라고 혔고, 그 결과를 받아다가 최종적인 거사일을 정하려 했쥬.”
“그리고 그들이 정리한 정보를 숨겨놓은 것이 바로 그 뒷걸이다?”
“뒤꽂이요.”
“그래 뒤꽂이...... 거 참 몇 번을 지적을 받는데도 말이 안고쳐지네.”
로키군은 자신이 몇 번이고 지적을 받는게 짜증났는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우연히 엄청난 물건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브로치 안에 있던 종이메모를 보았으니까요. 물론...... 그 안에 적힌 문자는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 내용을 온전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에요. 주우도 그 생각을 했는지 우리에게 그 안의 내용을 알고 있냐고 물었지만, 우리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내용을 읽긴 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고 말이죠.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단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곤란한 상황에서 머리를 긁는건 그의 버릇이 아닌가 싶었어요.
“허...... 날자 놓쳐버림 나가린디.”
“라스알하르게타로 진공을 해서 성공을 하면 어쩔 참이지?”
“독립을 선언 혀야쥬. 그 전에 영주 모가지를 따부리고.”
“성공할 거 같아요? 백보 양보해서 성공한다고 치자고요. 그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은 도시국가에서 시작해서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 라스알게티는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에요. 이제껏 수많은 민란이 있어왔어요. 하지만 예외없이 모두 진압 당했죠. 쥬드의 마사다 사건은 잘 알고 있겠죠? 10년도 안된 이야기니까. 그때 이후로 프로하기온은 자치권을 잃고 속주로 전락했어요. 당신들은 혁명가니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화끈하게 살다가 멋지게 갈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뒷감당은? 그건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에요. 당신들은 당신의 입으로 사랑한다는 동포에게 멍에를 지워줄 참입니까?”
“......”
제 말에 주우의 얼굴은 심하게 어두워졌습니다. 저도 그의 신념을 건드리는게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꼭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는 자신의 입으로 ‘먹고 사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죽음과 정말 가까워 보였거든요.
Channel 1. 로키
답답이의 일갈은,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그 흠결을 찾을 수 없이 완벽했고, 그녀의 말은...... 솔직히 말해 호소력이 짙어 그 말을 듣는 주우는 물론이고 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마저도 어느 정도 동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타이밍이었다.
“그거슨...... 우리가 성공을 허먼.”
“그렇죠. 성공하면 모든게 잘 따라오겠죠. 하지만, 내가 보니 당신은 이곳의 실질적인 리더겠던데요. 당신의 아버지 로트 클라우드가 와병중이니 말이에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으니, 리더의 자리에 앉았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몸은 더 이상 당신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당신의 결정이 당신 자신 뿐 만 아니라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명운까지 결정하게 되니까요. 여러 사람의 목숨을 맡고 있는 사람이 단순히 일이 성공하는 결과만을 생각해야 할까요? 당신들의 행동이 실패할 가능성까지 염두해 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주우를 몰아붙이는 그녀의 말에...... 나는 몰래 손에 쥐었던 브로치를 조심스럽게 안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멋진 달변에 거지같은 타이밍이었다.
브로치가 웬 말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나는 애초에 처음부터 브로치를 삼킨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그런 크기의 브로치를 삼켜버린다면 아마 브로치가 항문으로 가기 전에 내 장기가 걸레짝이 났을 걸? 내가 삼킨건 지리산에 가기 전에 들렀던 가게에서 구매한 사탕이었다. 정말 브로치 모양이 특이해서 그 모양과 흡사한 걸 찾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내 생각을 알 도리가 없었던 답답이는 내게 계속해서 ‘이 시국에 무슨 사탕이냐.’라며 툴툴댔고, 나는 사탕을 찾으랴, 녀석의 짜증을 받아주랴 진땀깨나 쏟았었다.
그럼 시원하게 답답이에게 말을 하면 되지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나는 내 스스로의 연기력을 믿고 있지만......
“로키군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음. 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저 당돌한 말을 늘어놓는 여자에게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만큼이나 날카로운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해본 바가 없었거든...... 괜히 어설프게 연기를 했다가 들키는 날에는 내가 준비한 이 모든게 어그러질게 눈에 뻔했기에, 나는 녹림당을 속이기 전에 답답이부터 속이기로 한 것이었다.
“아니, 로키군. 당신도 보고 느낀게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 저 사람들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서 자기 식구들 다 죽이려고 하는데 지금 한다는 말이 ‘네 말이 맞는 것 같군.’이 다에요?”
원래 내 계획은 주운에게서 받을 거 받고, 녹림당 놈들에게 브로치를 건네준 다음 이 바닥을 뜨는 것이었다. 뭐 그들이 혁명이랍시고 라스알하르게타에 불을 지르든 물을 끼얹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유품이니 그것만 챙기면 이들과 나의 이해관계도 끝이 나는 것이다. 다만 협상의 파트너가 되어야할 주운은 잠을 자고 있고, 답답이는 이들에게 훈수를 놓으며 나까지 이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쫌 닥쳐봐.”
아주 지독한 일에 말려들기 전에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뱉은 말에, 답답이는 나를 눈이 똥그래져서 쳐다봤다. 응?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뭔가 짜증 섞인 말을 내뱉은 것 같긴 한데, 녀석의 표정을 보니, 내가 지독한 말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필요한건 재빠른 사과겠지.
“.......미안,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
“지금 로키군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관심조차도 없었던 거에요?”
“아니 그게 말이다......”
“하......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나만 머저리 같은 짓을 했네. 이제까지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을 두고 사람이 죽니 사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놨으니...... 하긴,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면 더 좋아라 하겠네요. 이제까지 사람 죽음 팔아서 돈 벌어왔으니까.”
답답이는 자신이 생각하기로 나름 ‘심한 말’을 내게 퍼붓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 답답이에겐 더욱 미안하게도, 녀석이 내게 상처를 주려고 그런 말을 했다면 전혀 먹히진 않았다.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였으니까. 나는 사람의 죽음으로 먹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 건데, 내 생계의 수단을 가지고 왜곡이 아닌 팩트를 이야기 하는데 불쾌감을 느낄 건 없지 않는가.
“어...... 각시가 제법 괄괄하네유?”
“음...... 나도 처음 안 사실이다.”
“이래서 식장 들어가도 모른다니께유.”
“근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네 녹림당은 진공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어차피 여게야 아무도 모르니께...... 다음 진공작전을 새로 짜야쥬.”
“확실히 안일하긴 안일했구나.”
“그러니께 각시가 지한테 쏴붙여도 암말도 못했쥬.”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의 말은, 주우에게 열변을 토하던 제게 찬물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저는 놀라서 로키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보였어요. 저는 그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안, 다른 생각을 하다 그만.”
그는...... 적어도 저 말 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불은 물을 끼얹으면 꺼지게 마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경험상 그것도 불 나름이더군요. 모닥불 같은 것이라면 물을 끼얹으면 이내 꺼져버리지만, 산을 집어삼키는 불이라면, 물을 끼얹는다고 해서 결코 꺼지지 않아요. 오히려, 약이 올라 더욱 맹렬하게 타버리게 마련이죠.
제 감정이 그랬습니다. 무책임하게 잘 될거라는 말만 되네이는 주우의 태도에 잔뜩 약이올라있던 저는, 로키군이 애초에 우리의 대화, 아니 제 말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주우의 태도에 더해져서 저를 더욱 화가 나게 만들었어요.
“하......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당신들 같이 사람 죽음 팔아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그저 자신들의 호주머니로 얼마가 들어오냐로 밖에 생각이 되질 않겠죠. 내가 몇 달을 당신하고 살아놓고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내가 잘못했네요!”
말리는 로키군을 박차고 나오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로 눈앞이 흐려져 앞이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이 걸음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요.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을 걸으며, 몇 번이고 발이 걸려 비틀거린 끝에 저는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나무를 보고 걸은건 아니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더 갈 길이 없었기에 걸음을 멈추었다고 하는게 맞겠네요.
저는 나무 옆에 걸터앉아 눈물을 닦았습니다. 분노를 담아 발을 일부러 크게 구르며 걸었던 탓인지 어느정도 화가 가라앉긴 했지만....... 그렇다고 속없이 웃는 얼굴로 그에게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분노의 남은 잔불을 주워섬겨가며 언덕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하루 일을 마친 농부들은 논과 밭에서 나와 신작로를 걸어가고 있었고, 저녁을 준비하는지 굴뚝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아직 자신을 찾는 부모님의 외침을 듣기 전이었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놀이를 하고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라스알게티에서는 보기 힘든, 목가적인 장면이네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이 곳을 보았다면, 아마 저는 라스알하게의 평범한 마을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런 목가적인 곳에서 라스알하게의 평화를 위협하는 음모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말리고 싶었어요. 불과 여섯 달 전에, 제 고향 라스알게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을 겪었는걸요. 불타버린 붉은 공존, 묵시록의 하르마게돈처럼 쑥대밭이 된 뉴빌리지...... 피를 갈구하던 무리들과 그들에게 치여, 거리 이곳저곳에서 널부러진 채 피를 흘리던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폭력을 말한 것이 아니었어요. 대화가 격해지면 말싸움이 되고, 그것이 중재가 되지 않으면 폭력사태가 되듯이...... 흘러흘러 가다가 그 사단이 난거에요. 분명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폭력이 개입되었을 때 눈을 질끈 감게 만들어버리는 참상이 발생하는 마당에...... 처음부터 폭력을 전제로 하는 혁명이라니, 저는 푸른 숲에 둘러 쌓인 이 아름다운 도시가 라스알게티가 그랬던 것 처럼 불과 피로 망가져버리는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여기 있었군.”
“......저리가요.”
로키군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어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던 나였는데...... 그가 가진 추한 면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절절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그는 기본적으로 피에 굶주려있는 살인마였어요. 단지 그에게 끌렸던 이유만으로 알면서도 그걸 외면해 왔던거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네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은 사과하도록 할게. 다만, 거기엔 사정이 있었어.”
“우리 로키군...... 아니 로키씨가 웬일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졌어요? 놀라운 일이네요. 이렇게 변명의 말도 다 할줄 알고.”
“그러게 말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명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
전 생각을 고쳐먹고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로키군은 제가 자신을 바라보자 얼른 눈을 내리깔았어요. 세상에 지금 내가 아는 그가 맞나요? 그가 제게 눈도 못 마주치고 우물쭈물 하던 위인이었던가요? 놀라운 건 사실이지만, 저는 제가 놀랐다는 걸 알려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눈을 크게 치켜뜨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변명이라는 걸 하는건 매우 드문 일이니...... 일단 들어나 보죠. 무슨 이유로 내 말을 흘려들었던 거에요?”
“음...... 우선 이것부터 보여줘야 할거 같네.”
로키군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제 앞에 보여주었습니다. 그건...... 브로치였어요.
“......?”
“일전에 내가 삼킨건 브로치가 아니었어. 가게에서 샀던 사탕이었다.”
“하...... 그렇게 제가 재촉을 해도 고집스럽게 사탕을 살펴보더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큰 브로치를 삼켜버리면 당장 식도가 남아나질 않겠지?”
로키군은 제가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졌다고 생각했는지, 제 옆에 걸터앉았지만, 저는 이대로 그에게 확신을 주고 싶지 않아서 옆으로 조금 자리를 옮겼어요. 하지만 이 눈치 없는 남자는 제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도 생각하지 못하고, 제 옆에 더 가까이 붙어 앉았더군요.
“난 녀석들에게 대충 받아낼걸 받아낸 뒤에, 이 브로치를 돌려주고 이곳을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네가 흥분을 해서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러니까.”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이거죠?”
“그래. 네 탓을 하는 것 같지만...... 그때 난 그랬어.”
머뭇거리는 그를 보니, 제 손아귀에 잡아두려고 했던 화가 모래를 쥔 것처럼 푸스스 손에서 빠져나가버리더군요.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마 이 대륙에서 저 밖에 없을 거란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나에게 만이라도 살짝 말해줄 수 있었잖아요? 나를 못 믿었던 거에요?”
“뭐...... 나 자신은 훌륭한 연기실력을 가졌다고 자부하지만, 너는...... 내가 그런 모습을 보질 않았으니까. 확신이 부족 했던 거지 뭐.”
“그럼...... 어쩔 생각이에요 이제?”
“음..... 받아낼 걸 받아내고, 여길 떠야지. 솔직히 말해서 쟤들이 혁명이랍시고 여기에 불을 지르든 말든 그건 우리 알 바가 아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