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69

갑과을 작성일 18.06.06 01: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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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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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계획에 대해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천장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에 우리는 프로하기온 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느새 풍경도 바뀌었다. 녹음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던 숲에서 붉은 모래가 모든 것을 뒤덮은 사막으로 말이다. 우리는 꼬박 하루를 달렸고, 그 하룻사이에 우리 주변에는 하늘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으으...... 이걸 다시 써야 한다니. 적응이 안 되는데요?”

그래도 이 고장에 한 석 달은 있었잖아?”

그러게요. 내 자신이 참으로 대견해지네요. 이런 곳에서 석 달이나 살았다니......”

 

답답이는 가방에서 니캅을 꺼내며 투덜거렸다. ...... 그 심정이 일면 수긍 가는 면이 있기는 했다. 나무가 뿜어내는 신선한 대기 속에서 마음 놓고 숨을 쉬다가, 사구를 타고 날아드는 매캐한 모래먼지를 마시려니 짜증이 밀려오는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이곳이 고향인 입장에서 그런 반응을 지켜보노라니......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조금 부산을 떤 덕분에 우리는 열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의복을 갖춰입고 내릴 수 있었다.

 

일단은 차적장으로 가보쥬.”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설은 차적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아무래도 한 달간 물건을 맡겨두었으니 그 상태를 빠르게 확인하고 싶었을 테지만...... 그렇게 백보 양보해 그 심정을 유추해본다고 하더라도, 녀석의 발걸음은 지나치게 빠른 편이어서, 그녀의 뒤를 쫓으면서 문득 이 녀석, 사실은 우리를 떼어내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분주하게 주설의 뒤를 쫓았고, 다행이 녀석과 떨어지지 않고 차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피아 놈들이 다 털어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네?”

영리한 토깽이는 굴을 여러 개 파놓는다고 허쥬. 갸덜이 털어간 거는 사실상 뽀찌같은거구....... 진짜배기는 요거요.”

그럼 이런식으로 은닉한게 더 있는거에요?”

그건 사업상 비밀이유.”

 

어쨌거나, 주설은 컨테이너 하나에 다가가서 자물쇠를 열었고, 모래를 잔뜩 머금은 컨테이너는 쇳소리를 내며 그 속내를 드러냈다. 그 안에는......

 

! 이게 다 뭐에요?”

기가 멕히쥬?”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컨테이너가 품고 있던 물건들은...... 양도 양이었지만, 하나하나가 상당한 고가인 것으로 보이는 사치품들이었다.

 

장사꾼들은 결국 거기서 거기유. 일반적으론 첨엔 자본이 넉넉지 않으니 생필품 같은거 팔아가지구 짤짤이 벌이를 혀유. 그러다가 자본이 어느정두 쌓이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거쥬.”

사치품 말인가?”

그렇쥬. 사치품은 수요가 적긴혀두...... 생필품에 비혀서는 그 변동 폭이 크지 않구, 이문도 훨씬 짭짤혀유. 거기에, 주요 고객층이 고 동니에선 제법 방귀 깨나 뀐다는 넘덜이니...... 한번 뚫으믄 갸덜 권세 빌리는 건 일두 아니쥬.”

이건...... 비단 아니에요?”

잉 그라쥬. 라스알하게산 비단이유. 아시나 모르겄지만, 라스알하게 총독들은 부임허자마자 젤루 먼저 확인허는 것이 바루....... 이 비단의 공급량이라고 혀유. 그동안은 총독이 전매권을 휘둘러가지구 물량이 적었지만...... 혁명으로 정국이 더 시끄러워지면...... 안 그래두 쥐꼬리 만 한 물량이 더욱 줄어들겄쥬?”

그런 식으로 이득을 얻겠다 이거로군.”

다 혁명 잘 되라구 허는건디유 뭘.”

 

혁명을 운운하긴 했지만, 주설의 얼굴은......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느 때 보다도 생기가 흘러넘쳤다. 역시...... 그녀는 타고난 장사꾼인 것이 분명해보였다.

 

“.......물론 그걸루 지도 잘되면 더 좋구.”

 

 

 

 

 

 

 

Channel 2.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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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설씨는 컨테이너에서 물건을 챙긴 뒤, 누가 볼새라 얼른 문을 걸어잠갔습니다. 그런뒤에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차적장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프로하기온 역전 시장이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수많은 상품들과 목청이 터져라 우리를 부르는 상인들 속에서, 그녀는 이 복잡한 길에서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한순간도 해찰하지 않고 그대로 내달았어요. 어떻게 본다면....... 그녀가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오해가 들 정도였지요. 하지만 몸이 불편한데다가, 들고있는 짐이 많은 그녀로서는 우리를 떼어놓는 것은 쉽지 않았고, 우리는 그녀와 함께 시장에서도 구석까지 함께 했습니다. 거침없던 그녀의 행보는.......

 

....... 프로하기온에 석달 사는 동안,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 여그에 올 일은 잘 없갔쥬. 없어야 허기두 허구......”

 

전당포 골목 앞에서 일단 멈췄습니다. 수많은 보화들이 돈에 저당 잡혀 잠깐 쉬었다 가기를 바라는 곳...... 하지만 가게 앞에 적재 돼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이고 있는 두꺼운 먼지는, 그들의 기다림이 바람을 맞은 민들레 꽃씨 같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저당품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전당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따 이게 뉘기여? 주설아녀?”

올만이네유.”

 

카운터에 기대어 졸고 있던 노인은 인기척에 두 눈을 끔뻑이다가....... 주설씨를 알아보고는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허리가 워낙 굽어있던 터라...... 오히려 일어나면서 키가 더 줄어들어 보였지요. 저도 모르게 추하게 늙은 이 노인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려다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눈가의 주름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요새 하도 나타나덜 안 혀가지구 길거리서 뒤진 줄 알았는디 아적 멀쩡한갑네잉?”

거 섭섭허게 말이 뭐 그려유? 나가 암만 목숨 내놓구 살아두, 똥물에두 엄연이 파도라는 것이 튀는디 으르신 보담은 늦게 가야 하는 게 맞지 않겄슈?”

미/친년이.”

 

노인은 껄껄 웃으면서, 목걸이처럼 걸어놓은 렌즈를 자신의 코에 걸쳐놓았습니다. 그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테이블을 깔끔하게 비워놓았습니다. 그의 행동을 볼 때....... 주설씨와 꽤 많은 거래를 해 온 모양이었습니다.

 

비단 한포 떠 왔는디, 한번 견적 좀 뽑아줘 봐유.”

그려, 어디 한 번 봐 보자고잉.”

 

노인은 물건을 집어든 순간, 아까 친근하게 농담을 하던 모습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눈초리로 비단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단에 수놓아진 패턴을 살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쓸어보며 촉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걸로 물건의 상품가치를 확인한다는 것이 그닥....... 신뢰성이 가 보이진 않았지만, 주설씨를 살펴보니, 그녀 역시 진지한 얼굴로 노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 장사 쪽은 전혀 모르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속 편한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따...... 이번 것도 천잠사를 가지구 왔구마잉.”

얼마나 쳐줄거여유?”

...... 선수끼리 흥정 붙일거 있는감? 평소 하던대루 8,000파운드 감세.”

그려유 그렇게 허쥬. 근디 영감님, 8,000받구 2,000만 더 땡겨줄 수 있어유?”

? 니가 왠일이여? 돈을 더 땡기구?”

인자 지두 한탕 혀 볼라구유.”

“......”

 

노인은 주설의 말에, 눈이 침침해진 듯 돋보기를 벗고 두 손바닥으로 연신 눈을 비볐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려 그럼...... 뭔 짓거리를 헐런지는 몰겄다만, 주설 니가 요런 말을 허는 건 처음이니께.......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한 번 거하게 사고 쳐 봐라잉.”

잉 고마워유.”

돈은 꼭 갚구. 알지? 이자는 월 2프로다잉?”

 

 

 

 

 

 

 

Channel 1. 로키

 

노인의 격려를 뒤로하고 우리는 전당포를 나섰다. 그녀는 자그마치 1만 파운드가 든 돈 꾸러미를 챙겨들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몸놀림이 가벼웠다. 그녀가 움직일 때 마다 들려오는 짤랑거리는 돈 소리,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힘이 나게 하는 모양이었다.

 

이젠 그 돈으로 뭘 할 셈이지?”

일단 시장조사부텀 혀야쥬.”

 

내 질문에 주설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래 뭐..... 저런 종류의 시선을 받아본게 한 두 번이 아니니 이젠 이골이 날 법도 하지만...... 저 시선은 받을 때 마다 느낌이 새롭다.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도록 앞서의 표현을 재구성 해보자면, 더럽게 새롭다. 거 사람이 모르면 질문을 할 수 도 있는 것이지, 굳이 저런 시선으로 내리깔아볼 필요가 있는 걸까?

 

나는 인간에 대해서 그닥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들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는 점 하나만은 높이 산다. 의구심은 질문을 낳고, 질문은 탐구를 낳으며, 탐구는 대답을 낳는다. 질문과 대답이라는 두 퍼즐은 인류라는 종을 단순히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을 넘어서 이 대륙에서 지성을 가진 대표적인 종으로 자리매김 하게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런 피조물들에게 있어 질문이 금지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진보의 시대가 종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문을 금지하는 자들은 그들이 무지몽매하다고 두고두고 비난하는, 피안트로프와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내가 피토하는 심정으로 내 주장을 펼쳐보아도 주설은 대답대신 시장으로 쌩하니 달려 나갔다. 그녀에겐 종 전체의 진보보다는 자신의 귓전을 간질이는 동전의 짤랑거리는 소리가 좀 더 가치 있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 요건 얼마여유?”

“60 파운드에 20실링이여라.”

“20실링이믄..... 1 파운드라 이거쥬?”

그라제. 아가씨가 계산이 빠르구마잉. 여그가 딴디보다 훨씬 더 싸야. 딴 놈들이 채가기 전에 후딱 사브러.”

...... 일단 딴디도 좀 볼랑께 쪼매만 기달려주셔유.”

“........”

 

주설이 흥정을 하는 걸 보면서, 나와 답답이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명 컨테이너 박스를 열어젖힐 때만 하더라도, 사치품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던 녀석이...... 지금에 와서는 사치품을 판돈으로 생필품을 살펴보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장사꾼이라는 것도 잘 알고, 그 직업의 생리상 이윤에 큰 신경을 쓰는 것 또한 그녀의 말을 통해 충분히 이해를 했다. 그런데...... 뭔가 아귀가 안 맞잖아? 그녀의 말마따나 이윤이 크게 남는 사치품을 팔아서, 이윤이 조금 남는 생필품을 사는 건....... 자선사업가로 변신하지 않는 이상 생각할 가치가 없는 멍청한 짓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런데 대체 그녀는 무슨 이유로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었냔 말이지......

 

나와 답답이가 그녀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슬슬 불만을 가지는 동안, 주설은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시장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나 같은 경우야 비정한 마음이 그럭저럭 작동하는 덕분에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알아서 해시시 용액이 흘러나와 크게 감정의 진폭이 크진 않았지만...... 답답이는 달랐다. 녀석은 오롯이 자신의 인내심으로 감정을 억눌렀고 또 억눌렀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화학적 합성물 보단 그 실효성이 떨어지게 마련. 그녀는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주설의 어께를 잡아끌었다.

 

대체 뭘 하자는 거에요?”

? 왜 그러슈?”

아니 아까 컨테이너 박스를 열어젖히면서 했던 말 기억 안나요? 사치품을 팔아서 생필품을 사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라면서요?”

잉 그랬쥬.”

근데 뭐하는 거에요?”

“.......”

 

주설은 답답이의 추궁에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말을 반복했다.

 

아이리스씨 말이 맞어유. 장사꾼들은 일반적으로 생필품으로 짤짤이 장사를 허다가, 돈 좀 모이믄 사치품으로 판매하는 품목을 갈아타쥬.”

맞아요 분명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런데 왜.”

그건 일반적인 거 잖아유. 고런 식으로 혀봐야, 고작 그 정도 장사꾼 밖에 못 되는거/유.”

“.......?”

일반적인 방법으론 일반적인 장사꾼 밖에 못 되쥬...... 반대루 큰 장사꾼이 될라믄 여적꺼정 해왔던 거에서 완전히 반대로 접근혀야 하는 거 아니겄슈?”

완전히...... 반대로?”

잉 그려유.”

 

 

 

 

 

 

 

Channel 2. 아이리스

 

오매 씨벌 존나게 무겁네잉. 보쇼, 요거는 어따가 둬야 되것소?”

쪼매만 기다려 봐유. 아이리스씨! 그짝 창고는 얼마나 남았어유?”

...... 한 세 박스 정도는 더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흐미...... 존나게 빨리도 차네유. 아재, 그라믄 고거는 이짝 창고에 둬야겄어유.”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저와 로키군은 일단 속는 셈 치고 주설씨가 하자는 대로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는 매우...... 바빠요.

 

잉 알겄네잉. 그라믄 쩔루 가저가겄슈.”

 

상점주인은 주설씨가 가리키는 창고로 박스를 들고 어기적어기적 걸어갔습니다. 그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얌이 들어있는지 짐작이 되었지요.

 

막상 팔 걷어부치구 나서니까 생각 혔던 것 보담 양이 훨씬 많은디요?”

그러게 말이다. 이정도로 사들이면 돈은 얼마나 남았지?”

..... 쪼매만 기달려봐유.”

 

그녀는 로키군의 질문에 전대에서 돈을 꺼내 조심스럽게 세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팔 한쪽이 없다보니 세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는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꾸역꾸역 그 모든걸 해냈어요. 조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는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주설씨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보였어요.

 

아무래두 한필 더 끊어 와야 될 성 싶슈.”

그거 참 요사이 듣던 중 가장 곤란한 말이 아닌가 싶군.”

 

주설씨는 차적장으로 가서 비단을 한 필 더 끊어온다며, 우리에게 전대에서 꺼낸 뭉칫돈을 쥐어주었습니다. 곧 있으면 페어 게이트 쪽에서 물건이 더 들어올 거라는 말과 함께, 전대에 있는 돈으로 잔금을 치러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 기왕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으니, 그 정도는 당연이 해주어야겠지요.

 

그람 최대한 빨랑 다녀올게유.”

, 조심해서 다녀와요.”

 

그녀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난 뒤에, 우리는 페어 게이트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기도 하여, 창고 근처의 가판대로 갔습니다. 저는 로키군과 함께 먹을 셔벗을 샀고, 그는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로키군. 여기요.”

어 그래 고맙다.”

 

저와 로키군은 창고 앞에 놓아둔 목욕탕 의자에 앉아 셔벗을 떠먹었습니다. 6월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우리의 머릿가죽을 따끔따끔 찔러대었지요.

 

만 파운드라...... 감이 와요?”

장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통이 큰 거겠지.”

단순이 통이 큰게 아니에요. 저는 만 파운드를 이렇게 빠른 시간에 소진하는건 처음 봤다구요. 그거면 제 10달치 월급인데....... 로키군은 거기 있으면서 그만한 돈 만져본 적 있어요?”

글쎄...... 나 같은 경우야 일을 하면서 별에 별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목에 만 파운드까지 거는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나도 그 정도 돈을 만들려면.......”

 

그는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헤아려보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였어요.

 

평균 이 정도는 관짝에 우겨넣어야겠지.”

그렇게 치면 로키군도 꽤나 부자겠는데요? 하샤신에 오랫동안 몸 담아왔잖아요.”

...... 그것도 어느 정도 급이 인정받아야 되는 거야.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반드시 부자라는 법도 없어. 워낙에 떼가는게 많으니까.”

그 와중에 누군가가 그걸 또 떼가요?”

그럼, 부외자가 볼 때야 그냥 얼굴하고 몸통 분리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이쪽 업계도 나름 복잡하다고. 너도 도로시년을 만났었잖아? 걔가 하는 일이 그런 종류지.”

“...... 일종의 협력업체다?”

...... 말하자면?”

하긴, 한 달 동안 지내면서 대충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요.”

 

로키군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상인 몇이 육중한 박스를 카트에 싣고서 창고 앞으로 왔고, 저희는 주설씨가 건넨 돈으로 잔금을 치른 뒤에, 그들을 창고로 안내했습니다. 이제 이 창고도 거의 다 찼다고 봐야겠네요. 벌써 두 번째 창고인데 말이지요. 과연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고장의 얌을 죄다 사들이고 있는 걸까요?

 

 

 

 

 

 

 

Channel 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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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설이 탐욕스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얌을 사들인 이유를 깨닫는 데는 단 3일이면 충분했다. 그녀가 시장에 손을 댄 이후, 장마당에서 얌은 사라져버렸고, 100만의 도시 프로하기온에 갑작스러운 기근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산이며 들이며 쏘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다시피 이 고장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기근 3일째 되는 날, ‘파이낸셜 스페이스지에서는 기근에 빠진 대륙 제 2의 도시라는 특집 기사를 냈다. 갑작스러운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사의 말미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들을 제시했다. 이곳의 지방정부 관료들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굳이 언론사가 훈수를 두기 전에 나름의 대책을 강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른 도시들 역시 수확철이 아니었던지라, 프로하기온으로 공수할 수 있는 식량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적은 식량마저도 역에 내리자마자 주설이 대부분을 매수해버렸다. 그녀의 창고가 풍요로워지면 풍요로워 질수록, 이곳에는 기근의 그림자가 더 짙게 깔렸다.

 

기근 5일 째, 답답이는 주설과 한 따까리를 했다. 답답이는 이대로는 두고볼 수 없다며 창고를 풀어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주설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때 그녀가 한 말을 당신이 들었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리 확신을 하냐고? 답답이가 그랬거든. 열을 올리며 창고의 물량을 풀어야 한다는 답답이의 말에 주설은 쟈들은 아직 덜 굶었슈.’라고 딱 잘라 말했다. 답답이는 지금 거리를 보라며 이대로 가다간 굶어죽는 이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주설은 지금 와서 물건을 푸는 것은 우리가 바로 사재기를 한 범인이다.’라고 자백하는 꼴이라고 응수했다. 그건 당신이 물건을 푸는 때가 와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답답이의 말에는 주설은 이렇게 말했다.

 

바늘 도둑은 매를 벌지만, 나랏도둑은 칭송을 버는거/유. 쟈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먹을 것을 애걸 할 때, 우리가 물건을 풀면 사람들이 우리를 성인군자로 칭송허지 않겄슈?”

지금 우리가 명성 쌓자고 이러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쥬. 돈을 벌기 위한거쥬. 기왕 돈을 버는거....... 사람들의 맴도 사로잡자는거/유. 굶어죽기 직전에 내미는 얌 한 조각...... 그걸 손에 쥘 수만 있으면, 갸덜은 아마 영혼도 팔아치우겄쥬.”

 

주설과 말이 반복될수록 답답이는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 나로서는 이들의 갈등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상이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겠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을 서로 해본 적이 없으니....... 서로 내놓는 근거가 근거로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했다. 토론이 계속 될수록, 아마 저들은 서로를 이거 완전히 떼쟁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적립해 나갈 것이다.

 

인류는 그런 식으로 갈등을 일으켜왔다. 그리고 그것의 규모가 커지면 전쟁이 되곤 했지. 서로가 더 죽일 사람이 없을 때에서야 비로소 피 묻은 손을 맞잡는 소모적인 행위 말이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주설이었다. 그 모든 논쟁이 끝나고 나서도 주설은 물건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설의 100% 완승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것이, 어쨌거나 그녀도 답답이의 의견을 일견 수용하긴 했거든. 그래서 오늘 우리는 시장에 물건을 풀기로 했다.

 

주설은 우리에게 뒷골목에 전단지를 붙이도록 지시했다. 전단지에는 대륙 공용어로 얌 한정 판매, 선착순 100명에게 60파운드에 200실링이라고 쓰여 있었다. 어째 숫자가 이상하다고? 이상 할 건 없다. 고작 숫자에 0이 하나 더 붙은 것 뿐이다. 열흘 가까이 굶주려 온 이에게 10배의 이익을 남긴다? 이 정도면....... 구매자로서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셈법 아닌가. 답답이는 전단지를 붙이면서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그들의 굶주림도 끝날 거란 생각이었는지 그녀에게 대놓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우리는 프로하기온을 돌면서 전단지를 붙였다. 홍보 효과를 위해서는 몇 차례를 돌아야 했지만, 돌 때 마다 전단지는 찢겨져 있었다. 주설의 상술에 주민들이 치를 떤 것이 아니냐고?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 선착순 100명이라는 단어가 마술을 일으킨 결과일 것이다. 인구 100만의 도시에서 단 100여명에게만 얌을 팔기로 했다. 그렇다면 바보가 아니고서야...... 전단지를 가만히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전단지를 다른 사람이 보는 순간...... 그 사람도 얌을 얻으려는 경쟁자가 될 테니까 말이지. 그런 점에서 나는 이 도시가 낳은 위대한 정치 철학자 제르모이오가 한 말에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추악하며,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인위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궁지에 몰려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전단지를 붙인 뒤, 주설은 창고를 개방했다. 100명에게 팔 물건이다 보니, 일부를 헐어왔어도 양은 제법 많았다. 우리 셋은 행사 시작 3시간 전부터 작업에 매달렸지만, 그들이 들이닥치기 10여분 전에 간신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행사를 앞두고 우리는 역할을 분담했다. 주설은 금전의 출납을 맡았고, 답답이는 물건의 불하를, 그리고 나는 질서 유지를 맡았다. 눈앞의 먹을 것에 사람들의 눈이 뒤집힐 법도 했지만,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하게 물건을 받아갔다. ...... 그들이 위대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거기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군. 열흘을 굶어 완전히 근육이 빠진 그들은 먹을 것 앞에서 남을 밀칠 힘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들은 우리에게 허리 숙여가며 공손히 인사를 했고, 자신의 체중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포대를 간신히 지고 창고를 떠났다. 행사는 그렇게 순식간에 끝이 났다.

 

 

 

 

 

 

 

Channel 2. 아이리스

 

1624621

 

여그 200실링이여라.”

......”

 

노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동전을 쥐어주었고, 그녀는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찬찬이 돈을 세었습니다. 아무래도 팔 하나가 없다보니 그녀의 작업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노인은 그런 그녀에게 감히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가 돈을 세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답니다. 혹여나 자신이 네민 돈의 액수가 다르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다보니...... 이스트민스터 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라는 그림이 떠올랐어요. 사람의 살가죽을 벗기는 천사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죄가 낱낱이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모습...... 적어도 이 노인에게 있어 주설씨는...... 성화에서 묘사된 심판의 천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을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드님이 재림할 때는 죄를 심판의 준거로 삼는다면, 그녀는 돈을 심판의 준거로 삼는다는 것이겠지만......

 

가져가셔유.”

잉 고맙구먼.”

 

그녀의 말이 천국으로의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노인은 연신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그의 손에는 60파운드의 얌이 담긴 포대자루가 들려있었지요. 그는 자신이 10배나 되는 비싼 돈을 주고 얌을 샀다는 것 따위는 까맣게 잊고 싱글벙글 웃으며 포대를 질질 끌고나갔습니다. 그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돈을 보고 낄낄 웃었습니다. 그래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녀는 오늘 장사로 1,000파운드나 벌었으니 말이에요. 그녀가 빌린 10,000파운드중 1/10을 벌써 벌충한 셈입니다. 게다가 아직 창고에 남아있는 재고를 생각해본다면....... 원금회수는 금방이고, 그 이상의 돈을 벌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그녀는 타고난 장사꾼임이 분명했습니다만, 그 과정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었어요.

 

다 팔았냐?”

잉 그라쥬. 개업 첫날부터 제법 짭짤하네유.”

이정도 속도라면 빚은 열흘이면 다 갚겠군.”

음마? 뭔소리래유? 뭣헌다구 빚을 열흘 동안이나 질질 끌고 앉았대유? 그까이꺼 일주일안에 다 청산해야쥬.”

“.......3?”

 

그녀의 셈법은 제가 보고 판단한 그녀의 모습보다 훨씬 더 잔혹했습니다. 그녀의 논리는 간단했어요. 열흘 동안 사람들을 굶겨서 10배의 이윤을 챙겼다면, 다음날에는 11, 그 다음날에는 12배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그녀의 말에 저희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독하게 사람을 쥐어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녀가 라스알하게 사람들에게 괜히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로키군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그렇게 하다가는 프로하기온 관청이 가만두지 않을거다.’라고 말이죠. 로키군의 말은 저와는 핀트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건드리지 말자는 것에는 궤를 같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저도 동의의 제스쳐를 취했습니다. 저번에야 로키군이 나서지 않아서 제가 논리적으로 밀리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그가 지원사격을 해준다면...... 주설씨도 이번에는 뜻을 굽히지 않을까 싶었어요.

 

...... 생각혀보믄 그럴 듯 허네유. 요 장사도 길게 잡아버리면 금방 잡혀버릴 지도 모르겄어유. 그렇다믄...... 잡히기 전에 최대한 뽈아묵는게 맞겄구먼유.”

“........?”

낼부텀은 판매량두 늘리구 가격두 더 높게 잡아야겄어유. 200명분을, 20배의 가격으로 팔어야겄어유.”

아니 주설씨.......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자는 것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잖아요. 어떻게 해야 이런 결론이 나올 수가 있는거에요?”

나도 이 녀석의 말에 동의한다. 하루사이에 가격을 2배로 더 올려버린다면 사람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게 분명해. 굳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머저리가 어디있냐?”

불구덩이로 뛰어든다라...... 나가 하는 것이 그렇게 위험혀 보여유?”

그걸 말이라고해요?”

 

제 지적에 그녀는 무릎을 치며 크게 웃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아니 적어도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어요. 혹시 저만 그런가 싶어 로키군을 바라보았는데..... 로키군도 저와 생각이 비슷한 모양이었습니다.

 

여그가 명색이 대륙 제 2의 도시인디 사법체계가 핫바지는 아니겄쥬? 오늘 지랑 헌거는, 도재기를 가볍게 한번 굽구, 다시 굽기 전에 유약 한번 발라버린거/유. 인자 기다려 보자구유. 쟈들이 어떻게 나올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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