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1. 로키
1624년 6월 25일
“쩌그......”
방에 들어가기 전, 주설은 머뭇거리며 자신의 발을 주춤했다. 뒤를 돌아본 그녀의 얼굴에는...... ‘난감하다’라는 감정이 여과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요거는 쪼깐...... 그런디유?”
“뭐가 그런디?”
“아무리 여그가 개방된 곳이라구 혀두...... 그...... 남녀가 유별헌디 워쩌케 한 방에 집어넣는대유?”
그녀는 턱으로 나를 가리켰고, 그런 제스쳐에 간수는 두 눈을 껌뻑거리다가...... 벼락같이 화를 내었다.
“남녀가 유별헌디? 죄 짓는디 남녀가 어디있어?”
“아니 아무리 그런다구 혀두...... 사람이 인권이라는 것이 있는디......”
“인궈언? 염병허구 자빠졌네, 그런게 두려웠으면 애초에 죄를 짓지 말어야제! 난 또 뭔 소리 헌다구 혔네. 개소리 집어치고 얼렁 들어가부러!”
주설은 낑낑대며 어떻게든 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댔지만, 포승줄을 쥐고있는 간수는 그녀의 뒷 무릎을 눌러 무릎 꿇린 뒤에, 그녀의 등을 발로 밀어버렸다. 결국 주설은 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크으윽......”
시범케이스로 톡톡히 당한 모습을 보고난 뒤에, 나와 답답이는 무의미한 반항을 해보았자 우리만 피 본다는 교훈을 확실히 얻었던 터라, 군소리 없이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놀랍게도 눅눅한 냄새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감옥이 다 그런거 아니냐고? 사막에 둘러 쌓인 프로하기온에서 방 안에 습기가 차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어쨌거나, 우리 모두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간수는 자물쇠를 잠근 뒤에, 유유히 복도로 걸어 나갔다.
“아이고...... 삭신이야.”
“괜찮아요?”
“그럴 리가 있겄슈? 저 망할 놈의 간수새끼 때문에 얼굴이 다 갈려버린 거 같어유.”
“그러게 그냥 하란대로 하지 뭐 하러 쓸데없이 반항을 하고 그러냐?”
일단 간수는 방안에 우리를 수용하면서 포승줄을 풀어주었기 때문에 비교적 거취가 자유로왔다. 주설은 걷어차이는 바람에 간수가 미처 포승줄을 풀어주지 않아 제법 고생깨나 했지만, 두 사람이 나선 덕분에 어렵게나마 자신의 몸을 옥죄던 포승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답답이는 주설의 얼굴에 손을 대고 기도문을 읊었고, 주설의 상처는 이내 아물었다.
“그려두 댁 입장에선 다행이겄구먼유? 나고 자란디가 빙다리 핫바지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 거 아녀유.”
“뭐...... 그보다는 너의 이런 무한히 긍정적인 태도에 더 놀라고 있는 중이다.”
주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기지개를 쭉 폈다. 포승줄을 풀어내느라 그녀의 옷매무새가 헝클어졌는데, 기지개까지 켜면서 옷이 벌어지는 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가슴팍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서로 민망해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얼른 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녀석이 무엇을 흘렸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음...... 말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긴 했는데, 녀석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걸 흘린 건 아니었다. 그녀가 흘린 것은 비단 한 필이었다. 그녀는 누가 볼 새라 재빠르게 그걸 주워서 자신의 가슴팍에 쑤셔 박았다. 물론 팔이 한쪽 뿐 인지라 쉽지는 않았고, 결국 답답이의 도움을 받고나서야 완벽히 숨길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뭔가를 또 숨겨왔구먼.”
“당연히 그래야쥬. 요것이 사업 밑천인디.”
아까도 말했지만, 주설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베이스로 깔고 있는 녀석이다. 이러한 태도는 마냥 절망하고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낫기는 하지만....... 이럴 때 보면 뭔가 과대망상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대체 감옥 안에서 무슨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인지......
“여기서 무슨 사업을 벌인다는 거에요?”
그 생각은 답답이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에게 핀잔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지만, 주설은 대답대신 빙글거리는 미소로 대답을 피했다. 그냥 ‘지켜보면 알게 될 거다.’라는 말만 덧붙였을 뿐, 자신의 말에 대한 근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대신에
“아이구 그려두 제 2도시라구 대접은 좋네유. 깜방에두 요러게 읽을 거리두 놔둬주고 말여유.”
그녀는 느긋하게 방을 둘러보며 세팅되어있는 물건들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녀가 제일 먼저 살핀 것은 책장에 잔뜩 꽂혀있는 책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말대로 감옥치고는 시설이 괜찮은 편이었다. 나와 답답이가 감금되었던 ‘우리’의 징벌방과는 차원이 달랐다고나 할까? 안락해 보이지는 않지만 2층 침대가 있었고, 앉은뱅이 탁자에는 신문도 놓여있었다. 답답이는 주설과 함께 책장을 살펴보면서 거기에 ‘경전’이 꽂혀있지 않나 살펴보는 듯 했다. 나도 굳이 탈출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탁자에 놓여진 신문을 꺼내 읽었다. 음...... 아무리 정부기관이라고 하지만, ‘더 문’ 이라니...... 이건 좀 심한 것 같군.
“여기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건가?”
“글쎄유. 재판이 언제 잡히냐에 따라 좌우되지 싶지만....... 우리가 들어온 안건이 안건이니 만큼,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르쥬.”
“안건?”
“그렇쥬. 죄수라고 다 같은 죄수겄슈? 우덜은 경제사범아녀유?”
“그거...... 자부심을 느낄 만한 범죄인거에요?”
“원래 법이란 것이 그물과 비슷 혀서, 가물치덜은 그물을 찢고 째구 피라미덜은 꼼짝없이 걸려드는 벱이유.”
“그럼 우리가 가물치다?”
“음...... 쏘가리라 치쥬.”
Channel 2. 아이리스
1624년 6월 25일
보통은 아무리 파악하기 힘든 유형이라고 해도, 사람과 일정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아 이 사람은 이런 스타일이구나.’라는 걸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되곤 합니다. 그토록 감이 잡히지 않던 로키군도 반년 넘게 함께하다보니 얼추 파악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주설씨를 지켜보면 지켜볼 수록...... 과연 로키군과 함께한 시간 그 이상을 들여도 그녀의 캐릭터를 반에 반이라도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느때 보면 간이고 쓸개고 모두 털어줄 것 같은가 싶으면, 바늘로 몇 번을 찔러도 피는커녕 눈물 한 방울 조차 흘리지 않을 것 같이 비정하고...... 합리적인 근거에 의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대로 뿌리라도 박고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듯이 철저히 이성적인가 싶으면,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제 기분에 취해 담장을 앞두고 발길질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대책 없어 보이기도 하거든요.
제 말에 주설씨는 ‘나라는 사람의 도량을 쉽게 잴 수 있을거 같어유?’라고 능글맞게 대답을 피하긴 했지만...... 저는 일련의 사건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재판 전에 이곳에서 나오게 되었거든요. 그녀의 말마따나 우리가 가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쏘가리정도는 되는 모양인가 봅니다.
“아이리스씨.”
“네?”
“요거..... 잘 좀 동여매 줘유.”
앞장서는 간수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로 그녀는 제게 속살거리면서 자신의 가슴팍에 동여매져 있는 비단을 가리켰습니다. 충분히 잘 매어져있지만...... 아무래도 아까의 일 때문에 조금 불안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간수몰래 눈치껏 그녀의 가슴팍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요. 그건..... 제 손에 닿은 주설씨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어쨌거나 간수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리고 혹시라도 헛웃음을 터뜨리지 않도록 조심해가면서, 저는 그녀의 비단을 정돈해 주었습니다.
“열로 들어가씨요.”
“잉..... 고맙슈.”
간수가 가리킨 문은 아무리 보아도 법정으로 향하는 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문 앞에는 거대한 홀이 있었지만, 정의의 여신상은 보이지 않았거든요. 대신 홀의 천장에는 갖가지 빛을 발하는 보석들이 빈틈없이 박혀있었습니다. 워낙 긴장된 순간이었던지라 감탄사를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보석들은 일정한 패턴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 화려함에 저는 이곳이 괜히 제2의 도시라고 일컫어지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홀보다는 화려함이 덜하지만, 그래도 고상한 품격이 느껴지는 방의 전경이 저희 앞에 펼쳐져있었어요. 방에는 벽 대신에 유리들이 있었고, 우리가 지나갈 때 마다 유리의 그림자들은 저희를 졸졸 따라다녔지요. 어린 시절 들었던 도시전설 중에 ‘도플갱어’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이 방의 유리들을 보며, 오늘은 도플갱어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약속을 한 걸까 하는...... 약간은 우스운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총독님. 말씸하신 죄인들을 델구 왔어라.”
“어 그래 수고 많았다.”
이 방의 주인은 방의 품격만큼이나 고상하게 등장을 했어요. 유난히 화려한 천을 뒤집어쓰고 있는 거울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온 것이지요. 저희는 거울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놀라 두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사실 그건 트릭이었습니다. 총독은 사실 우리의 뒤에 있었던 거였지요. 거울이 어찌나 깔끔했던지, 우리가 본 것은 그림자일 뿐, 실제 우리의 등 뒤에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총독의 등장에 주설씨는 재빠르게 부복을 했고, 부복을 한 채로 저희 둘에게 눈치를 주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예의가 바르다고 해야 할 지,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 지...... 어떤 단어로 그녀를 묘사해야 할지 상당히 난감했어요. 어쨌거나 우리도 눈치껏 그녀를 따라 총독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듣자하니 내 도시에 재미없는 장난질을 쳤다던데 사실인가?”
“입장에 따라서는 장난질일 수 도 있고...... 인질극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겄습니까.”
“장난질 친 수준에 비해선 말주변이 있는 편이군. 그럼 너는 광대냐, 아니면 인질범이냐?”
“뭐든 상관은 없지마는 지는......기왕이믄 장사꾼이라 불리구 싶습니다.”
“장사꾼이라...... 장사꾼의 이익추구 행동으로 용인받을 수 있는 선은 한참 전에 넘어간 거 같은데?”
흔들림 없이 반듯하지만 살기가 형형히 묻어나는 마지막 말에, 제게 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주설씨는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어요.
“......자고로 광고는 강렬허게 혀야...... 사람덜 뇌리에 지대로 박힐 거 아니겄습니까.”
“광고라...... 간만에 들어본 신박한 개소리구먼 그래. 그러니까 니 말은 이곳 100만의 시민들의 밥줄을 쥐고 광고를 했다?”
“잉..... 그렇습니다.”
“시청자는 나고?”
“그렇습니다.”
“허헛! .......참!”
이쯤 되면 주설씨의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뜻밖에도 총독은 그녀의 말에 무릎을 쳐가며 껄껄 웃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분위기에서 터지는 웃음이 가지는 의미는 두 가지로 추측이 되는데요. 하나는 그녀의 말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거나...... 아니면 때려죽이기 전에 마지막 유언이라 치고 어디까지 개소리를 늘어 놓을지 들어나 보자.라는 식일거에요.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총독의 웃음이 전자의 경우이기를 간절히 빌어보았습니다.
“일단 눈길을 끈 것 까지는 성공했다고 인정해 주마. 그럼 이젠 내 뇌리에 무언갈 박아 넣을 차례겠구먼. 어디 한번 상품 설명이나 들어보자고.”
다행이 총독의 웃음은 전자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종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시종은 눈치 빠르게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의자에 걸터앉은 총독은 다리를 꼬며 우리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한테 뭘 팔려고 그 난리를 친 건가?”
“일단...... 잠시 실례 좀......”
그녀는 제게 눈짓을 해보였고, 저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다소 외설적으로 보일 법한 광경에 총독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어요. 하지만 그는 호통을 치는 대신에 어디 얼마나 쑈를 할 건지 지켜보자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그가 지겨워하기 전에 후다닥 매듭을 풀었고, 그녀의 가슴팍에서 비단을 끌어올렸습니다.
“미안한데 그런 소품이 없어도 우리 사이는 충분히 뜨거워.”
“소품이 아니라 비단입니다. 라스알하게 산 진품이쥬.”
“......비단?”
“요것이 어떤 값어치를 가지구 있는지는 총독님두 잘 아시리라구 생각헙니다.”
“뭐...... 그래. 일단 자세히 살펴봐야겠군. 혹시나 조잡한 가품일 수도 있으니......”
말은 다소 미적지근하게 했지만, 총독의 얼굴은 자신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발갛게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주설씨는 제게 눈짓을 했고, 저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비단을 넘겨주었습니다. 총독은 혹시나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그것을 찬찬이 쓸어내렸습니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가볍군.”
“천잠사라구 들어보셨습니까?”
“천잠사?”
“지가 어느 안전이라구 그냥 비단을 내놓겄습니까? 기왕 저를 팔기로 혔으면 최고의 물건을 내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겄지요.”
“그래...... 맞는 말이다. 허허 참, 이만한 물건이 있으니 광고도 그렇게 했을 법 하구먼.”
총독은 더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는지 흡족하게 웃으며 시종에게 천잠사를 건네주었습니다. 학교 앞마당 개도 삼년이면 국가를 읊조린다더니, 이 시종도 귀족들 주변에 있다보니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듯 해보였습니다.
“그래...... 이만하면 광고도 대 성공을 한 것 같군. 원하는 게 뭐지? 장사꾼 양반.”
“별건 아니구...... 점포를 하나 내주셨으면 좋겄습니다.”
“현문우답인지 아니면 일부러 의뭉을 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도시를 통치하면서 상행위에 대한 규제를 한 적은 없다. 우리 도시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관리를 하거든. 장사꾼이라는 명함을 달고도 설마 프로하기온의 시스템을 모를 리는 없을텐데?”
“제가 내려는 거는...... 허가가 필요헐 겁니다...... 총독님과 라스알하게산 비단의 독점적 취급권을 공유하고자 하거든요.”
주설씨의 말에....... 총독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습니다.
Channel 1. 로키
주설의 호언장담은 자음과 모음의 단순한 나열에서 그치지 않고, 육화되어 이 현상계에 현현했다. 이게 무슨 비유적인 표현이냐고 할 것 같아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아무런 치도곤 없이 풀려났다는 것이다. 아니, 단순히 풀려났다는 것을 넘어서 총독의 특별명령으로 관리 셋이 붙었다. 말을 하는 것이며, 행동하는 품새가 경제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듯 보였다.
“쩌그에 점포자리가 하나 있는디, 한 번 보실라?”
“좋지유.”
그들이 안내 한 곳은 시리우스가 아니라 프로하기온 중앙 시장이었다. 비단과 같은 사치품을 파는데 왜 시리우스에 입점을 하지 않냐고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 우리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경제 관료들의 분석이 컸다. 사치품 시장은 수요가 적다보니 공급하는 쪽도 적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공급책에서는 일종의 카르텔 같은 것이 형성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런 폐쇄적인 시장에서는 아무래도 신입이 진출하는 것을 견제하거나 억제하려고 들 텐데, 이들의 견제가 보통이 아니거든.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드는 이들의 견제에 프로하기온에 둥지를 틀려다가 나가떨어진 업체가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엄청나다는 로스차일드도 여그의 벽은 못 뚫었지라.”
“참말이유?”
“아따, 나가 비싼 나랏밥 묵고 거짓말을 치것소. 고것이 요바닥 상인들의 자부심거린디? 질 가는 사람 암나 붙잡고 물어보씨요. 로스차일드가 철수 한 날에 여기 분위기가 워쨌는지 말여. 아따 축포를 쏴불고 지랄을 혔당께. 멋도 모르는 넘덜은 뭔 가게 오픈하는 줄 알아브렀을 겄이여.”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시리우스에서 개점하는 것 보다는, 중앙시장에서 이면 점포를 열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겉으로는 비주력 상품인 생필품 종류를 진열해 두고, 뒷구멍으로 주력상품을 팔자는 것이지. 오랜 기간 동안 경제 관련 파트에서 종사를 한 짬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의 전략에 찬탄을 하는 한편으론, ‘과연 이들이 사기꾼들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로키군, 잠깐만요.”
“왜?”
답답이는 주설과 관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내 옷자락을 슬쩍 당겨 나를 그 사이에서 떼어냈다. 팔을 잡아채면서 내 귀에 손을 대는 답답이의 눈은....... 과연 녀석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늘어져있었다.
“기왕 주설씨가 가게를 알아본다면...... 우리가 저번에 샀던. 그...... 있잖아요. 그거.”
답답이의 말에 나는 문득 가슴팍에 묵직한 돌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녀석은 에둘러서 표현을 했지만, 나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우리가 일전에 사놓았던 ‘페어게이트’의 땅을 언급한 것이리라. 이젠 정말로 녀석을 ‘답답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주우, 주설과 논쟁을 벌일 때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도덕적인 원칙을 들이댔던 녀석이, 이 순간만큼은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속물스러운 면모를 보였다. 원숭이 꽃신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오소리 같이 말이다.
그렇지만...... 도덕적인 판단을 떠나서, 녀석의 생각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어차피 임무가 끝나도 이 도시에 발붙이고 살기 글러먹은 우리 처지에 부동산이란...... 처치 곤란한 악성 재고나 다름이 없거든. 게다가 페어게이트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아직 보상권 문제로 착수가 요원한 상황인 것도 한몫했다. 이런 악성재고는 하루라도 일찍 처분하는 게 우리로서는 이익이다. 차후에는 어찌될 지는 모르지만...... ‘우리’에 재산을 동결당한 상황에서는 부동산을 동산화 시키는 것이 더 낫기도 하고.
“이봐.”
나는 눈치를 보다가, 주설과 관료들의 대화에 틈이 보이자마자 헛기침을 하며 대화의 장에 끼어들었다.
“잉? 뭔 일 있슈?”
“듣다보니 너는 딱히 이곳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보여서 말이야. 내가 좋은 곳 하나 아는게 있거든...... 소개 한 번 받아볼 생각 있냐?”
“좋은 곳이유?”
“어. 개발 가능성이 제법 높은 곳이지.”
Channel 2. 아이리스
함께하는 동료에게 왠지 사기를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로키군도 교감 끝에 저와 행동을 함께하기로 결심을 했는지 주설씨와 관료들에게 우리가 사둔 ‘페어게이트’쪽 땅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약간의 죄책감은 잠시 뒤로 밀쳐두고 그의 말을 거들었지요. 관료들은 처음엔 우리의 말을 가로막고 주설씨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듯 했지만, 주설씨가 우리의 말을 진지하게 듣자 ‘그냥 내버려 두자.’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나 봐요.
“음...... 그려유 그럼. 한 번 땅이나 봐보쥬.”
“그래 한 번 가보자고.”
저와 로키군은 페어게이트 쪽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관료들은 눈을 껌뻑이다가 우리를 따라오기로 했습니다. 중앙시장을 나와, 시리우스를 거쳐, 우리는 도시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길이 점점 한산해지고, 사람보다는 모래바람이 이 공간을 스멀스멀 메꿔 갈 때 쯤......
“여기야.”
로키군은 자신만만하게 페어게이트를 가리켰지만, 주설씨는 반응이 없었어요. 관리들도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어색한 상황에 직면하니, 이거...... 금방 들킬 얕은 수를 괜히 부렸나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완전 촌구석인디유?”
“너만 알고 있어. 여기가....... 곧 재개발이 될 예정이거든. 이쪽 업계에서는 암암리에 나오는 소문이야.”
“이쪽...... 업계유? 하샤...... 아니, 로키씨 직장이 부동산 쪽에두 투자를 하는 갑네유?”
“아니, 거기서 퇴사한 뒤에 이곳 근처에서 잠깐 건축업계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거든.”
로키군은 그럴듯하게 둘러댔지만, 주설씨를 등진 관료들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잠깐만요...... 관료들이 고개를 왜 젓는거죠? 이러면...... 우리도 사기를 당했다는 소리인데? 저는 예기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려는 차에, 로키군이 제 손을 꽉 잡았습니다. 저를 보는 로키군의 눈은 제게 ‘내색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에이 그려두 재개발이 암때나 된대유? 보상금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하다보믄...... 몇 년 후딱 가는 것이 그짝 업계인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일단 너는 저기 관리들 말마따나 네 입장에서는 업계 선배들 견제에서 벗어나서 일을 하는게 낫지 않나? 여기서 라면 선배들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흠...... 글킨 허지만 서두.”
“어차피 네 고객이야 프로하기온 총독이 다일 텐데, 그동안 라스알하게 총독이 독점하던 비단시장을 프로하기온 총독이 가로챘다는 소문이 나면...... 네가 하려는 일도 다 헝클어지게 될거다. 그렇다면 그런 소문이 최대한 안날 곳을 선택하는 게 낫지.”
이야..... 로키군의 말을 듣다보니,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거짓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에요. 주설씨에게는 돈을 번다는 목적 뿐 만 아니라, 삼민혁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도 가지고 있는걸요. 로키군은 그 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입니다. 동기는 거짓된 반 사기였지만, 그는 그것에서 진실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로키군을 지켜보면서 저는 그가 사람을 죽이는 걸로 업을 삼지 않았다면, 아마 좋게 말해선 장사꾼, 나쁘게 말하면 사기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그려유 그럼. 일단 아는 데가 어디에유? 집 쥔도 알고 있어유?”
“응 그럼. 엄청 잘 알지.”
로키군은 그 말을 하면서 저를 끌어안았고, 저는 손을 흔들며 그들 앞에서 어색하게 웃어보였습니다. 하하...... 이거 영락없는 부부 사기단 같은데요?
Channel 1. 로키
우리는 주설을 데리고 우리가 샀던 집을 보여주었다. 흥부라는 인간은......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는지, 우리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난 구멍을 모두 메꾸고 이 고장을 떠난 모양이었다.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보단...... 훨씬 집안 꼴이 갖춰져 있었거든. 그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아니다. 언제 병풍뒤에서 향냄새 맡을 지도 모르는 두 노인장이 그 모든걸 했을 리가 없지.
“음......”
주설은 집의 내부는 설렁설렁 넘기고, 오히려 집 밖을 나와 근처를 꼼꼼이 살폈다. 아마 그녀는 이 집 자체보다는 집이 위치하고 있는 입지가 신경쓰인 모양이었다. 집 근처를 몇바퀴 돌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그녀는 부동산을 찾았고, 기어코 부동산을 찾아간 뒤에는 부동산 주인장이 우리를 보고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고 지적도를 요구했다. 주인장은 덜덜 떨면서 그녀에게 지적도를 가져다주었다. 노인장은 ‘차라두 한잔 혀야제.’라고 우물거리면서 후다닥 복덕방 밖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딱하게 됬지만...... 그닥 동정을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댁덜 말대루 요기가 재개발이 되버리믄....... 제법 금싸라기 땅이 되겄슈. 그런디 요 집을 샀다는 것은 요기의 투자 가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일텐디...... 왜 나한티 팔라고 하는 거여유?”
“이곳에 오기전에 사정이 있었거든. 지금은...... 말해주기 조금 곤란하지만 말이야.”
나는 뻔이 공무원들이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나와 답답이가 한때 ‘우리’에서 몸을 담은 적이 있다는걸 순순이 알려줄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다. 주설은 내 말에 조금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땅이 가지고 있는 잠재가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주인없는 책상을 뒤져 계약서를 꺼내왔다.
“뭐......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는 않지마는...... 가치투자 한번 해 보쥬 뭘.”
“잘 생각한거다.”
주설은 계약금은 얼마나 달라고 할 건지 물었고, 나는 답답이와 의견을 조율할 겸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얼마정도가 적당할 것 같나?”
“우리가 저번에 이 집을 419파운드 주고 사지 않았어요?”
“그랬지. 생각해보면 정말 헐값에 사긴 했군.”
“그럼 기왕 이득을 보는거, 4만 파운드는 어때요?”
“100배 이득을 보시자......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 아냐?”
“에이, 솔직히 라스알게티에서 4만 파운드로 집 한 채 살 수나 있을 거 같아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전셋값이 될까 말까에요. 그 정도라면 주설씨도 싸게 샀다고 생각할 걸요?”
“문제는 여긴 라스알게티가 아니라 프로하기온이라는 거지. 가만 있어봐...... 차라리 이렇게 된거말이야. 도박 한 번 걸어볼 생각 있냐?”
“도박이요? ‘아버님’의 딸에게 그런 불경한 걸 하라구요?”
“너랑 함께한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되가서 이런 말을 하는건데 말이야...... 이젠 그런 말 하기 민망하지도 않냐?”
“......”
내 말에 답답이는 쌜쭉해져서 내 옆구리를 종주먹으로 두드렸다. 뭐...... 말이 좋아 종주먹이지, 오랜만에 옆구리가 얼얼해졌다. 하지만 별수가 있나, 도덕적인 명제를 자신의 행동준거로 삼는 이에게 있어 그것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때 마다 심리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과오가 아닌, 타인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고 스스로 정당화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을. 어쨌거나 가식어린 화풀이를 다 할 때까지 묵묵히 견딘 뒤에, 나는 답답이의 귀에 대고 내 계획을 이야기 했다. 내 말이 끝나고도 답답이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는 모양인데......
“저보고 도둑놈 심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었지.”
“그럼 지금 이 심보는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거죠?”
“글쎄....... 나중에 직접 한번 붙여보지 그래.”
Channel 2. 아이리스
“우리 조건은 이게 다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
로키군의 말을 들은 주설씨의 얼굴은 복잡해졌습니다. 제가 직접 그녀의 마음속을 들어갔다가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제 멋대로 추측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설씨가 들은 말의 맥락과, 로키군이 보인 의외의 재능인 ‘언변’을 통해서 생각을 해보자면...... 아마 그녀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거 참...... 지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거여유?”
“주설이라는 사람을 겪어보니, 자신이 가슴에 품었다는 포부는 반드시 이뤄낼 거라는 믿음이 들었거든.”
“아까 주설씨도 우리 집에 가치 투자하는 거라고 말했잖아요. 우리도 주설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를 보고, 거기에 투자한 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로키군의 손을 꼭 붙들고 거들었어요. 제 말에 주설씨는 콧잔등이 시큰해졌는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마 고향사람들에게서도 받지 못한 믿음과 신뢰의 표현이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어요.
“좋아유 그럼. 그렇게 혀유. 그러믄 오늘부텀은 삼민상단 ‘주식회사’가 된 셈이구먼유.”
“엄밀히 따지자면 비상장 주식회사지만 말이야.”
주설은 로키군의 말에 씩 웃으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서류를 건네주었지요. 저와 로키군은 인주에 손가락을 찍은 뒤에,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것으로 그녀의 호의에 화답을 해주었습니다.
“열심히 혀가지구 상장까지 가보자구유.”
“그래요. 우리도 삼민상단이 잘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도록 할게요.”
로키군이 생각한 아이디어는 어찌보면 제가 생각했던 계획보다 더 용의주도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아이디어가 무엇인고 하니...... 계약금을 받는 대신에, 삼민상단의 이익금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주설씨와 함께 아케르날까지 가는 여정을 거쳐야 하고, 그녀가 보여준 비정하지만 확실한 결과를 창출해내는 상술을 눈앞에서 확인했어요.
‘로스차일드에 버금가는’이라는 그녀의 포부가 100% 달성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프로하기온에서 시작될 이 여정이 아케르날까지 가는 길에서 만날 도시들을 거치다보면...... 분명 우리가 바라는 소기의 성과를 이뤄내기에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그런 가능성 있는 이에게 투자를 한다...... 그것도 다 쓰러져 가는 집으로 말이죠. 그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한 선택이라는데 동의가 가더라구요.
“아따 뭔 경제드라마를 요로코롬 감동적으로 찍어버리나 몰겄네잉. 그라믄 여따가 점포 올리는거 맞소?”
“잉 그렇게 혀유.”
“그라믄 여따가 채리는 걸루 하구, 아까침에 우리가 말 헌대루 하씨요. 특히 요런데는 비단같은거 함부로 진열장 올려버리믄 넝마조각 되는건 금방잉께 딴넘한테 안걸리게 각별히 조심허구.”
“잉 알겄슈.”
관리들은 이제야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주설씨의 어께를 두드려주었습니다.
“가게 오픈하믄 연락혀요. 난중에 총독님이 사람을 갔다가 얼렁얼렁 보낼 수 있게 말이여.”
“총독님 헌티 걱정 같은거는 붙들어 매 두라고 전해 주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