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게임]PART 3. D-1 Data 06. A Guinea pig(몰모트)

후랑셩 작성일 05.05.14 11: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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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06. A Guinea pig(몰모트)

“오빠가 웬일이야?”


저녁을 먹기 위해 내가 그녀와 향한 곳은 종로 타워의 꼭대기에 위치한 ‘탑 클라우드’라는 스카이 라운지였다. 종로에서 가장 눈에 띄고 화려한 건물이 어째서 국세청 건물이 되었는가에 대한 모기업과 정부에 어떤 뒷거래 이야기는 이 거리에 넘치는 젊은이들에게는 관심 밖에 일이었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종로를 다니지만 언제나 쳐다보기만 했던 곳이었다.


건물의 최상층인 33층과 바로 아래층은 수십 미터 높이차를 두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이 스카이라운지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위에 올라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라이브로 팝 음악과 클래식이 연주되고 창 밖으로는 멀리 남산 타워의 불빛을 비롯해서 서울을 곳곳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퇴근길 차량의 연이은 전조등 불빛의 물결로 인해 도시속의 섬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 곳이라면 어
떤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해도 통과라고도 덧붙여 있었다.


나와 그녀는 웨이터에 안내에 따라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발아래로는 서울의 멋진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발 밑에 펼쳐진 황홀한 모습이 잠시지만 내가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듯 했다.


“진짜 멋지다!”


그녀 역시 감탄해 하고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눈이 튀어 나왔을지도 몰랐다. 내가 본 글에서 추천한 메뉴인 스테이크는 거의 내 보름 치 생활비와 비슷했다. 얼굴이 굳어진 것을 표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입을 열었다.


“마음껏 먹어. 오늘은 내가 사는 거야.”


“오빠 말 하면서 조금 더듬은 거 알아?”


“아…아니야.”


“호호.”


주문이 끝나고 약간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와 사귀게 된 것은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사귀게 되었고 군대에 가 있는 바람에 나는 지금껏 그녀에게 그 말을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흔한 반지조차 준 적이 없었다. 그녀를 위해 반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지금껏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를 품고 이곳에 온 것이다. 물론 여기 비용은 신중이 녀석에게 빌렸지만 말이다.


“저기 저 남자 프러포즈하는 가 봐.”


그녀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말대로 건너 건너 테이블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중인 듯 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양복의 남자는 무릎을 꿇고는 여자에게 반지를 건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장미 바구니가 있었다. 꽃이 적어도 수백 송이는 되어 보였다. 뭐하는 남자일까? 멋진 양복에 멋들어진 구두. 일류 기업에 다니는 남자일까? 아니면 의사? 변호사? 적어도 만화가 지망생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만화가 지망생으로서는 저렇게 큰 꽃바구니와 저렇게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를 주려면 사채를 끌어다 쓰지 않는 한 불가능 할 테니 말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봐!”


그녀의 말에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곳까지 온 거야?”


“그…게.”


그녀도 뭔가 눈치 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가방 속에서 그것을 꺼낼 수가 없었다. 후줄근한 청바지에 모자를 눌러쓴 채 초라한 반지를 지우에게 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말을 해줄 용기도 없었다.
그녀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여자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반지를 건네면 조금 전 그 여자보다 훨씬 좋아하며 활짝 웃음 지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그냥. 여기 전부터 여기 한 번 와보고 싶었어? 야경 멋지지 않아?”


“그래.”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미안해. 지우야 나중에 성공하면 그 때 꼭 산더미만한 꽃다발과 커다란 보석이 박힌 반지와 함께….’


나는 그게 지우를 위한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나란 놈은 왜 이렇게 한심 할까?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이 순간에도 얄팍한 자존심과 이기심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오빠는 자신 밖에 모르는 구나.”


지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말이었다. 한번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이었기에 더욱 충격은 컸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지우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가고 있었다.


“지…지우야.”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돌아보지 않는 그녀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 순간 온 몸에서 붉은 피가 솟아 나와 순식간에 손 모양으로 변했더니 나의 온 몸을 움켜쥐고 있었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내가 죽인 남자의 피였다. 그것이 나의 온 몸을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느새 지우는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지…지우야.”


다시 소리를 지려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머리에 느껴졌다. 뇌 일부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한 통증이었다.


[퍽!]


나는 화들짝 놀랐다. 타격을 받은 곳은 뒤통수였고 내 뒤통수에 타격을 준 것은 신중이의 커다란 주먹이었다.


“왜 쳐? 이 새끼야.”


“아니. 너무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꿈 꿨냐?”


“아… 아니야.”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내 몸을 살폈다. 당연히 내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피 대신 땀만 흥건하게 배어나와 젖어 있을 뿐이었다.


‘지우….’


왜 갑자기 그 날 꿈을 꾼 것일까? 후회 때문일까? 그 날 나는 그녀에게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을 하려고 했었다.
‘사랑 한다’는 이 말을 말이다. 나는 지금껏 그녀에게 한 번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왜일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이 순간에도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더 이상 후회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그다지 흐르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 보낸 자료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시 잠
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여진 자료로 눈을 돌렸다. 자료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수십 장의 사진들. 꾸며진 사진들이 아니었다. 그 중의 몇 장은 그녀가 집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 자는 모습. 심지어는 옷을 갈아입는 모습까지 있었다. 사진 모두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들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언제나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친근한 사람이 찍은 듯 했다.


‘망원 렌즈를 이용해서 찍은 것일까?’


이것을 나에게 보낸 사람은 몰래 그리고 아주 정성스럽게 이 사진들을 찍은 것 같았다.


그리고 수십 페이지의 출력물들.


프로필


성명 : 유혜원
출생 : 1985년 11월 16일
신장 : 168cm
체중 : 48kg
가족 관계 동생 - 유선일
약력 : 14살 때 동생 과 함께 미국 입양 후 미국 생활.
미국 하버드대 휴학
데뷔 : 2007년 S전자 CF모델 출연.
출연작 : 토지(MBC, 2008), 백야(SNS, 2009),러브스토리 인 서울(2009), 그 여자는 외계인이었다(2008)
남극점(2010)



간단한 프로필로 시작한 그녀의 자료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했다. 그녀의 집의 주소를 비롯해 그녀의 집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집의 구조와 집에 설치 된 방법 장치를 비롯해서 경찰 순찰차의 순찰 도는 시간과 사설 경비업체의 순찰 시간까지 조사되어 있었다. 이웃집까지의 거리 및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까지 조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상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의 요일별 스케줄이 아주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듯 했다. 그녀는 주 이동수단은 소속 메니저먼트사 차량이었다. 최근 찍고 있는 '남극점
‘ 이라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현재는 영화 홍보 중인 모양이었다.


‘하필 왜 이 여자일까? 왜 이 여자를 죽이라는 것일까? 무슨 이유가 있을까?’


내가 죽인 남자를 떠올렸다. 남자는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면이라는 것일까? 그 남자가 마치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 남자가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었다. 아직도 가슴에 칼에 찔린 상처가 쑤셨다.


내가 죽인 남자는 16명의 소녀를 죽이고 그 소녀의 시체를 모아 놓은 변태 살인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혜원.


‘이 여자에게도 숨겨진 무엇인가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팬 사이트의 이름은 ‘OH, MY Goddess'이었고 팬들은 그녀를 여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유혜원의 팬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의 선행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나쁜 기사는 데뷔 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관리를 잘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혹시?’


끔찍한 변태 살인마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여신 같은 사람을?


‘말도 안 되는 생각일까?’


나는 잠시 자료를 내려놓고 신중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유혜원의 사진을 보던 녀석은 어느새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계속 자신을 보는 것을 느꼈는지 잠시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마웠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나와 신중이 동시에 인상이 구겨졌다. 나도 생전에 내 입에서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순간이 올지는 꿈에도 몰랐고 녀석 역시 내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할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뭐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녀석 때문에 그 남자를 죽일 수 있었다. 아마도 녀석이 없었더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우 역시…. 하지만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나를 따라 다닐 뿐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나는 애써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녀석이 물었다.


“넌 빠져.”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뭘 빠져?”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의심이 갔지만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이제 빠지라고.”


녀석은 잠시 멍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천장을 한번 쳐다보다가 다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
다. 아무래도 할말을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리가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한 1분 쯤 지났을까 녀석이 다
시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싫어.”


1분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뱉은 말이었다.


“빠져!”


나도 단호하게 다시 한번 외쳤다.


“싫어!”


녀석은 이번에는 아주 빠르게 내 말을 받아쳤다. 다시 한번 ‘빠져’라고 하려다가 우습지도 않은 코미디의 한 장
면을 연출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이번에는 장난이 아냐.”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알아.”


“이 여자를 죽여야 한단 말이야. 이 여자를…. 나는 상관없어. 이 여자가 착한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여신이든 무엇이든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뭘?”


“지우가 너 여자 친구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내 친구인 것도 잊지 마. 우리가 몇 살부터 같이 살아왔는지도
말이야. 사실 지우를 안 것은 내가 너보다 훨씬 빨라. 너는 2학년 때 시골에서 이사 왔잖아. 나는 그전부터 지우
를 알아왔다고. 그리고 말이야…”


녀석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뭐?”


나는 답답해서 녀석을 재촉했다.


“사실 지우를 좋아하는 것은 너뿐이 아냐.”


녀석의 말뜻이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것이 나는 모니터 화면의 불빛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는 잠깐 깜짝 놀랐다.


“사실 나도 지우를 좋아해.”


“당연하지.”


내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거 말구 나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녀석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녀석의 입에서 이런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그 대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흠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나는 네가 나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이미 포기 했으니깐.”


“무…무슨 말?”


“무슨 말은 고 1때 놀이터에서 소주 까면서 한 말 말이야.”


갑자기 옛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때 너 울면서 나한테 그랬잖아. 지우가 좋다고 어쩌고 하면서 지우가 다른 녀석 만나면 죽는다나 어쩐다나 눈물 콧물 범벅 읍…….”


나는 녀석의 커다란 입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 새끼가 소설을 쓰고 지랄이야.”


녀석은 나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는 다시 입을 나불거렸다.


“소설은 무슨 형님이 그때 네가 하도 불쌍해서 아니 네 놈 우는 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지우 양보 한거야.”


녀석이 씩 웃어 보였다. 둘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나 보고 빠지라는 소리는 하지 마.”


녀석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몇 번 매만졌다.


“모르겠다.”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이 뭐라고 하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 남자를 죽이는 것은 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너 생각 나냐?”


“뭐가?”


“그 녀석. 지우가 고 1때 사귀었던 서클 선배라는 녀석. 네가 그 소리 듣고 울고 불고 난리 쳤잖아.”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소주 마시고 울고 녀석에게 난리 친 다음 날 나와 신중이 녀석은 조용히 지우와 사귄다는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우리와 같은 학년이었다. 신중이 녀석이 조용히 자신을 지우 사촌 오빠라고 소개했고 지우를 사귀려면 자신과 맞장을 떠서 이겨야 한다고 했다. 녀석은 벌벌 떨면서 빌었다. 고등학교 시절 신중이 녀석을 모르면 우리 동네에서는 간첩일 정도로 유명했다.


우리는 그 때 일을 생각하며 실컷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어느새 사그라졌고 침묵이 이어졌다. 녀석은 다시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준비한 것이란 말인가?


무고한 사람을 죽여 그의 머리를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 지우를 납치해 나를 이벤트에 참여 시켰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완전히 살인범으로 몰았다. 하지만 경찰에 잡힐 뻔한 나를 탈출 시켰다. 나는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다.


내가 죽인 살인마는 경찰도 잡지 못했던 아니 아예 정체조차 모르던 살인마였던 것 같았다. 그런 살인마를 완벽하게 조사해 내고 있는 집단이었다.


단순한 집단이 아니었다.


국가!


이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개인이 살인을 저지르면 범죄였다. 하지만 국가의 개념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살인은 당연한 것이었고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 국가라는 개념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나에게 전화를 걸고 지령을 내리고 있는 여자는 ‘실험’이라는 단어를 한번 들먹였다. 실수인지 일부러 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국가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엉뚱한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음모론 같은 것을 올려놓은 인터넷 사이트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이거나 추측일뿐이었다. 게다가 그런 실험에는 정확한 목적이 있었다. 군사적 혹은 정치적 목적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살인 게임을 시키는데 무슨 목적이 있단 말인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들의 실험실에 갇힌 실험용 몰모트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실험을 위하여 나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다. 미로에 넣은 몰모트를 지정된 장소로 몰기 위해 전지 자극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들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장 박동이 급속하게 치솟았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이벤트에 참여한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전화의 여자 말이 떠올랐다. 이 이벤트를 끝낸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미 사람 한 명을 죽였다. 하지만 그 다지 죄책감 따위는 들지 않았다. 손에는 아직 남자를 찔렀을 때의 느낌이 남아 있었고 온 몸을 적신 남자의 피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지만 그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왼쪽 가슴의 상처를 만져 보았다. 반창고를 붙여 놓았다. 피는 멈췄지만 아직도 고통은 느껴졌다. 만약 신중이 녀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이다.


[두근! 두근!]


상처 밑의 심장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루사이에 나는 많은 죽음을 마주쳤다. 죽은 남자의 머리를 보았고 수십 명의 소녀들의 시체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죽인 남자의 시체도 보았다.


죽음.


아주 멀리에 있을 거라고 믿어왔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칼이 조금만 더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 칼이 내 심장을 찔렀다면 내 몸을 흐르고 있는 피들은 공중으로 뿜어져 나왔을 것이고 나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사람에게 영혼이 존재하고 사후 세상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니면 죽게 되면 그래도 끝인 것일까?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처럼 내 세포하나 모두 분해 되어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원소 단위로 분해 되어 다시 지구로 환원되는 것일까?’


내가 죽는 다 해도 이 세상은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죽고 있을 것이다. 전쟁, 기근, 질병으로 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살아 있는 사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런 죽음을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잊어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죽음은 금세 잊혀 질 것이다. 나의 존체 자체는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갑자기 몸이 떨려왔다.


“괜찮냐?”


신중이 녀석이 내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괜…괜찮아.”


나는 지우를 떠올렸다.


‘지우가 죽는다면?’


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내 머릿속 커다란 유혹에 빠져들었다.


‘과연 나는 지우가 없이 살수 있을까? 만약 지우가 죽는다면 지우를 잊지 않고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나 역시 지우를 점점 잊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갑자기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직은 내가 그것을 확신할 자신감이 없었다. 나와 지우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를 알아가고 그리고 서로를 사랑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이 여자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유혜원!


이 여자를.



[2010년 07월 23일 토요일 05:23]


“여기서 뭐하는 거야?”


쉴 사이 없이 구시렁거리는 신중이 녀석을 내버려두고 나는 창 너머로 도로를 잘 관찰했다. 우리는 지금 비룡빌딩이라고 적혀 있는 작은 4층짜리 상업건물 2층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앞에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있었고 우리가 있는 이 건물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LG25시가 있었다.


“야!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신중이 녀석이 대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목을 졸라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기에 나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차타고 가려고.”


“차?”


“그래.”


녀석은 진짜 나의 목을 조를 듯이 거대한 손을 공중에 휘두르며 나를 위협하며 입을 열었다.


“차 타려면 차도로 나가야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창 밖만 보고 있으면 차가 생기냐?”


“조용히 좀 말해.”


아무도 없는 빌딩이고 아직 새벽인지 녀석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댔다.


“차 훔치려는 거야!”


나는 이렇게 잘라 말하고 다시 밖을 관찰했다. 아직 출근 시간 전이고 해서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멀리서 택시 한대가 다가왔다. 마침 신호등이 보행신호로 바뀌었다. 사람 한명 없는 횡단보도였지만 택시는 정확히 정지선에 차를 가져다 멈추었다가 신호가 바뀌자 출발했다. 신중이 녀석은 이제야 아무 말 없이 나와
같이 창으로 도로변을 관찰했다.


“저쪽에서 한대 온다.”


신중이가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그 차를 살펴보았다.


“혼자냐?”


내가 물었다. 녀석은 상당히 눈이 좋았다. 중, 고등학교 시절 시력검사에서 양쪽 눈 모두 2.0을 받은 것은 이 녀석 한명뿐이었다.


“음. 아니 옆에 누가 타고 있는데.”


“그럼 패스.”


패스라고 할 것도 없이 그 차는 쌩하니 횡단보도를 지나 사라져갔다. 5분이 지났지만 차 한대 지나가지 않았다.


“다시 한대 온다.”


이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소리가 들려.”


“뭐?”


나는 조금 황당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저쪽 멀리 사거리에서 한대의 차가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은 청력까지 좋았다. 내가 숨겨놓은 먹을 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을 보면 후각도 개 수준이다. 이 녀석은 신체는 하느님이 내린 선물인 듯싶다. 물론 실수로 뇌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멍청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한 명이냐?”


“어. 여자 한 명이다.


“그래. 제발 멈춰라! 스타킹이 필요하던지, 생리대가 필요하던지 아니면 담배가 떨어졌던지 아무튼 멈춰라!”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기도가 통했는지 차는 이 쪽으로 다가오면서 속도를 줄였다. 물론 신호등 때문일 수도 있다. 때마침 신호등이 보행신호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차는 신호등에 멈추지 않고 도로변에 붙여 정차했다. 잠시 뒤 차에 비상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됐다.”


여자는 차에서 내렸다. 차의 시동을 켜둔 채였다. 여자는 신호등이 꺼질까봐 황급히 횡단보도를 건너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자!”


우리는 재빠르게 빌딩을 내려갔다.


“네가 운전해!”


편의점을 들어간 여자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시선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와 신중이는 재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시트에 놓여진 가방을 차 밖에다 던져 놓았다.


“출발 해!”


그리고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야 좌회전 해!”


내 말에 신중이는 코너에서 바로 좌회전을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가 편의점에서 나오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내 코너를 돌자 시야에서 편의점이 사라졌다. 그 여자는 편의점에서 나오면 무척이나 당황해 할 것이다. 갑자기 차가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아마도 무슨 일이 있어도 차의 시동을 끄고 다니게 될 것이다.


“성공이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서 본거냐?”


“뭘?”


“차 훔치는 거 말이야.”


어디서 본걸까? 책? 영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난 것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더럽게 좁네.”


녀석은 구시렁거리면서 시트를 조정했다. 덩치 작은 여자가 몰던 차여서 녀석이 운전하기에 비좁은 것이 당연했
다. 녀석은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시트를 조정했다.


“아씨. 훔치려면 더 좋은 차를 훔칠걸!”


“안돼. 요즘 좋은 차는 다 위성 추적이 돼.”


시트를 조정해도 녀석의 머리는 거의 차 지붕에 맞닿으려고 했다.


“아! 무슨 여자 차가 이렇게 지저분하냐. 냄새도 심하고!”


재떨이에는 담배가 가득 했다. 그리고 빈 담배곽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간 모양이었다. 이번 기회에 담배를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기름도 없네.”


“쳇!”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유소에 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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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힘드시죠. 여전히 긴 내용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찮지만 추천은 한번 해주시는 게 센스~~~

그럼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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