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마을, 서리 6편

달콤상상 작성일 07.03.27 00: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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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나를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떡값을 주려고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저… 할머니 어디 사세요? 여기 사세요?"
"아니."

떡을 넣은 봉지를 내게 주면서 할머니는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할머니의 나이는 꽤나 많아 보였다. 얼굴이 주름이 져 살색파도가 이는 것 같았다. 하얗게 쉰 머리카락은 허리로 흘러내리지 않게 목뒤로 둥글게 묶었고, 턱은 길게 삐져나왔다. 원래 그렇게 삐져 나온 게 아니고 얼굴에 가죽밖에 붙어있지 않아 턱뼈가 나온 것일 것이다.

"여기서 먼 곳에 살아."
"어디신데요?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서 떡을 파세요?"
"어쩔 수 없거든."
"어쩔 수 없다니요?"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뒤로 걸어왔다. 일어섰지만 내 가슴팍에 간신히 닿을 듯한 정말 작은 키였다.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서서 왜 내 뒤로 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뒤에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뭐하세요."

나는 고개만 살짝 돌리고 말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열기가 충분히 느껴졌다.

"너 때문이야."
"뭐가요."
"니가 이곳에 데리고 왔잖아!"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먹이를 빼앗긴 사자의 울부짖음 같았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려 할머니를 봤지만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심장이 조여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히 들고 있는 봉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아악!"

경악을 하며 비닐봉지를 냅다 던졌다. 떡은 없었고 수백마리의 실지렁이가 비비꼬고 있었다. 난 택시를 잡기 위해 큰 길거리로 나와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이제는 어느정도 알 것 같다. 서리의 관련된 무언가가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현상들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다. 이젠 난 그것들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때다.
택시비를 내고 나니 얼마 없던 지갑에는 달랑 삼천원이 들어 있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 눈을 감고 할머니를 생각하다가 금새 잠이 들었다.

"아침 먹어라."

원래 아침은 맛이 너무 없어 잘 먹지 않았는데 오늘은 왠지 흰 쌀밥과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어져 엄마의 목소리 들리고 나서 곧바로 일어났다. 헝크러진 머리칼을 비비며 식탁으로 가 앉았다. 계란말이와 참기름이 발라 고소한 냄새가 나는 김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웬일이래. 그렇게 먹으라고 해도 안 먹던 아침을 먹게."

엄마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코웃음을 쳤다. 숟가락을 들어 콩나물국물을 떠서 먹었다. 맑은 콩나물국이라 먹넘김이 쉽고 시원했다.

"맛있네."
"정말? 아들한테 칭찬도 받고 오늘 복권이나 사야겠다."

아마 처음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는 칭찬 같은 건 하지 않은 메마른 놈이 갑자기 맛있다 라고 칭찬을 하니 엄마는 꽤나 기분이 좋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혜영과 무당의 일을 기억했다. 혜영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는데 그게 어딨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꼭 쓰려면 없는 게 세상일이니까. 마침 소파밑에서 전화벨이 울려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 왜 이게 그곳에 들어 가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이것조차 서리 때문이라면 당장이라도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리. 전화는 혜영에게 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뭐예요! 어쩜 전화 한 통 없이. 사람이 왜 그래요."
"미안해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어떻게 잊고 있을 수가 있어요. 무당할머니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잖아요."

혜영은 거의 울먹이며 말을 했다.

"어디예요, 서리 다 왔나요?"
"아니요. 아직 버스요. 거의 다 왔어요. 그럼 끊을게요. 좀다 전화 할게요."

난 갑자기 혜영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혜영의 집에서 책만 뒤지면서 서리의 대한 자료를 찾을 때는 몰랐는데 금방 통화를 해보니 목소리도 꽤 예뻤다. 아침에 먹는 한 조각의 상큼한 사과.
별로 재밌는 것도 하지 않아서 텔레비전을 끄고 농구공을 들고 공원으로 나갔다. 희수도 농구를 좋아해서 강의가 없는 날에는 항상 농구를 하곤 했다. 지금 갖고 나가는 공도 희수의 공인데 얼마 전에 내게 맡겼다.
공원의 농구골대에는 그물이 거의 뜯겨 나가 있었다. 한달도 넘게 뜯겨 나가 있는데도 갈지 않는다. 공원도 관리자가 있고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인데 얼마 안하는 그물을 갈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났다. 링을 향해 공을 던졌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촉감과 팔에 들어가는 힘이 좋았다. 한바탕 해서 땀을 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곳 공원에서 농구공을 던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동안 공만 계속 던졌다.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혜영에게 전화가 왔다. 별 다른 말은 없었고 내일 아침에 만나자는 것이었다. 서리의 대한 얘기라서 당연히 무당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난 저녁을 먹은 뒤 일찍 잠에 들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악몽 같은 걸 꾸지 않아서 축복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당연한 것인데도 그랬다. 무당의 말을 들어보면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니 되도록이면 희수가 퇴원하기 전에 해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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