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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확실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제사나 명절때나 장농속에서 꺼내는 영정사진에서만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무당은 내가 앉기도 전에 놀랄만한 말을 했다. 어찌보면 우스운 말인데 대놓고 웃을 수가 없는 이유가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무당이 내게 한 말은 할아버지의 대한 얘기, 정확한 생김새를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무당이 나도 실제로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뿐이야."
"네?"
"그것밖에 알 수 없었다고. 분명 무슨 관련이 있어."
나에게는 서리에 가서 기껏 알아온 게 할아버지 얼굴이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깐동안 정적이 흐르다가 무당이 섬찍한 미소를 지었다.
"돈을 받지 않겠어."
"무슨 돈이요?"
"그곳에 가서 굿을 쳐야겠어. 그 마을은 한 맺힌 귀신들이 잔뜩 있어. 그 마을 자체가 한에 맺혀 있어!"
너무 심오한 말에 가슴 깊이 떨림이 느껴왔다. 굿을 쳐야 한다는 무당을 굳이 말리 마음은 없어서 그러라고 했지만 왠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번에 무당이 내게 한 말중 가장 걸리는 것이 희수와 나의 관계였다. 무턱대고 몇 년동안 죽고 못 사는 친구보고 혈연적으로 관계가 일거라고 한다면 선뜻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같이 서리에 갔다온 혜영은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것이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걸렸다. 옆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만 듣던 혜영을 뚜렷이 쳐다보았다. 단지 서리의 대해 궁금하다고 아무 관련도 없는 나를 그것도 귀신들이 득실하다는 마을을 관련해서 도와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무당집을 나와 식당에 갔다. 우동이 맛있는 집이었다. 혜영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이곳에 데리고 왔으면서 다른 메뉴를 시켰다. 그런 모습이 귀여웠다.
"와, 맛있겠다."
음식이 나오자 혜영이 감탄사를 질렸다.
"왜 저를 도와주세요?"
"말했잖아요. 서리가 궁금하다고."
"그것만 이유가 아니잖아요."
나는 전혀 우스운 말을 하지 않았는데 혜영은 웃었다.
"식겠어요. 어서 먹어요."
혜영은 그것의 대한 답을 하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다. 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아지랑이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그릇에 젓가락을 담갔다. 우동을 먹고 희수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는데 병실에 희수가 없어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퇴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주일은 더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곧바로 희수에게 전화를 했더니 입원비만 낭비하는 것 같다고 집에서 쉬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모르게 퇴원을 하고 연락도 안 할 수가 있는지 약간 섭섭했다.
"희수씨… 괜찮을까요?"
"그녀석 원래 약한 체질인데 고등학교 때 개근을 했어요. 다른 것으로 상을 못 타니 개근상이라도 타야 한다며 말이죠. 감기가 걸리면 한달은 기본으로 갔어요. 양호실을 하두 가서 양호선생이랑 사귄다는 소문도 돌았죠. 양호선생이 그 소문을 듣고 버럭 화를 냈는데 희수는 마음에 안 들었을 거에요. 자신이 더 화를 내야 논리에 맞거든요. 미저리 아시죠? 간호사가 작가 가둬놓고… 뭐, 그런 영화요. 양호선생이 꼭 그 간호사처럼 생겼거든요. 성질도 그때 화를 내면서 다 탄로났죠, 뭐…."
혜영과 헤어지고 희수의 집으로 향했다. 전철에서 내려 희수네 집인 출구로 올라갈 때 떡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 할머니를 다시 본다면 온 몸이 석고처럼 굳어버릴 것 같았다. 걱정과는 달리 희수의 집으로 갈 때까지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뻐꾸기가 울어댄다. 복도에는 매정하다고 느낄정도로 싸늘하다. 뻐꾸기가 계속 울어도 희수가 문을 열지 않아 불안한 느낌이 온 몸에 싸감아 돌았다.
"왜 문을 안 열지? 분명 집에 있다고 했는데…."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희수를 다치게 만든 할머니를 생각했다. 서리의 귀신들이 또 어떤 미친짓을 희수에게 하는지 모른다. 급하게 희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긴 신호음만 들렸다.
"희수야! 문좀 열어봐! 희수야!"
문을 쾅쾅 치면서 희수를 불렀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머리에 나면서 순식간에 희수가 피로 물든 모습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 모습을 깬 것은 문을 열고 나온 희수였다.
"왜 이리 문을 안 여는거야. 이 새끼야."
"왜 그래. 잠좀 자다가 열라고 해도 다리가 이래서…."
"그러니까 퇴원을 빨리 해갖고는."
정말 화난 듯 희수에게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희수는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더 심하게 다쳤으면 미라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농담식으로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던 무당있지? 오늘 서리에 갔다왔어. 혜영씨랑."
"어, 뭐래?"
"별 소리는 안하고 뜬금없이 우리 할아버지 생김새를 말하더라고.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기가 막히게 들어맞어. 그건 그렇다치고 왜 갑자기 우리 할아버지를 말하는지 말야. 이상하긴 했어."
"너희 할아버지 너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며."
"응. 나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영정사진에서만 본 할아버지 얼굴을 정확하게 말했단 말야."
나는 벌써 소파에 앉아서 말하고 있는데 희수는 한쪽 다리를 절며 낑낑대고 나에게 오고 있었다. 집안은 너무 어두워 얼핏보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낑낑거리는 신음소리만 나는 것 같았다.
"불좀 켜고 살아라. 왜 이리 어둡냐?"
"귀찮어. 니가 좀 켜. 베란다 문 옆에 있어."
내가 스위치를 누르자 현광등이 반짝 거리더니 거실 전체를 밝혔다. 현광등을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소파 밑의 어두운 그림자를 밝히지 못하는 것처럼 서리의 대한 것은 겉으로만 알 뿐 진짜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무당이 오늘 나한테 그곳에 가서 굿을 한다고 그랬어."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