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의 집시 4

풍경운영자즐 작성일 07.07.03 23: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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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프(worp)현상

 

 

 


날이 밝자 부지런한 진오가 명근 보다 먼저 일어나 PDA를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진오는 PDA의 주파수를 잡는 걸 포기했다. 대신에 수봉산에 일어난 사건파일을 조사하고 있었다. 수수께끼의 수봉산 실종사건. 그것의 공통점을 알아내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집으로 되돌아갔으며, 어째서 살인과 자살을 했는지 의문을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근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붉은 손수건이 걸린 나무와 어제 처리한 빈 사발 더미가 쌓여 있었다.

 

명근은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8시 다 되가네.”

 

텐트 밖으로 나오자 하품을 하는 그의 입에서 흰 입김이 뿜어 나왔다. 기온이 어제보다 확실히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잠바를 걸치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진오의 시선을 따라 PDA의 화면을 바라다보았다.

 

“뭐 알아낸 것이라도 있어?”

 

“이것 좀 봐봐.”

 

“뭔데?”

 

명근은 잠바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너덜너덜한 휴지를 꺼내어 시원하게 코를 푼 뒤, 진오가 가리킨 텍스트 문서파일을 읽어 내려갔다.

 

“11명의 생명을 앗아간 저주받은 산. 과연 이 산에는 무슨 저주(詛呪)가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수봉산에 천년 묵은 나무가 있거나, 아니면 옛날 전설에나 나올법한 마녀(魔女)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소문은 단지 소문일 뿐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러나 사망한 이들의 공통점은 실종된 지 십 수일 후에 스스로 집을 찾아왔다는 것이고, 또 다른 공통점은 사망 직전 자신의 살을 몽땅 뜯어먹으며 배고픔을 호소하다가 사망했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 중 7명은 친구와 친부모, 혹은 친동생과 같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며, 인육(人肉) 외의 음식은 결코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야야, 이거 전에 네가 읽어보라고 줬던 자료잖아.”

 

“맞아. 우리가 수봉산에 들어오기 전에 써있던 경고문 기억나지? 최고의 불행을 맞기 싫으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 라며 적혀 있던 거. 수봉산에서 실종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왔지만 최악의 불행(不幸)을 만들었고, 겪었어.”

 

“그렇긴 하지만 그건 우리가 길을 잃은 것하곤 아무 관계가 없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이상하잖아. 이들은 너무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갔다고. 우리처럼 길을 헤맸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야. 표시해 둔 것이라고는 헝겊 한 개와 나무의 글씨 뿐이야. 더군다나 이들은 모두 인육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나와 있잖아. 그럼 십 수일 동안 대체 무엇을 먹고 산 속을 헤맸겠어?"

 

그때서야 명근도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인……육?”

 

“그래. 바로 인육뿐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자료들은 왠지 나사 하나가 빠진 느낌이야. 잘 봐. 실종된 사람들과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인육을 먹는 실종자들의 반응과 제 4의 눈으로 설명된 심각한 워프현상들. 무언가 맞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잖아.”

 

“아씨. 그냥 대충대충 생각하면 될 거 아니냐. 여기에 헝겊이 있으니까 이 헝겊의 수수께끼를 풀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명근은 담배를 한 개피 입에 물며 가방을 뒤져서 휴지를 꺼냈다. 그는 풀이 우거진 구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느 때와 같이 아침행사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명근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침부터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해. 설마하니 내가 네 살이라도 뜯어 먹을까봐 그러냐? 난 네 살 줘도 안 먹는다. 아침 라면은 내가 끓일게. 우선 자연이 나를 부르는 관계로 잠시 볼일 좀 보고 오마.”

 

그가 볼일을 보려는 자리에는 어젯밤에 진오가 잘 분리해둔 빈 컵라면 사발더미가 깔끔하게 쌓여 있었다. 명근은 그 사발더미를 재떨이로 삼으며 담뱃재를 털었다.

 

그가 바지를 벗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데 명근 주위로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찬 공기에 젖어 있는 명근으로서는 다른 기운을 느끼지 못한 채 아랫배에 꽉 힘을 줄뿐이었다.

 

“으아, 시원하다!”

 

배설을 마친 명근은 담배를 사발에 집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이상하리 만큼 고요한 안개가 자신 주위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얀 안개는 어느새 주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직감이 좋지 않음을 느낀 명근은 재빨리 바지를 올려 입으며 텐트를 향해 달려갔다.

 

“헉! 맙소사!”

 

명근은 진오와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볼일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오가 있어야 할 곳에는 길다란 잡풀과 나무의 잔가지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빈 사발더미는 보이지가 않았다.

 

어이된 영문인지 몰라 어제 나무에 매달려 있던 붉은 색의 헝겊이라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리를 뒤져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하얀 안개가 명근의 시야를 가린 뒤부터 진오와 명근은 보이지 않는 막(膜)에 갈라지게 된 것이다.

 

명근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쩔쩔 매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야, 박진오오!”

 

그의 목소리는 멀리 메아리가 되어 산 속에 울려 퍼질 뿐, 들려야 할 진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명근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젠장할, 우라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박진오! 내 말 들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향도 없이 무작정 달렸다. 계속 그 상태로 달리자, 명근의 목소리는 점점 쉬어 갔다. 숨조차 가누지 못할 만큼 체력이 소모되어서야 명근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박진오---!”

 

이때 명근의 눈이 희미해지더니 앞의 나무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트북을 꺼내들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작업하는 진오의 모습이었다.

 

“아니?! 진오야!”

 

명근은 곧장 눈앞에 보이는 나무로 몸을 날렸다. 돌연 온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원래 명근의 몸은 나무를 때렸고, 진오의 모습이라는 것은 희끄무레한 안개가 잠시 비추어 준 허상일 뿐이었다. 진오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니까 몸이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여기가 어디야?! 박진오, 얌마. 내 말 안들려? 안들리냐고!”

 

그는 참지 못하고 주변에서 제일 큰 나무를 고른 뒤, 위로 올라갔다. 그는 본래가 근육질이어서 그만큼 팔의 힘이 강했다.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운동신경이 타고난 편이어서 금세 나무 꼭대기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올라간 것이었는데 그는 뜻밖의 결과를 보고야 말았다.

 

“세……상에!”

 

그의 입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작은 동산일 뿐이었던 수봉산이 온통 나무로만 된 밀림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아파트 하나, 빌딩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명근이 서 있는 이 세상은 오직 숲으로만 된 미궁(迷宮)이었다.

 

명근은 어젯밤 진오가 말했던 고스트하우스라는 것을 떠올리며 한 차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고스트하우스로군. 고스트하우스야…….”

 

고스트하우스에 갇혔다는 말을 진오에게 들었을 땐 그나마 옆에 동료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따로 떨어져서 보이지 않는 입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명근의 심장은 거칠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조작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진오가 아까 노트북을 꺼내들었지. 그 녀석 노트북 건전지 아낀다고 PDA만 죽어라 쓰는데, 노트북을 꺼내든 것을 보면 녀석도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았나 보군. 흐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녀석이 날 찾을 때까지 잠자코 있을 수도 없잖아.”

 

그는 두 손으로 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공중에서 몇 차례 몸을 흔들다가 손을 놓고 땅 밑으로 착지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한담?”

 

진오를 찾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막상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몰랐다. 명근은 상황판단이 진오처럼 재빠르지 못하고, 오직 무력하나만을 믿는 과격적인 사내였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의 모든 나무들을 몽땅 다 불태우던가,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뿐이었다.

 

“만약 진오가 내 상황에 놓였더라면 그 녀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으아, 난 혼자서 머리 굴리는 것이 제일 귀찮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명근은 바닥에 주저앉아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야 했다.

 

“안개가 지나갔을 때마다 장소가 바뀌는 것 같았어. 내가 대변을 보고 있을 때도 안개가 보였었고, 그 다음에는 이 숲으로 주변이 변해 있었어. 그리고 안개 틈 사이로나마 진오가 무얼 하는지 보였었고, 안개……. 안개…….”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불연 듯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혹시…”

 

명근은 소리쳤다.

 

“워프(warp)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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