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의 집시 7

풍경운영자즐 작성일 07.07.03 23: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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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도플갱어(Doppleganger)

 

 

 


“으…….”

 

진오는 지독한 현기증을 느꼈다. 깨어난 즉시 뒤통수를 만져보니 매우 따끔거렸다. 손에 굳은 피가 묻었다. 눈앞의 돌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니 그것으로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은 듯 했다

 

벌써부터 날이 저무는 것을 보니 반나절 동안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진오는 황급히 일어나 명근을 찾았다. 정신을 잃어서도 계속 두들겨 맞았는지 온 몸이 멍 투성이에다가 피투성이였다. 기력이 쇠진하여 일어났어도 도로 바닥에 쓰러지곤 하였다. 정신력으로 겨우 버텨 걸음을 옮겼다.

 

텐트 주변은 아침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노트북과 PDA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셔져 있었다.

 

명근은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기에 진오의 물건을 이렇게 함부로 부셔놓을 녀석이 결코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명근의 성격이 순식간에 바뀌어졌다는 증거였다.

 

“하……아…….”

 

가까스로 텐트로 기어 들어가 가방을 뒤져 스턴건(Stun Gun)을 찾아 호주머니에 챙겼다.

 

유명근과 5년 이상을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해 온 진오는 그 누구보다도 명근을 잘 알고 있었다.

 

명근은 격투기와 검도는 물론 기타 여러 가지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힘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었다.

 

보호차원으로 들고 다니는 스턴건이 명근을 견제하기 위해 쓰일 줄은 진오 자신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계집애도 아니고 스턴건이 뭐냐. 나만 믿으면 되잖아. 네 든든한 보디가드. 그 이름도 유명한 유.명.근! 내가 있잖냐.-

 

 

 


과거 명근이 하던 말이 떠올라 진오는 씁쓸히 웃었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마당에 진오가 이 스턴건으로 명근을 이길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저놈은 진심으로 날 죽일 생각이었어. 언제 날 죽일지 몰라. 그러니 이걸로 기절을 시켜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야 해.’

 

진오가 심각하게 생각에 잠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을 때, 텐트 뒤쪽에서 휭휭, 바람소리가 들렸다.

 

진오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텐트 밖을 나와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은 거의 저녁 무렵이라 바람이 심하게 불고, 온도가 낮았다. 하지만 휭휭, 거리는 이 소리는 자연이 내는 바람소리가 아니라 손으로 깃발을 흔들 때의 소리와 비슷했다.

 

관목(灌木)을 헤치고 이십 보 가량의 걸음을 옮긴 후 진오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었다.

 

명근이 바위에 앉아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킨 채 있었다.

 

허공에는 아침에 명근이 나르던 돌덩이들이 날아 댕겼다. 한 두 개의 돌덩이가 아니었다. 눈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돌덩이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까 그가 텐트 안에서 듣던 휭휭, 소리는 바로 돌덩이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내는 소리였다. 바닥에는 몇 마리의 다람쥐와 새의 시체가 즐비했다. 날다 댕기는 돌덩이가 눈에 보이는 생명체를 무참히 학살한 흔적이었다.

 

‘원격이동(telekinesis)!’

 

지금 부리는 원격이동은 명근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였다.

 

진오가 근처로 다가온 것을 눈치 챈 명근이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네? 인간에게 이런 힘이 있을 줄은 몰랐는걸. 손도 대지 않았는데 물건이 날아 댕기지 않나, 생각만으로도 생명체를 죽일 수 있더라. 이 녀석 몸 상당히 마음에 들어. 진오야, 재밌지 않니?”

 

“하……학…….”

 

진오는 대답대신 눈을 감았다. 머리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늑골이 하나 나갔는지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숨쉬는 것이 답답하고 얕은 숨이 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진오의 얼굴이 심하게 찡그러졌다.

 

진오가 물었다.

 

“하……. 넌……대체 누구지?”

 

명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면 몰라? 네 친구 명근이잖아.”

 

진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넌 명근이 아니야. 명근이라면 이런 괴이한 행동을 취하지 않아.”

 

“무슨 소리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너도 잘 알텐데. 나에게는 원래 이런 능력이 있었고, 난 이 능력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것 뿐이야.”

 

“내가 아는 명근은……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어!”

 

확실히 그랬다. 명근은 진오와 합류하여 지카(ZICA) 홈페이지를 만들 때 그는 자신의 초능력을 없애고 싶다고 말한 바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명근는 초능력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진오는 령(靈)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탐구했다. 초능력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던 명근이 초능력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건 5년 간 명근을 보아온 진오가 백 프로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명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뭣?”

 

“과연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을까?”

 

진오의 기억 속에 명근은 행동 가짐이 거침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남다른 슬픔과 고생이 존재하는 사내였다.

 

명근이 진오 앞에서 초능력을 사용한 것도 우연 속에서 마주친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발휘된 것뿐이었다.

 

진오는 생각했다.

 

‘5년 전 명근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어두운 과거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했다. 초능력의 경위를 물어보았을 때 녀석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지곤 했었지.’

 

명근은 말했다.

 

“난 이 능력 때문에 정부의 부름을 받은 적이 수십 번이지. 그리고 원격이동 뿐만 아니라 6)염력(psychokinesis)과 7)텔레파시(telepathy). 이 모든 능력은 내가 4살 때부터 지니고 있었어. 손도 대지 않고 장난감을 옮기던 것을 발견한 나의 어머니는 경악해하셨고, 다른 사람 앞에서 이 능력을 사용하지 말라며 내게 신신당부(申申當付)를 하였지. 하지만 난 이해를 하지 못했어. 왜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손과 발을 움직여야만 하지만 나는 생각만으로 왜 모든 것이 되는데 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일까?”

 

진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저 놈은 명근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군.’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지. 칠판 지우개를 옮기라는 심부름에 따라 나도 모르게 원격이동을 발휘했었지. 허공에 뜬 칠판지우개를 본 교실 안의 학생들과 선생님은 비명을 질렀었어. 진오, 잘 들어. 난 이 능력을 싫어하지 않아. 그 반대지.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이 능력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네 정체가 대체 뭐야?!”

 

진오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지속되자 진오의 허리가 조금씩 구부러졌다. 진오는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신음을 이를 갈며 애써 참았다.

 

“내가 아는 명근은 나를……나를 이렇게 만들지도 않아!”

 

“그렇겠지. 네가 아는 내 모습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살던 유명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 난 과거에 정부로 끌려가 군사교육(軍事敎育)을 받았다. 거기서 염력으로 많은 생명체를 죽였어. 비록 하찮은 생쥐와 돼지뿐이었지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어. 정이 넘쳐 보이는 선생님 한 분이 내가 염력을 부리거나 원격이동을 발휘할 때면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셨으니까, 어린 마음에 칭찬을 듣고 싶어서 더욱 많은 생명체를 죽였지. 나중에는 날 괴롭히던 다른 소년을 생쥐와 돼지처럼 똑같이 죽여버렸어. 그런데 늘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칭찬하시던 선생이 친구 하나 죽였다고 날 때리는 거야. 그런 선생이 너무 귀찮아서 소년과 똑같이 죽여버렸지. 크크……. 그 때의 기분을 네 놈은 결코 모를 거야. 난 그 때가 좋아. 그 때로 돌아갈 거야. 여길 나가는 즉시 나는 정부로 다시 들어갈 생각이다!”

 

“넌……지금……. 제 정신이 아니야…….”

 

진오는 말하면서 조금씩 명근을 향해 다가갔다.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명근에게 접근을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스턴건을 작동시켜야 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숨이 끊길 지도 모른다. 저 녀석의 염력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저 녀석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해.’

 

이 때 그는 뭔가가 급히 떠올랐다.

 

그것은 고스트하우스와 수봉산의 연관성이었다. 그리고 심성(心性)이 변한 명근을 직접 대하자 느닷없이 떠오른 사실이었다. 진오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옳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고스트하우스와 수봉산의 연관성. 이 두 곳은 워프현상이 때때로 일어나며 그 때마다 또 다른 자신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럼 수봉산에서 나온 사람들은 왜 본질(本質)이 변하였던 것일까. 그건 바로 이들이 또 다른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본질은 수봉산에 남아 있던가 죽고, 가짜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었다. 해답을 얻은 진오는 가짜 명근에게서 벗어날 묘책(妙策)을 강구해야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지 않았나. 진오는 단순한 명근의 사고방식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진오는 말했다.

 

“명근의 기억과 육체를 거머쥐고 명근인 척 하는 것이겠지. 분명 넌 다른 생명체가 분명해.”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을 해보자고. 네가 자주 쓰던 방법이잖아. 입장을 바꾸는 거. 내 입장에서 보면 진오 너는 날 명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잖아.”

 

진오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처음에 나와 명근의 무덤을 만든다는 말. 그게 무슨 뜻인지 방금 전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군. 그러니 입장을 바꾸어 보자는 어리석은 말장난은 나한테 통하지 않아.”

 

명근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진오는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즉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내 생각이 맞다면 너는 명근의 기억과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명근이지. 그리고 진짜 명근은 나와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기억을 지닌 다른 진오에게 지금의 나와 똑같은 상황에 놓였을 거야. 너희 둘은 동료이고, 너희 둘이 진짜 명근과 진오가 되기 위해선 진짜인 우리 둘을 죽여야 하겠지! 왜냐하면 너희 둘은 8)도플갱어(Doppleganger) 이니까!”

 

명근은 자신의 초능력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진오가 목숨을 살려달라며 애걸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임기응변(臨機應變)과 지혜로 진오가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자 몹시 화가 났다.

 

명근의 정체는 진오가 말한 대로 도플갱어였던 것이다.

 

명근은 진오가 깨어나지 않기를 줄곧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동료 도플갱어가 완벽한 진오의 모습과 기억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진오를 죽일 수가 없었다.

 

명근은 노한 눈길로 진오를 쏘아보았다.

 

진오는 명근이 눈치챌까 두려워 슬금슬금 다가가던 걸음을 냉큼 멈추었다.

 

“네 놈의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걸.”

 

진오는 노골적으로 냉소적인 어조로 말을 하며 그의 신경을 슬그머니 자극시켰다.

 

“흐흣, 나도 도플갱어에게 칭찬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걸.”

 

명근의 표정은 짐짓 노기를 띠고 외쳤다.

 

“난 도플갱어가 아니라 명근이야!”

 

“웃기지 마! 넌 결코 명근이 될 수 없어.”

 

“난 명근의 기억과 육체 모든 것을 가졌어. 뿐만 아니라 초능력까지도 몽땅 가졌단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명근이 아니라고?”

 

진오가 비웃으며 말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하게 하는 것이 취미인가? 하기야 명근에게는 그런 취미는 없었지.”

 

명근의 입술이 실룩거리며 노기를 띠고 있던 얼굴이 점차 빨갛게 변했다. 자신의 정체가 도플갱어라는 것을 은연중에 스스로도 상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들먹거리는 진오의 세 치 혀가 이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었다. 결국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라 발악을 했다.

 

“닥쳐!”

 

명근은 진오에게 덤벼들며 주먹을 힘껏 내뻗었다. 이 순간 진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방어적인 자세가 되어 스턴건으로 명근의 주먹을 찌르고 말았다. 지지직,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나고 스턴건을 맞은 명근은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공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명근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진오는 화들짝 놀라며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경악했다.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지?’

 

이 순간 명근의 입 주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명근은 운 좋게도 전류가 흐른 그 때 혀를 깨문 것이다. 진오는 속으로 매우 분개해하며 다시 명근에게로 덤벼들었다. 명근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때 진오가 스턴건으로 덤벼오자 재빨리 염력(PK)를 발휘했다. 주변의 돌덩이들이 진오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진오는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몸을 움직여 돌덩이들을 피하기 위해 관목이 우거진 곳으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뒤에서 무자비하게 공격해 오는 돌덩이를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몽땅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일찍이 생사(生死)를 건 터라 주저할 것이 없었다.

 

여러 개의 돌덩이가 턱, 소리를 내며 관목에 박혔다.

 

그 무시무시한 힘에 진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등뒤로부터 분노에 찬 명근의 외침이 들렸다.

 

“이 개자식, 죽여버릴 테다! 박진오!”

 

미처 피하지 못한 돌덩이가 진오의 등을 강타했다. 진오는 뜨끈한 아픔과 동시에 울컥 피를 토하고 말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 틈에 진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돌덩이가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눈앞의 관목에 쿵, 하고 박혔다.

 

진오는 몸을 뒤집어 기어 일어나 피는 닦을 생각도 않고 고개와 등을 구부린 채 무작정 도망쳤다. 명근은 돌덩이가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인상을 구겼다. 염력을 이용해서 진오의 숨통을 끊고 싶었지만 떨어진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서 그럴 수도 없었다. 빨리 진오를 죽임으로서 마음속의 불결한 찌꺼기를 털어 내 버리고 싶었다. 거기다가 스턴건을 이용해서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던가. 정신 없이 눈으로 진오를 쫓아 원격이동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죄다 헛수고가 되자 명근의 성질은 더욱 난폭해졌다.

 

반대로 진오는 침착하게 숨을 가다듬으며 돌덩이들을 처리해 갔다.

 

‘능력을 많이 소비하면 저 녀석은 스스로 나에게 덤벼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이 과연 그때까지 잘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인데…….’

 

진오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더 이상 휭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앞을 보니 길다란 수풀이 무성한 장소가 있었다. 진오는 그곳으로 몸을 숨겼다.

 

고통에 겨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맞은 돌덩이 때문에 하늘이 노래지며 곧 쓰러질 듯 정신이 가물가물 했다. 몇 번 상체가 비틀거렸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명근은 직감(直感)이 강한 녀석이야. 내가 달려온 흔적을 따라 이곳으로 올 것이다. 능력이 아닌 맨손으로 수풀을 헤치며 날 찾겠지? 나는 여기서 숨죽여 있다가 녀석이 보이면 다시 스턴건을 작동시킬 수밖에 없겠군.’

 

진오는 헐떡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스턴건을 꺼냈다. 언제 어디서 명근이 나타날지 몰라 경계를 풀지 않았다.

 

‘왔다!’

 

진오는 명근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로에 빠져드는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스턴건을 작동시킬 준비를 했다.

 

‘다가오고 있다!’

 

마른 침 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한 채 명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순간, 진오의 등뒤에서 “흐…….”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헉?!’

 

깜짝 놀란 진오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멍투성이에 척 봐도 상처투성이인, 바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다른 자신이 있지 않은가!

 

진오는 하마터면 으악,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가까스로 놀란 심장을 가다듬으며 끝내 삼키지 못했던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나잖아?’

 

진오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재빨리 살펴보았다. 도플갱어는 진오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고, 몸은 맥이 쭉 빠진 상태였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모양이군.’

 

진오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스턴건을 작동시켜 도플갱어를 쓰러뜨렸다. 풀썩, 하며 도플갱어가 바닥에 쓰러지자 동시에 명근의 외침도 들려왔다.

 

“진오, 네 놈이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개새끼! 갈가리 찢어버릴테다!”

 

털썩, 소리를 들은 명근은 몇 차례 진오를 소리쳐 불렀지만 수풀은 정적만 감돌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명근은 코방귀를 뀌고 앞으로 더 나아갔다.

 

“네 놈 따위가 피해봐야 어디로 피할 수 있겠어? 넌 머리만 잘 돌아갈 뿐 아무런 능력이 없는 보통인간이잖아? 날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잖아? 그러니까 진오, 널 죽이는 나를 원망하지 말고 아무 능력도 없이 보통의 사내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라고. 아니, 이 산에 들어온 것 자체를 원망해야겠지. 클클……. 내 손……내 손을 감히……. 클클…….”

 

명근은 거칠게 수풀을 뒤졌다. 어디선가 탁,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흐흣, 여기 있었구나.”

 

명근은 교활한 웃음을 지으며 수풀을 뒤졌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진오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진오를 바라보는 명근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버렸다.

 

“너……너는?”

 

진오가 둘이었다. 하지만 한 명의 진오는 머리에 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돌멩이를 들고 손에 묻은 피를 핥고 있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동료 도플갱어인지 몰라 명근의 마음이 심란해 졌다.

 

“……누가 우리의 동료란 말야?!”

 

명근은 두 명의 진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 명의 진오 중 피를 핥고 있던 진오가 명근을 보며 야비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돌멩이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인 진오를 구타하며 명근을 향해 말했다.

 

“히……히힛……. 내가 바로 너의 동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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