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의 집시 8

풍경운영자즐 작성일 07.07.03 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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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근은 심호흡을 하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에이……. 설마요.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을 리 없잖아요.”

 

하지만 사내가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기에 불안감이 점점 마음 속 구석구석을 헤집기 시작했다.

 

“설마 있다고 해도 진오 녀석은 위기를 잘 모면할 겁니다.”

 

“진오라는 사내가 자네 친구인가 보구만.”

 

“네. 녀석은 위기가 와도 끝내 모면할 겁니다. 암요, 녀석이 얼마나 독한 놈인데요.”

 

“독하다?”

 

“네. 그 녀석은 아이큐 160이 넘고, 거기다가 엄청난 부잣집 도령이라고요.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십 원 하나 백 원 하나 우습게 보지 않고 꼬박꼬박 모으더니 혼자 BAR를 차렸다는 거 아닙니까. 정말 독한 놈이죠.”

 

“그게 괴물 잡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그 녀석이 아르바이트하던 것 중에 사건 해결하는 것도 몇 가지 있었어요. 조직폭력배들처럼 무식하게 주먹으로 해결하는 거 말고요, 추리하는 것 말예요. 워낙 감이 좋은 녀석이라서 별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척척 알아 맞춘다니까요. 그런 거 보면 정말 신기해요. 지금도 가끔 경찰서 사람들이 들려서 자료와 사진을 보여주면서 도와달라고 요청 할 때도 있으니까요.”

 

“매우 똑똑한 청년인 모양이구만.”

 

“그렇죠. 그런 녀석이 괴물에게 당할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니다에 만원, 만원 걸겠습니다!”

 

명근은 말하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만원을 한 장 꺼내어 바닥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사내는 일찌감치 명근의 마음을 알아채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는 3년 동안 재미를 못 느끼며 살아왔다. 비록 여기에 만원이나 혹은 억이 있는 들 쓸모가 있을 리 없었지만 명근의 마음이 그에게 확실히 전해져 와서 그는 오랜만에 진실되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털털한 친구로구만. 좋네, 자네가 만원을 걸었으니 나는…….”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내기에서 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난처한 기색을 띄우자 명근은 일부러 정색하면서 말했다.

 

“우리 내기를 바꾸도록 하죠.”

 

명근은 만 원짜리 지폐를 호주머니에 넣고, 대신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내기를 바꾸겠다?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 내가 응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이에 명근은 확신한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요, 분명 내기에 응하셔야만 합니다. 아니, 응하실 겁니다.”

 

“도무지 모르겠군. 자네가 무얼 믿고 그렇게 확신하는지 알 수가 없어.”

 

명근은 사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이렇게 내기를 하게 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닐 진데 통성명부터 나누죠. 저는 올해로 24살이고, 서울 청량리역에서 BAR를 운영하고 있는 유명근이라고 합니다.”

 

사내는 명근이 하는 짓이 매우 재미가 있어 큰소리로 웃었다.

 

“내 이름은 김춘호이고, 강릉에서 잠시 살았었네. 지금은 여기가 내 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아저씨. 아주 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이 담배 피우고 싶으시죠?”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3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별로 피우고 싶은 마음은 없어.”

 

“에이, 그래도 만 원짜리 보다는 더 탐나실 텐데요. 여기에 슈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명근은 기억력이 좋지 않아 여기가 고스트하우스라는 것을 잠시 깜박 잊었었다. 그러니 만 원이 있어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담배로 내기조건을 바꾼 것이었다. 일찍이 눈치가 빠른 사내는 명근이 말도 안 되는 임기응변으로 자신을 시험하고자 하려는 것을 알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가 말했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 내기할 것이 무언가?”

 

그제야 명근은 미소를 지었다.

 

“운이요. 운. 우리 운을 걸고서 내기를 합시다.”

 

“운?”

 

“네. 운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명근은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어 사내에게 보여주었다.

 

“이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제가 이기는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아저씨께서 이기시는 겁니다.”

 

사내는 어이없어 한다.

 

“내가 이런 시시한 내기에 응할 거라고 장담한 이유를 모르겠군.”

 

“시시한 내기라뇨? 하늘의 운으로 결정을 하는 내기인데 이 보다 더 큰 내기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옥황상제가 들으시면 노하실 말입니다.”

 

“옥황상제가 쓸데없이 기분 나빠할 위인이란 말인가?”

 

명근은 웃으면서 말했다.

 

“벌써 기분이 토라지셔서 아마 제가 내기에 이기도록 조치를 취해 놓으셨을걸요.”

 

사내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옥황상제의 성격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두 사람은 몇 마디 농담을 더 나누었다. 명근은 담배를 걸었고, 자신이 내기에서이기면 사내가 이곳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말해 줄 것을 청했다.

 

“반드시 자네가 이길 것처럼 행동하는 군.”

 

명근은 사내의 말에 얼마간의 조롱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고 그에게 동전을 내밀었다.

 

“제가 속임수를 부릴 것 같으시면 직접 이 동전을 던져 보시면 되잖아요.”

 

“좋다, 내가 던지도록 하지.”

 

사내는 동전을 잡고 공중에 던졌다.

 

명근은 비겁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원격이동의 능력을 발휘하여 동전이 앞면을 향하도록 해 두었다. 사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동전을 잡고 휙, 손을 뒤집었다. 아직 손을 펴지 않은 상태라 그는 동전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옥황상제가 자네의 편일까.”

 

명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미 동전은 앞면이라고요, 아저씨.’

 

명근은 손짓으로 빨리 손바닥을 펼치라며 시늉을 했다. 사내가 손바닥을 펼치자 앞면을 향하고 있는 동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앗싸! 역시 옥황상제는 제 편이네요, 하하핫!”

 

명근은 너스레를 떨며 크게 웃었다.

 

“흐음!”

 

반면 사내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옛부터 남아일언(男兒一言)은 중천금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그 대가를 치르셔야죠.”

 

사내는 여러 번 헛기침을 했다. 일어나 구렁이가 잘 익었는지 확인하고, 맛을 본 뒤에 명근에게 내밀었다. 명근은 껄끄러운 얼굴로 몇 점의 고기를 뜯어 맛을 보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기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다.

 

“굉장하구나. 하하!”

 

사내는 동굴 밖의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산허리에 걸려 있던 태양이 점점 동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사내는 말했다.

 

“난 서른 한 살에 장가를 가서 4년 후에 겨우 딸아이를 하나를 얻게 되었네. 늦둥이라서 그런지 무엇보다도 애착(愛着)이 컸고, 내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며 키웠지. 그런데 그 녀석이 친구들과 함께 이 수봉산으로 사진 촬영을 가고 싶다고 조르더군. 워낙 오냐오냐 키워서 나로서는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어. 말렸지만 녀석의 애교 때문에 허락하고 말았지. 그런데……그런데……실종이 되었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녀석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네.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처님께 감사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녀석이 무언가 변해 있었어. 내 딸 같지가 않을 정도로 말이야. 아니, 미쳤다고 해야 말이 맞겠군.”

 

말을 하는 사내의 눈이 흐려졌다. 그때의 기억을 헤집던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스스로를 질책하듯 주먹으로 이마를 때렸다.

 

명근은 사내에게 담배를 쥐어 주었다. 불을 붙이자 하얀 연기와 함께 마음의 상처로 인해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혹시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사람 중 당신의 딸 외에도 무슨 이상이 있었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증상은 달랐지만 거의 비슷비슷했지. 어떤 녀석은 아무 이유도 없이 욕하는 것을 즐겼다면, 또 다른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즐겼지. 다들 좋지 않은 쪽으로만 변했었네.”

 

“그럼 아저씨 따님은 무슨 증상이 있었기에……?”

 

사내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인육을 먹더군.”

 

명근은 젊은 여자가 사람을 죽이고, 그 살을 뜯어먹는 광경을 생각하자 마음이 서늘해졌다.

 

“제가 괜한 것을 물었군요.”

 

“아니네. 여기 들어온 이유가 바로 내 딸 때문이니 어차피 말해야 될 내용이었어. 딸이 돌아온 후 삼 일 가량이 지나자 녀석은 갑자기 입이 험해지고, 수봉산에 갔다온 친구들 외에는 그토록 친하게 지내었던 다른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지. 나와 아내는 딸의 괴이한 모습에 낙심하여 의기소침(意氣銷沈)해졌지만 살아있어 줬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그다지 큰일로 여기질 않았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 딸이 점점 비실비실 말라 가는 것을 알아차렸네. 알고 보니 보름간을 물과 우유로 때웠다지 먼가. 나는 아내를 향해 크게 질책했고, 아내는 딸이 음식을 먹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했네.”

 

잠자코 사내의 말을 듣던 명근이 생각했다.

 

‘수봉산에 다녀온 직후부터 변했다? 변한 쪽은 모두 악한 쪽이었다면, 누군가에게 조정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부두교에서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이용을 하다는 좀비도 있다는데 산 사람이라고 못 이용해 먹겠어?’

 

“그 날부터 나는 딸이 걱정되어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지. 물론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였어. 어떻게 해서든 딸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해보았지만 딸아이는 음식 냄새도 맡으려고 하지 않았네. 탈진 상태가 된 딸은 기어코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말았네. 영양주사로 며칠을 버티던 딸이 어느 날 나에게 말하더군.

 

<부산의 외할머니 댁으로 가고 싶어요.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바다를 보고 싶어요. 부산에 가면 입맛이 되살아 날 것 같아요. 아빠, 부탁이에요.>

 

나는 당연 허락한다고 황망히 말했지. 그 다음날 아침, 즉시 퇴원해서 딸은 부산으로 떠났다네.”

 

사내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딸이 부산으로 떠나고 이틀 후에 장모님에게 연락이 왔었네. 딸아이가 식사를 하지 않고, 오직 라면을 먹는다는 연락이었어. 라면이라도 어디야, 집에서는 물하고 우유만 먹었던 아이잖은가. 점점 입맛이 살아나는구나 하고 좋게 여겼지. 그 후 부산에서는 통 연락이 없었고,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무도 받질 않더군. 나는 이상한 마음에 아내를 시켜 부산으로 보냈는데, 아내 역시 부산으로 떠난 후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되었다네. 급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나 역시 부산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지. 부산에 도착하자 집 안에는 아무도 없더군. 장모님은 물론이고, 딸과 아내도 없었지. 심지어 마당을 지키던 개 한 마리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어. 하지만 집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감돌았어. 부엌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밥이 아닌 따끈한 밥과 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곰탕도 있더군. 척 봐도 집안 사람들이 어디론가 외출한 분위기였네. 나는 걱정도 잠시일 뿐 마음이 놓였다네. 워낙에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이니 다같이 모여 유람선이라도 타고 있겠지라고 여겼거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사랑방에 들려 딸아이의 흔적을 찾고 싶었네. 사랑방에 들어가 보니 정돈된 옷과 녀석이 좋아하는 책들이 보이더군. 그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요리 책이었네. 그때 내가 생각하기를,

 

<계집애가 사진 찍는 것밖에 모르고 살림에는 관심이 없어서 시집은 어떻게 가나 걱정이었는데 요리를 공부하고 있었구나.> 라고 안심을 하며 책을 펼쳐 보았지.”

 

명근은 무언가 떠올라 사내에게 물었다.

 

“요리 책이 아니라 주술이 적혀 있지는 않던가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요리 책이 맞았네. 다만 원숭이 골 파먹는 것과, 가슴 살, 짐승의 둔부를 맛있게 먹는 법. 하여튼 기이한 것만 적혀 있던 거야. 사진도 있었는데 흑백이었지만 너무 생생하여 눈뜨고는 못 볼 정도였지. 당장 책을 덮고, 심각하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아무리 사진을 좋아하는 딸이라고는 하나 이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야. 특히 원숭이 골 파먹는 부분은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았어. 그리고 뒤늦게 안 것이지만 방에서는 은근히 피 냄새가 느껴졌어. 딸아이가 대체 무슨 요리를 만들고 있는지 몰라 부엌으로 달려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았네.”

 

사내가 명근을 바라보며 갑자기 물었다.

 

“냉장고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 것 같나?”

 

“당연히 사람이었겠죠.”

 

명근은 그 당연한 상황을 설마 모를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가 냉장고 문을 연 후에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이 무엇일 것 같나?”

 

명근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헉, 이렇게 비명을 질렀겠죠?”

 

“틀렸네. 문을 여는 순간 확 밀려오는 악취에 입과 코를 막아버리고 말았어.”

 

“악취요? 냉장고 안에 있는데 악취라니요?”

 

“피비린내가 심하면 악취가 된다는 것을 나도 그때 알았지. 냉장고 안은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더러웠네. 토막낸 팔과 다리, 그리고 고스란히 널린 창자와 살들은 경악 그 자체였지. 나는 재빨리 냉동실 문을 열어 보았지. 아내와 장모님의 머리가 눈알이 빠지고 입을 쩍 벌린 채로 냉동되어 있더군.”

 

이야기를 듣던 명근이 치를 떨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나는 너무 놀래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싶을 정도였지. 아니 정말 미치고 싶었어. 그리고 어떤 미친놈이 이런 천벌 받을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 답답했지. 눈앞에 있다면 당장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어. 그런데 냉동실 안에 있는 것은 아내와 장모님의 머리뿐이더군. 딸아이가 보이지 않았어. 나는 설마 녀석이 이런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을 저질렀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녀석만큼은 살아 있겠구나라며 걱정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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