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桓國)의 기원

백승길 작성일 07.09.25 22: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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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는 (古)조선(朝鮮)입니다. 그러나 여러 재야사학, 민족사학 등은 고조선 이전에 2개의 국가를 더 꼽죠. 바로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 또는 신시神市). 이들 나라는 각각 환인과 환웅이 다스렸다고 일컬어지며, 사실 신화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그러나 환국의 환인이 7세에 역년 3,000여 년, 배달국의 환웅이 18세에 역년 1,500여 년으로 전하는 등, 신화와 역사의 중간 단계를 그리고 있죠.(환단고기 기준)


그러나 환국을 증거하는 기록은 ‘환단고기’류의 책을 제외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형편입니다. 현존하는 어떠한 역사서, 금석문, 유물, 유적들에도 환국(桓國)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죠.


그런데, 유일하게, 단 하나의 기록에 환국이 등장합니다.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단 하나의 ‘환국’만이 환국을 증거하는 유일한 기록입니다.(환단고기류를 제외하면.) 혹시 아니라는 증거를 가지고 계신 분은 제보 바랍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환국’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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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삼국유사>의 고조선 부분에는 ‘昔有桓因(옛날 환인이 있었다)’이라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의 판본인 정덕본(正德本 : 중종 대의 판본)에는 ‘昔有桓國(옛날 환국이 있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國의 약자 : 囗 + 王)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죠. 그리하여, 바로 이 판본을 근거로 <삼국유사>의 내용이 원래는 ‘환국’이었으나, 일제시기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환인’으로 조작하였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습니다.


여기에 더욱 큰 권위를 덧붙여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육당 최남선의 말입니다. 저 환국을 증거하는 주장들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은, 바로 육당 최남선이 일제시대에 <삼국유사>를 분석하여 ‘桓因’이 아니라 ‘桓國’임을 밝혀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최남선이 비록 말년에 친일을 한 행적이 있지만, 초기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하나였던 만큼, 그의 말 한마디가 갖는 권위는 엄청난 것이었죠.




이쯤에서 환국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기존의 여러 연구자들이 합리적인 반박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죠.



(1) 바로 뒤에 나오는 주석의 문제


<삼국유사>에는 ‘昔有桓因’이라는 구절 바로 뒤에 작은 글씨의 주석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謂帝釋也(제석천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천,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옥황상제입니다. 즉, 인명이라는 뜻이죠. 이미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지요. 설사 삼국유사에 적혀있는 것이 정말 환국이라고 해도, 그것은 나라 이름이 아닌 인명인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구하지는 못했지만, 昔有桓國을 주장하는 일부 환빠들의 증거자료 중에는, 저 ‘謂帝釋也’를 가리기 위해 昔有桓國의 桓國을 확대, 클로즈업하는 비열한 술수까지 자행하고 있습니다.


(2) 내용, 문맥의 문제


말할 필요도 없이, <삼국유사> 고조선 부분의 내용은 명백하게 아버지(환인)이 아들(환웅)에게 지상으로 내려갈 것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내용 중에는 아버지(父)와 아들(子)이라는 것까지 명시되어 있습니다. (붉은 동그라미 줄의 가장 아래 : 父知子意...) 어디에도 환국이라는 나라가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전체 내용을 통틀어도, 특정 국가의 이름에 國을 붙이는 예가 거의 없습니다. 즉, 고구려면 고구려, 백제면 백제이지, 구태여 고구려국, 백제국이라 쓰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뜬금없이 ‘환’에는 國자가 붙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3) 약자의 문제


<삼국유사>에는 그 어디에도 나라 國자를 약자(囗 + 王)으로 적은 예가 없습니다. 심지어 바로 昔有桓國이 등장하는 그 페이지에도 나라 國은 멀쩡한 해서체로 적혀있죠.(붉은 동그라미 오른쪽 줄 중간 쯤에 開國) 그런데 저 환국은 명백하게 약자로 적혀있죠. 정신이 올바로 박힌 연구자라면, 저 약자가 잘못된 것임을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4) 정덕본 이전 판본의 기록


정덕본은 <삼국유사>의 가장 오래된 판본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전 판본의 진위를 판별할 수 없죠. 그러나, 우리는 그 이전 판본을 참고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이죠. 조선왕조실록에는 <삼국유사>를 직접 인용하여 기록한 부분이 여럿 등장합니다. 물론, 桓因이라고 명백하게 인용하고 있죠.


Comte 님의 블로그 

 

여기에 가보시면, 조선왕조실록을 직접 검색하여 살펴본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세종시대의 기록도 있죠.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세종이 중종보다 먼저 맞죠?


(5) 약자 국(囗 + 王)의 진실


여러 연구자들은, 이미 정덕본의 오자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정덕본에 나타난 국(囗 + 王)이 실은 오타였음을 밝혀냈죠. 원래의 <삼국유사>에는 因의 이체자(다른 모양의 글자) 인(囗 + 土)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덕본 목판의 판각 과정에서 실수로 土자가 王자로 잘못 새겨진 것입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위의 링크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6) 최남선의 진실


최남선의 말은, 매우 오랜 기간동안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굴레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만큼 최남선의 권위도 엄청났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죠.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도 그 출처가 확실치 않은 데야 최남선의 모든 글을 읽어볼 수도 없는 노릇. 그로 인해 최남선의 말은 오랫동안 강단의 멍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악질식민빠님의 연구 결과, 최남선의 말이라고 인용되는 것이 사실은 거짓이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악질식민빠님의 블로그


이 링크에 가보시면 상세하게 나타나 있죠. 물론, 읽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최남선의 말은, 사실 환인이 환국의 오기임을 밝혀낸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환국이 환인의 오기임을 밝혀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환빠들이 앵무새처럼 되뇌었던 최남선의 말은 사실 정 반대로 해석한 뻥이었다는 것이죠.



결론은


1. 환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물론이고, 기록상으로도.


2. 환국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던 <삼국유사>의 기록도 오타였음이 밝혀졌다.


3. 환국에 권위를 부여했던 최남선의 말조차, 정 반대로 해석한 거짓이다.



그러므로, 환국은 그 어떠한 기록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추후에, 배달국에 대해서도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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