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곡의 역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역사 왜곡은 무엇일까요?
재야들에게 유명한 춘추필법?? 악명이 자자한 임나일본부?? 로마 교황이 날조한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장??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역사 왜곡은 바로 거의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고 알고 있는 신화(神話)입니다.
그 어떤 신화도 왜곡이라는 원죄를 가지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신화를 기준으로 신화의 역사 왜곡이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볼까요?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살펴보면, 곰과 호랑이가 원래 살고 있었는데, 환웅이 와서 살살 꼬드겨서 호랑이는 쫓아내고 곰하고 잘먹고 잘살았다는 구조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일단, 곰은 곰을 숭상하는 부족, 환웅족은 이주종족 등으로 해석하는 복잡한 문제는 제쳐두고 살펴봅시다.
곰과 호랑이는 원래부터 이 땅에 살고 있던 존재입니다. 즉, 원주민이죠.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 원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의 사회 체제와 신앙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군신화를 통해서 이들 원주민들의 신앙 체계의 일부분을 어렴풋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원주민들의 사회보다는 이주민인 환웅의 사회입니다.
환웅의 사회는 천부인, 풍백·우사·운사, 360여 가지 인간사, 신단수, 쑥과 마늘 등을 통해 매우 상세하게 재구성이 가능합니다. (환웅 사회의 형태는 가까운 국사 교과서나 역사 개설서를 참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환웅은 원주민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원주민 사회를 증빙할만한 흔적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렸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왜곡이죠.
이러한 왜곡의 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게는 극심한 과장(트로이 신화의 과장된 규모)에서부터 심한 경우에는 하나의 종족이 통째로 말살되는 수준에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적 수준의 왜곡은 세월이 흐르면서 ‘말살’에서 ‘격하’로 변화해갑니다.
고조선 수준의 상고시대에는 종족의 규모도 작았고, 인간이 활동하는 범위도 좁았기 때문에 우수한 문명을 가진 부족이 이주해오면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부족을 완전히 흡수하는 일도 가능했죠.
하지만 삼국 시대 정도의 발달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흡수하고 말살해버리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기술 수준의 차이도 크지 않고, 각 부족의 정체성도 상당히 강화되며 무엇보다 쪽수가 많아집니다. 정복자들이 피정복자들에 대해서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 결과, 신화는 ‘말살’에서 수준을 낮추는 ‘격하’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 신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천신족’과 ‘지신족’의 개념이죠. 즉, 정복자는 ‘하늘’을 섬기는 천신족이 되며, 피정복민은 ‘땅’을 섬기는 지신족이 되는 것입니다.
지신족이 섬기는 신앙의 주체는 이른바 산신, 수신, 토템, 샤먼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정복자는 피정복자들에게 이러한 신앙의 자유를 일부 허용해주는 대가로 정치적 지배권을 얻고 상위 개념의 종교인 ‘하늘’에 대한 경배를 취하는 것입니다.
원래, 정복자인 천신족은 지신족과 동등한 입장에 있는 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월한 무력, 혹은 우연한 행운에 의해 주변 부족들을 정복할 수 있었고, 정복한 부족들을 통솔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신(주로 조상신)을 가장 높은 존재인 ‘하늘’로 만드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지신족 역시 이전에는 자신의 주변 부족에게 있어서 ‘하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복된 이후에는 ‘하늘’을 섬길 권리를 박탈당하고 ‘땅’을 섬기게 되는 것이죠.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나타나는 해모수(천신족)와 유화부인(지신족), 신라 건국신화에서 나타나는 박혁거세(천신족)와 알영(지신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화부인은 하백의 딸, 알영은 알영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나죠. 대표적인 지신족의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는 왜곡을 천성으로 하여 태어났습니다.
2. 왜곡의 시련
우리 역사 속에서도 왜곡일 것이라 의심되는 사례가 수없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왜곡은 삼국의 초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태조왕을 비롯한 삼국 왕실의 의문스러운 계보, 온조왕 대의 마한 정복 기록, 발전 단계가 가장 늦은 신라의 건국 연대가 가장 빠른 점 등등...
이러한 왜곡들 중 일부는 고고학적 근거를 통해 왜곡으로 판명되거나 진실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온조왕 대의 마한 정복에 대한 부정이 있겠죠.(마한이 5세기까지 존재했음이 고고학적으로 판명)
그러나,
삼국시대 무렵부터 왜곡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바로 문자의 발달 때문이지요.
문자가 없거나, 문자의 수준이 낮았던 고조선 시기에는 대부분의 역사가 신화나 노래의 형태로 구전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에 왜곡이나 오류가 발생하기 쉬웠습니다. 고조선 후기 무렵에는 한자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체계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문화는 제대로 성립하지 못했죠.
삼국시대 초기도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잦았던 고구려나 백제 지역은 한자 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여 일찍부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그것도 국가가 체계가 잡힌 이후의 일이며, 신라의 경우는 아예 대책 없이 늦어버리죠.
그러나 삼국시대에는 왜곡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제3자와 밀접한 관계가 시작됩니다. 특히 고구려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해서, 고구려의 역사는 제3자인 중국의 기록만 가지고도 상당부분을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죠.
객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제3자인 중국의 기록은 절대적입니다. 재야들의 주장대로 중국이 천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작정하고 왜곡을 했다면 우리는 고고학적인 증거 말고는 아무런 반박도 불가능할 정도이죠. 물론, 중국이 작정하고 왜곡을 휘갈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수많은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전의 중국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의 중국이 아니에요!)
중국의 기록은 작정하고 쓴 왜곡은 없지만, 반대로 무관심과 무성의로 인한 오류는 너무나 많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국으로써는 외국의 일을 공연히 힘써서 상세히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그 기록이 상세해지고 풍부해지지만, 관련이 적은 외국의 일은 그 질이 매우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그 예.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중략) ...長人者, 人類長三丈, 鋸牙鉤爪, 黑毛覆身, 不火食, ?禽獸, 或搏人以食.....(중략).... 新羅常屯弩士數千守之
신라는 변한의 후예로 한나라의 낙랑 땅에 살았다. 가로로 천리, 세로로 삼천리이며 동쪽에는 장인(長人, 國名)이 살았다....(중략)....장인은 사람의 키가 3길이나 되며 톱같은 어금니와 갈고리같은 손톱으로 사람을 잡아먹는다....(중략).... (그래서) 신라는 항상 쇠뇌병 수천명으로 지켰다. '신당서' 중 '삼국사기'에 인용된 부분.
말 그대로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하는 수준의 풍문을 기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던 겁니다.
아무튼,
재야들은 바로 이 시기 중국이 철저하게 왜곡을 자행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위대한 우리 역사를 시기한 나머지 우리 역사를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죠. 심지어 대륙설과 같은 주장은 중국이 지금의 중국이 아니라는 헛소리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러한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1) 대륙을 호령할 정도로 위대했던 국가라면, 그 영토라는 곳곳에 상당한 흔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거주지를 찾아내는 것이 고고학입니다. 말 그대로 허허벌판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을 찾아내죠. 그런데 그 영토라 주장하는 곳 어디에도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고고학적인 증거가 없이는 중국이 위대한 우리 역사를 은폐, 왜곡했다는 주장은 증명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중국이 위대한 우리 역사를 은폐했다는 주장이 고고학적인 증거를 대신할 수도 없죠.
그러나 재야들은 저 ‘반대’ 항목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는 저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중국이 왜곡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죠. 물론 고고학적인 증거를 통해 그 왜곡의 진위를 밝힐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야들은 대항마가 있습니다. ‘중국이 다 없앴다’ 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저들의 주장은 일부 종교인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신이 있다는 증거가 있느냐? 는 질문에 대해서 신이 없다는 증거가 있느냐? 라고 반박하는 것. 기본적으로,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수많은 반박 중에서 ‘신이 없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은 가장 저열한 주장입니다. ‘입증할 수 없으니 진실이다.’라는 것은 반박이 아닌 궤변일 뿐이죠.(저는 무신론자입니다만, 저런 반박은 종교인들의 수준만 낮추는 결과라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shaw님의 블로그로,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링크 => 내 차고 안의 용
3) 대륙설의 경우는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유물·유적의 존재 이유를 비롯하여, 삼국이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중국은 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었는가라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 그렇게 강력했던 삼국은 대체 왜 망했는가. 누가 망하게 했는가라는 문제까지. 셀 수도 없는 문제가 존재하지요.
3.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은폐하다.
재야의 주장에 따르면, 삼국시대의 김춘추·김유신으로부터 시작된 사대주의의 물결이 김부식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달아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스스로 말살했다고 합니다.
일단 저런 주장이 가지는 기본적인 오류는 당위성의 문제입니다. 대체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김춘추, 김부식 등이 왜 말살했는가? 재야들은 사대주의 때문이라는데, 대체 사대주의와 우리의 과거 역사가 무슨 상관인가. 우리 역사를 깎아내려 중국에 아부떠는 것이 과연 저들의 개인적인 영달과 무슨 관계인가.
만약 저들이 정말 위대한 우리의 역사를 말살했다면,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지 개인적 영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것과 개인적 영달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정말 실낱같은 가능성이라고는 ‘(과거 우리의 꼬붕이었던)중국이 기분나빠할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알아서 기자’라는, 생존의 문제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대를 위해 우리 역사를 말살한 저들을 칭송해야 마땅합니다. 자칫 우리 민족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서 구해준 영웅들이니까요.
물론, 위에서 말한 것은 정말 수만분의 1 나노미터 굵기의 실낱에 의지한 몸부림일 뿐입니다. 사대주의와 역사의 말살은 기실 아무런 관계가 없죠.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김춘추·김유신·김부식과 같은 소위 ‘사대주의자’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중국보다 약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습니다. ‘事大 = 큰 나라를 섬기는 일’...
게다가 저들은 기본적으로 국력에 대한 사대, 즉 정치적인 사대관계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판단한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문화적인 사대에 있어서 저들의 죄악(?)은 천인공노할 수준입니다. 그리고 문화적인 사대가 경악스러운 지경으로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은 중국의 문화가 우리 문화보다 선진적이라는 증명일 뿐입니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더 ‘유용’했다는 의미일 뿐. 문화에서 우월성을 따지는 것이야말로 형편없는 발상이죠.)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날아올 재야의 주장이 있겠죠. 찌질한 신라와 완소 고구려·백제를 비교하지 말라!
그러나 그 역시 마찬가지의 오류는 존재합니다. 당나라나 신라나, 기본적으로 고구려·백제를 무너뜨린 나라입니다. 대륙을 지배했던 강력한 국가가 당과 신라에게 망했다는 것도 웃기거니와, 결정적으로 당나라는 고구려·백제보다 거의 700년 가까이 늦게 건국한 나라입니다. 즉, 당나라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건국되기 이전에 고구려·백제가 존니 강했다는 점은 오점이 아니라 위대한 점이 됩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국가를 정복한 것이 바로 자신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재야는 중국을 모두 하나의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하나의 왕조가 오래 지속된 예가 드물며, 많은 왕조들이 짧은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게다가, 당나라 이전의 국가들은 종족적으로도 중국의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며, 당나라의 정체성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고구려에게 발렸을(것이라고 재야가 주장하는) 중국 왕조들과 당나라는 전혀 계승관계를 따질 수 없습니다.
결국, 당나라는, 그리고 신라 역시 위대했던 고구려·백제의 역사를 깎아내릴 필요가 없는 국가들입니다. 자기가 정복했던 나라가 위대하다면 자신은 더욱 더 위대해지니까요.
물론, 고고학이라는 절대적인 학문은 사대주의자들이 우리 역사를 깎아내린바 없다는 것을 수없이 증명했습니다. 고구려의 현실적인 강역이나 유적, 유물. 백제 역시 마찬가지죠. 사실 이렇게 명약관화한 일을 놓고 이런 글을 쓰는 것부터가 웃기는 일입니다.
혹여, ‘중국이나 사대주의자들이 다 없애버렸어!’라거나 ‘더 찾아보면 나올꺼야!’라고 하시려거든 위에 링크해 놓은 칼 세이건의 글을 다시 한 번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4. 일제는 우리 역사를 왜곡했는가?
이 명제는 사실 말할 필요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자행했던 일들은 지금 현재에도 수없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 했던 천인공노할 만행에서부터, 우리나라가 옛날부터 찌질했다고 주장하는 똥물에 튀겨죽일 식민사학, 시골의 노인분들이 입에 달고 사시는 말씀인 ‘조선놈들은 이래서 안돼’라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현실인식까지...
일제가 총체적인 부분에 걸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친일파를 제외하고.) 그러나 일제의 역사 왜곡이라는 것이 과연 드헤 님이 말하는 것처럼 위대했던 역사를 조작하고 은폐했던 것인가라는 문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미, 앞에서 길고 길게 설명했듯이, 역사의 왜곡은 선사시대부터 지속되었던 뿌리 깊은 전통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을 차근 차근 읽어오시면서 저의 조악한 논리를 조금이나마 파악하실 수 있으셨던 분은 시대와 왜곡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깨달으셨을 겁니다.
선사시대의 왜곡은 지금에 와서 밝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말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발전하면서 왜곡의 양상은 점차로 약해지고, 왜곡된 것도 손쉽게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만 살았던 선사시대와 달리, 역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는 점점 더 넓은 공간에서 많은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쪽에서 왜곡을 자행해도 다른 한쪽이 그 왜곡에 대한 증거를 남겨줄 확률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죠.
신라마저 중국과 활발한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된 삼국시대 후기부터 우리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서에 꼼꼼하게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행한 왜곡을 해결해줄 제3자의 눈을 얻은 것이죠. 또한, 우리는 매우 운이 좋게도 매우 공정한(?) 제3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왕조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선대의 일을 숨기기 위해 제3자 스스로가 자행할 수 있는 왜곡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죠.
또한, 우리 시대에 이르게 되면 과학의 발달로 많은 유물과 유적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그 어떠한 왜곡도 과학의 칼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죠.
일제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왜곡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학계가 인정하는 일제의 왜곡은 위와 같은 과학의 칼날과 제3자의 눈초리를 넘어서지 모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수행되었습니다.
즉, 일제의 왜곡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대한 ‘해석’을 왜곡한 것이지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칼날, 제3자의 눈초리는 ‘사실’에 대해서 지극히 객관적인 증거를 제공합니다. 일제가 아무리 ‘사실’을 왜곡하고 싶어도 이러한 걸림돌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가 실행 가능한 ‘사실’에 대한 왜곡은 고작해야 상반된 2~3가지 사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실을 고르는 정도일 뿐이죠. (그리고 그 정도로도 우리 역사를 상당부분 왜곡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소위 재야라는 작자들도 마찬가지로, 일제가 우리 역사를 뜯어고쳤다는 흔적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재야는 물론이요 그 누구도 일제가 우리 역사를 통째로 바꿔버렸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재야들이 일제가 자행한 왜곡의 증거랍시고 가져온 것들을 한 번 보세요.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보면 결국 이렇습니다.
사례 1.
a : 일제가 20만 권의 역사서를 불태웠다.
b : 일제가 불태운 역사서는 51종이며, 그나마도 일제는 그것을 다 불태우지 못했다.
a : 일제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다 불태웠을 것이다.
b : 일제는 고작 51종의 책도 완전히 말살하는데 실패했다.
a : 그것도 다 조작된 것이다.
b : 그럼 대체 믿을 수 있는 것은 뭔데???
사례 2.
a : 일제가 우리의 역사서들을 전부 황실 창고로 가져가서 숨겨놓았다.
b : 그럼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책들은 뭔데?
a : 일제가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만 남겨두고 간 것이다.
b : 규장각에 있는 책들은 아직까지도 그 전체 내용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많거든??
a : 아니다. 그래도 가져간 것이 있을 것이다.
b : 그럼 직접 일본 황실에 가서 가져갔다는 증거를 찾아와봐.
a : 일제가 다 조작해서 없다.
b : 그럼 대체 믿을 수 있는 것이 뭔데???
재야의 논리, 드헤님의 논리도 마찬가지로, 결국 끝까지 따라가보면 나오는 것은 딱 한마디 뿐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조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다 조작된 것이면 대체 믿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학문이라는 것은,
오로지 진실을 추구할 뿐입니다.
역사학이라는 학문은,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보고, 그것을 토대로 진실을 구축하려 합니다.
그러나 재야가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오로지 자신의 가설만 옳을 뿐이죠.
재야의 학문은, 먼저 가설을 세우고, 가설에 맞는 것만 찾습니다. 심지어 가설에 맞추기 위해 왜곡과 조작을 서슴치 않기도 하죠.
그리고, 재야에게는 최후의 필살기가 존재합니다.
자신의 가설에 맞지 않는 증거, 주장은 전부 조작이다.
드헤 님.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께 묻습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