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험한 마지막 글입니다. 집과 여자귀신....경험담

섭이만세 작성일 10.07.08 13: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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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게 오랜시간 지내온 것들을 썼습니다.

 

실제 제 이야기이며, 사생활이 많이 담겨서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올립니다.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이 이야기를 자서전이라고 하면 웃기지만 일기장처럼 솔직하게 꾸밈없이 적은것이라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욕은 하지 말아주세요. 예민한 30대 후반에 있는 한집안 가장의 가슴에 기스 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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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당시 가족상황은 팔순 넘으신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작은형, 누나 이렇게 살고 있었고, 저는 9월에 입대를 했습니다.

 

군 생활 잘 하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이미 뇌수술을 하셔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집에만 계셔서 어머니가 사실

 

상 집을 꾸려 나간지 꽤 되는 상황이었죠. 부모님 같은 큰형은 결혼해서 이미 3살 터울인 형제 둘을 키우고 있었고, 나머지 남

 

매는 미혼 상황이었구요.

 

제가 병장때 입니다. 제가 땅개 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포상이라는 것은 다 챙겨먹어서 상병이후로는 2~3개월에 한 번꼴로 휴

 

가를 자주 갔습니다. 이번 휴가 나왔을 때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집에 계시더군요. 지병인 고혈압이 도졌는지 약을 계속 잡

 

수시고 계셨습니다.

 

아무튼 포상 휴가를 2박3일로 짧게 나왔는데 그 나이에 어머님 편찮으신게 확연히 보이더군요. 어머니가 집에 계시니 그냥 좋

 

을 뿐이었습니다. 이미 어머니는 충분히 고생하셨기에 쉬는게 좋다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밖에 있었기 때문에,

 

군대 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집에 있는게 어린아이처럼 좋기만 했습니다.

 

어쨌건 잘 놀고 복귀하려는데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막내아들 휴가 나왔는 데 엄마가 아퍼서 아무것도 못해주네 미안하다 다음에 나오면 맛있는 거 해줄게”

 

“아니야 엄마 난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전역하는데 뭘 신경 쓰고 그래. 괜찮아~”

 

그리고는 노느라고 정신 팔려서 복귀도 늦게 하는 바람에 집에 안부전화도 하지 못했습니다.

 

복귀하고 몇 일동안 집에 전화도 안하고 일상적인 군 생활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날도 별다른 일 없이 기상소리가 나고 말년 병장의 느긋함으로 천천히 일어나 앉으면서 안경을 쓰려는데 내 침구류를 개던

 

후임이 모포로 제 안경을 스쳤는데 그게 손에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나더군요.

 

어쩔 줄 몰라하는 후임을 보면서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하하 아싸! 안경 때문에 외출 나가게 생겼네~”

 

좋아 했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좋은 거죠.....하하

 

조금 있다 행보관님이 차에 타고 파주 시내가서 안경맞추고 뭐 어쩌구 하다가 저녁 전에 들어왔습니다.

 

소대장님이 부르더군요

 

“집에서 전화왔는데. 어머님이 편찮으신가 보더라”

 

바로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큰형이 받더군요 안심하라고 하면서 병원에 갔다가 오늘 바로 퇴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안심하라

 

고는 하지만 군에 전화 할 정도면 안좋으니까 전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퇴원을 하셨다니 안심하고 지냈습니다.

 

별일 없이 몇 일이 지나고 여느때와 같이 기상나팔소리에 일어나려는데 이번에도 후임 안경을 건드렸는데...높이가 60센티 되

 

려나? 1미터도 안되는 높이에서 돌로 된 바닥도 아닌 침상으로 떨어졌는데. 완전히 박살이 나더군요.

 

“아유 C8" 욕 먼저 했습니다. 이번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전과 다르게 화내는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후임을 뒤로하고, 날카로울데로 날카로운 마음을 갖고 위태 위태 일상적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별 다를 것 없는 오전이 끝나고, 점심밥을 먹고 나서야 ‘아~ 기우였구나’ 그러면서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밥 먹고 분대원 인솔하면서 놀고 있는데. 소대장이 찾습니다.

 

“중대장님 방에 큰형님에게 전화가 와 있다. 어서 가봐”

 

그 소리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병장계급이고 나발이고 울면서 중대장실로 뛰어 들어가 전화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지금 와야할 것 같다는 소리에 여차 저차 해서 병원으로 직행을 했습니다. 응급실에 어머니가 누워계

 

셨고, 몇 일 후에는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으니 집으로 모시라고 하더군요. 추석전날 집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남자 간호사 한

 

분이 산소호흡기를 빼시면서 20분도 채 못견디시고 돌아가실거라는 말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분들도 모두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추석전날 다른 집은 추석요리에 행복

 

이 가득한날 우리는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던 거죠.

 

어머니가 간호사의 말과는 달리 한시간 두시간 견디시는 겁니다. 심지어 숨소리도 더 편하시더군요. ‘좋아지려나? 의사들 다

 

돌파리 아니야?’

 

그렇게 하루 동안 긴장된 생활하면서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서는 평소 어머니가 절에서 가지고 온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천수

 

경’ 같은 목탁소리와 알 수 없는 스님의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추석날 오전 11시 30분경부터 어머님의 상태가 이

 

상합니다.

 

동시에 팔순 넘으신 할머니가 “아유 집에 왜 이렇게 물이 많이 들어와 이거 어떻게 해” 그러면서 바지 밑단을 걷어붙이십니

 

다. 마치 홍수에 바짓가랑이 젖을까봐 걷어 올리듯이 하시면서요. 우리는 패닉상태로 변하고 큰형은 한아름에 들어오는 말르

 

신 할머니을 끌어안고 목놓아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팔순 노인에게는 큰 충격이라는것을 말 하지 않아도 온식구들이 이해 한

 

거죠.

 

집안은 다시 울음 바다로 변하고 오직 들리는 소리는 울울소리, 스님의 목소리와 목탁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오전11시 59

 

분이 지나고 12시가 될 쯤 작은형과 저는 이상한것을 느꼈습니다. 오디오 소리가 간간히 늘어지듯이 그러면서 목탁소리가 아

 

닌 기분 나쁘게 ‘으히히히히히’ 하고 웃는 여자 웃음소리 같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했지만 그 상황에서 그건 큰

 

일이 아니죠. 그러고 나서 가족 앞에서 정확히 추석날 12시 5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오디오는 다시 목탁소리를 내고 있었구요.

그렇게 어머니를 안방 병풍뒤에 모셔두고 이틀째 되는 날 저녁에는 식구들도 지친것인지 체념인지 안정감을 찾더군요. 저를

 

잘 따르는 3살짜리 조카를 무릎에 앉히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조카이름을 편의상 ‘철이’라고 하겠습니다.

 

“철아 할머니가 저기 병풍뒤에 계시는거야”

 

“할머니가 저기?”

 

“응, 저기에 할머니가 누워계셔”

 

그러고 장난삼아 제가 물어봅니다.

 

“철아 여기 아빠, 큰삼촌, 작은 삼촌 빼고 누구 있어?”

 

손가락으로 병풍 뒤 양 위쪽 구석을 가르치며 “저기 하고 저기에 누구 있어”

 

“........”

 

“철아 거긴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 있는데”

 

“..........;;;.....”

 

“철이는 누가 보여 보이면 가봐~”

 

철이가 ‘할머니~’하면서 달려가는데 병풍뒤가 아닌 병풍 옆, 벽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놀란 나는 후다닥 달려가서 붙잡았습니

 

다.

 

의외의 반응에 그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제 무릎에 다시 앉히고 물어봤습니다

 

“철아 왜 그쪽으로 뛰어갔어?”

 

“할머니랑 아저씨랑 둘이서 저쪽으로 갔어”

 

“그럼 철이는 할머니가 저리로 가서 할머니를 따라간거야?”

 

“응”

 

철이가 가리킨 곳은 병풍 옆 벽쪽입니다. 저는 큰형한테 애한테 그러지 말라고 혼나고 있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잠잠해 지셨는

 

지 집안으로 물 들어온다는 말씀은 안하시더군요.

 

그렇게 한달간의 긴 휴가를 받고 집에서 딩굴거리면서 반 사회인이 다 된 상태로 군에서도 탱자탱자 놀면서 전역을 했습니다.

 

집에 와 보니 할머니가 역시나 치매기가 오셨더군요.

 

요강을 할머니 방에 놓아드렸습니다. 연세 드신분들에겐 요강이 아직도 큰 힘이 됩니다.

 

그 요강에 오줌을 눈이 침침하다며 눈에 바르시기도 하고, 농 위에 나비가 있다고 하시면서 이리내려오라 그러시고, 한밤에

 

는 애들 둘이 뛰어다녀서 한숨도 못주무셨다고 하시고, 허공에 사탕 두 개를 주면서 먹으라고 애들이 왜 안먹는다고, 그러고

 

애들이 뛰어다니며 노는게 귀엽다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웃기도 하고 그러시더군요.

 

저희 형제들은 그냥 웃었지요.

 

시간이 지나 49제가 끝나고 피곤했는지 다들 피곤해해서 낮잠을 1시간 정도 자는데. 큰형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집으로 간다

 

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들 잠 덜 깬 상태에서 배웅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형이 말해줬는데 낮잠 잘 때,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고생했다고 큰형한테 했답니다. 그게 처음이자 마

 

지막 꿈입니다.

 

그 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수발하는 생활을 몇 년 하고, 8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몇 년 후, 작은형도 머리에 혹

 

이 생겨서 뇌수술을 하게 되고, 동시에 상태가 좀 이상해 졌습니다. 아버지도 갑자기 치매에 걸리셔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

 

구요.

 

그렇게 집에는 나와 누나만 지내게 되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고, 작은형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못하고 사업에 실패하여

 

쫒기는 되었고, 큰형 마져 사업에 망하고 70년대에나 있을만한 노원구 판자촌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내면서 형제들이 모인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작은형이 먼저 입을 열더군요.

 

“내가 지금도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창가를 봤는데 여자랑 눈 마주쳤어. 젊은 여자인데 그게 꿈

 

에서 본건지 진짜로 본건지 헷갈려”(우리집은 3층입니다. 창가에 사람이 있을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자 큰형이 예전에 할머니가 멀쩡할 때, 이상한꿈을 꾸고나서 집에 우환도 많고 해서 어머니가 점집에 간적이 있다면서 형

 

이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할머니 꿈에 아버지랑 어머니랑 상가집 갔다가 집에 오는데, 아버지 등에 어떤 여자를 엎고 집안으로 들어왔다고 하

 

네, 그래서 엄마가 점집에 물어보니까 상가집에서 묻어온 귀신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어머니가 불교신자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안쓰셨던거 같어.”

 

잠시의 침묵을 깨고 작은형이 말을 꺼냅니다.

 

“나 어머니 돌아가시는 날 테이프에서 이상한 소리 들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

 

“무슨 소리 들었는데 형?”

 

“목탁소리 줄어들면서 이상한 여자 웃음소리 비슷한 것 들었는데...그게 테이프가 늘어진것 처럼 들리더라고 나중에 되돌려

 

서 들어봤는데 멀쩡했어.”

 

저와 똑같은걸 작은형도 들은겁니다.

 

저희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작은형은 쫒기는 생활이 어느 정도 정리됐지만 여전히 머리에 수술한것 때문인지 예전같은 정상적인 생활은 못하고, 누나는

 

시집가서 잘살고, 큰형도 재기에 성공하고 아버지는 병원에 계시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도 결혼하게 되었지만 돈도 없고 집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 집에 인테리어만 다시하고 제가 살게 됐습니다. 오래된 건물

 

이라 베란다쪽 문이 틀어져서 잘 닫히질 않았는데, 베란다 쪽이고 사람이 오고갈 일이 없어서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와이프와는 결혼전에도 관계를 가져왔기 때문에, 혼수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결혼 3개월 전부터 같이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습

 

니다. 동거를 시작하기 전부터 와이프의 잠버릇을 잘 알죠.

 

와이프가 간단한 짐을 가져오고 우리집에서 자는 첫날입니다.

 

덥다고 거실에서 둘이 퍼질러 자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꺄~”

와이프의 비명소리에 놀라 허둥지동 불을 켜고 여친을 봤습니다.

 

‘엉엉엉’ 울면서 메달리더군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꿈에 거실 바깥 창가에서 여자가 자기를 노려봤다는 군요. 무서워서 고개를 거실에서 베란다 쪽으로 돌렸는데 그 여자가 베란

 

다에서 천천히 문을 열면서 거실로 들어오더랍니다.

 

난 그 전에 여자귀신에 대해서 말한적도 없고 말할 이유도 없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잊고 있었습니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새벽에 한바탕 일을 치루고, 몇 일 후에 와이프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습니다.

 

잠만 자면 새벽이고 낮이고 괴로워하는 신음소리를 뺏으면서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으으응...으으...아~아~악!!”

 

처음에는 본인이 그 소리에 놀라면서 깨더군요.

 

“괜찮아?”

 

“어 괜찮아. 내가 왜 이러지”

 

그러고는 곧장 깊은잠에 듭니다. 무서운 꿈을 꾼것도 아닌데 괴로워 합니다. 기억도 하지 못하구요.

 

처음엔 본인이 예민하고, 낮선 곳에 잠을 자서 그런가 보다 하더군요.

 

그러나 점차 상태가 심각해 집니다.

 

“으으응....으으..악~ 악~ 악~”

 

이제는 비명소리가 노래방에서 최고 데시벨로 소리 지르는 수준인데도 본인이 모릅니다. 거짓말 좀더 보태서 그 정도면 동네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이상할것도 없을 수준입니다.

 

“야, 일어나봐, 일어나봐”

 

“왜? 왜 그래. 자고 있는데 왜 깨워. 짜증나게...”

 

“너는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본인이 어떻게 모를 수 있냐?”

 

“내가 그랬어? 몰라. 그냥 자”

 

본인이 이젠 모릅니다. 황당하더군요

 

매일 그러니 저도 잠을 제대로 못자고 미치겠더군요.

 

웃긴건 친척 집이나, 처가댁, 심지어 외국 호텔에서 잘 때도 그런 현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돈 들여서 인테리어한 그 집을 1년만에 나오고 전세로 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와이프는 본가에서 살 때와 같은 이상 현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집에 관련된 일은 그 집을 나오면서 거짓말처럼 없어졌습니다.

 

저는 집의 터 라는 것. 그리고 터줏대감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귀신이라는것을 믿습니다.

 

제 생각에는 작은형이 그렇게 된 건 아마도 귀신이 가장 만만한 누군가를 찾다가 가장 유순하고, 부드러웠던 형을 선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돌팔이가 아닌 제대로 된 퇴마사 같은 분이 우리집을 어떻게 해주시면 안될까’...그런 생각이요. 제

 

가 이런 얘기 꺼내면 큰형님은 화를 내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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