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가 외친다.
=지금이야 뛰어!!=
-------------------------------------
1990년 연말 밤, 서울역 근처의 한 거리
=총각~ 쉬었다가=
=돈 없어요, 그리고 저 학생 이예요~=
=학생은 ㅈ 없어? 그러지 말고 놀다가~=
연말의 추위가 무색할 만큼 많은 인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어느 역 근처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포주들도 연말호황을 누릴 양 지나가는 남자들을 향해 손짓을 한다.
서울은 예부터 눈 가리면 코 베어간다던 무서운 곳 이라고 생각한 길수도 그 인파 속에 파묻혀 이동 중이다. 고향을 떠나와 전 재산인 전대를 꼭 붙잡고 정처 없이 무작정 서울로 상경 한 길수는 당장 묵을 곳이 필요했다. 서울에 계시는 고모님의 허락을 받고 몇 달 머물기로 했지만, 며칠 전 갑자기 연락이 안되어 갈팡질팡 했었던 길수는, 이번이 아니면 영영 서울 땅을 못 밟아볼 것만 같아 무작정 상경한 것 이다.
-일단 올라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냐… 그냥 고향으로 다시 내려갈까…-
이런 생각 중에 갑자기 한 포주가 길수를 막아서더니
=총각 쉬었다가. 잠도 자고 목욕도 가능해~=
=아…아닙니더. 근처에 숙소 있십더.=
=그러지 말고 쉬었다 가. 연말이라 근처에 여관들도 이미 다 꽉 찼어. 조금 있으면 버스도 끊겨서 여기 근처 아니면 갈 곳도 없어.=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뻔한 거짓말에 길수는 속아 넘어갔다. 길거리에서 잘 수는 없을 노릇이기에 오늘밤은 이 포주가 알려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괜히 서울 여자 만나 볼 수도 있다는 호기심도 한 몫 했다.
=어…얼만데예?=
=총각 서울 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으니 원래는 3만원인데 2만원으로 해 줄께. 고향도 비슷한 것같고=
어수룩한 길수는 포주의 손에 이끌려 이 골목 저 골목을 한참을 돌아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서 돈 내고, 내일 아침 까졍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을 테니 푹 쉬다 가~=
=가…감사합니더=
=인아야 손님 받아라. 내일 아침에 야물딱지게 깨워서 보내드려~잉=
-분명 고향도 비슷하다고 했는데… 난 경상도 저 사투리는 전라도… 역시 서울은 믿을게 없구만.-
당했다고 생각 하고 있는데 포주가 열어준 문틈 사이로 방안의 인아라고 불렸던 여인이 보였다. 나이는 군 전역한지 얼마 안된 길수와 얼추 비슷해 보이는 한 여자가 힘없이 길수를 쳐다 보았다.
=안녕 하세요. 인아라고 합니다. 들어오세요=
그 곳은 반지하 비슷하게 생긴 어느 단칸 방 이였다. 부엌도 없이 칸막이로 된 화장실과 잘 정돈된 침대만 자리 하고 있었다.
=밖에 많이 춥죠? 일단 씻고 오세요=
길수는 뭐가 뭔지 몰라 일단 인아가 시키는 대로 했다. 씻으러 갈 때도 차고 온 전대 만은 꼭 손에 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차례차례 옷을 벗고 물을 틀었다. 따듯한 온수에 몸을 녹이려고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따듯한 물은 커녕 얼음 같은 물만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때 밖에서,
=오빠 온수는 2백원 내야 되요=
아… 이 드럽고 치사한 서울 놈들. 길수는 빼꼼 문을 열어 아까 오는 길에 음료수 사먹고 남은 2백원을 던졌다. 조금 기다리니 뜨거운 온수가 콸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목간 대신 잠도 자고 뜨듯한 물로 샤워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하다고, 또 돈을 아낀 거라고 자기 합리화한 길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며 여독을 깨끗이 씻어내고 나가려는데 아뿔싸… 수건이 없다.
=오빠 수건은 50원이요=
다시 한번 빼꼼이 문을 열어 손바닥에 50원을 올려놓으니 돈을 가져가고 수건이 길수 손에 놓이게 되었다.
-내 다시는 안온데이.-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내일도 써야 되니 수건 걸이에 잘 펴서 널어놓고 나온 길수는 침대에 새초롬히 앉아있는 인아를 보았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하고 벙쪄 있는 길수에게 인아가 올라와 옆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오빠, 서울엔 언제 왔어요?=
=오늘 올라왔지. 넌 서울 사람이가?=
=저도 처음에는 일 하러 서울 올라왔다가 여기에서 못 빠져나가고 있어요.=
=못 빠져나가? 여기서? 왜? 여기에 무슨 일이 있나?=
=오빠 여기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기 오신 길 기억나세요? 그거 알아요? 오빠 들어오고 난 후부터 여기는 더 이상 오빠가 생각 하는 서울이 아니예요=
=그기 무슨 말이고?=
=오빠 미안해요. 오빠 여기서 못나간다고요.=
------------------------------------------------------------ㅁ---------------------------------------
안녕하세요 리어켓 입니다. 3부작으로 만들어봣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참! 글 내용과 실제는 전혀 무관 합니다~ 서울역 인근 30년 이상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