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겐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과업을 마친 슈퍼맨은 절벽 꼭대기에 있는 자신만의 성역(Fortress)으로 돌아갑니다. 쾌걸조로는 밤이 되면 가면을 벗고 지하소굴로 들어갑니다. 배트맨에겐 지하 연구실이 있습니다. 영웅들이 하나같이 은신처를 갖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영웅을 정열적인 사람에 비유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열정으로 산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성역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깥 세계에서 그렇게도 열심히 싸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충분히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찌질이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하진 마십시오. 예부터 남성은 자기만의 영역을 필요로 했습니다. 동굴 밖의 세계는 추위와 굶주림이 들끓는 무법천지였고, 항상 죽음을 무릅쓴 남자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남자는 항상 긴장해야 했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지친 몸과 신경을 편안히 해 줄 자신만의 잠자리와 아내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사냥을 하러 밖에 나가면 온 신경이 곤두선 채로 지내야 했습니다.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이 상태는 생존모드(Survival Mode)입니다. 하지만 고대인에겐 돌아갈 휴식처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생존모드를 잠시나마 Off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더 이상 짐승사냥이 필요치 않게 된 지금, 여러분은 안전하십니까? 갑작스레 목숨을 잃을 일은 더 이상 없지만, 불안 속에 산다는 건 생존모드와 똑같습니다. 해야 할 것도 신경 쓰이는 일도 많은 요즘 세상에, 우리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아침 신문기사부터 시작해서 어두운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하루에도 십 수개는 마음을 산란케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는 항상 죽음을 무릅쓰고 있는 고대인과 똑같습니다. 결국 요즘 세상이나 예전이나 안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다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만 벗어났을 뿐이지요.
그래서 항상 우리는 돌아갈 곳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개별화되고 원자화될수록 이런 따뜻한 안식처는 더더욱 찾기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고, 사람도 빨리 변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절친했던 사람과도 거리가 멀어지고, 늘 내 어리광을 들어줄 것 같던 그 사람은 더 이상 내 활력소가 되지 못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더더욱 많아질 겁니다. 사람들은 서로간의 공통점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 질 겁니다. 가족 관계, 혹은 친구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 혹은 상대방이 성장했거나 변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저는 매주 클럽을 다녔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혹자가 보면 유흥에 찌든 탕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제게 있어 클럽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좋은 활력소였습니다. 그렇게 밤새 술과 음악을 즐기고 돌아온 다음날엔 어김없이 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클럽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클럽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 초라한 몰골로 다니던 저를 주변 사람들은 공부밖에 안 하는 사람으로 여겼지요. 하지만 평소에 그런 행색으로 다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주말에 한번씩 가는 저만의 성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성역은 어디인가요. 반드시 밖일 필요는 없습니다. 집 안에서 혼자 몰래 하는 은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일수도 있습니다. 혹은 밤마다 만지는 컴퓨터 프로그램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상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한 주 동안 열심히 여러분을 위해 일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세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여러분의 세계를 가지세요.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여러분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