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면서 러시아 문학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좀 유명하다는 책들은 그 엄청난 분량과 어려운 이름들 때문에 지레 겁먹고 피해버렸다.(이상하게 러시아랑 일본사람들 이름은 어려워서 피한다.) 문학에 대한 애조가 어느 나라보다 큰 나라의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런 선입견들이 그들과의 만남을 차단시켰다. 이런 성향은 영화에서도 여전했다. 특히 소설을 영화한 경우 더 그렇다. 어떻게든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었다. 원작만한 영화가 없었기에. 그래서 이 영화를 꾹 눌러두고 있었지만 결국엔 보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충동적으로 영화를 고르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소설은 아직 읽지 못해서 정확한 평가는 힘들지만 모든 배경 지식을 뒤로 하고 영화 자체로만 평가하면 대작임에 틀림없다. 4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그 스케일은 요즘 어떤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시대적 배경이 완전히 재현된 듯하다. 그것이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배경으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뒷받침되면서 이 영화는 대작으로 거듭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흐름은 아마 역사적 격동기에 만난 남녀의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은 애틋하면서 슬프다. 아름답다는 말은 쓰지 않겠다. 지바고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썩 내키지 않으므로.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성과 감정을 적적히 조화시키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애틋해보였다. 물론 지바고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바고의 부인인 토냐나 운명의 여자라는 라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파샤. 모두들 역사라는 큰 흐름 앞에 너무도 나약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역사와 현실 앞에서 때로는 순응하며 때로는 거스르며 나가려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파샤는 무모해 보이지만 그의 열정만은 이 시대가 잃고 있는 정신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영화를 부며 그들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운명 앞에 강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영화와 소설의 아름다움에 젖어드는건 괜찮지만 심취해서 혼돈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런 좋은 영화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 우습지만 난 현실적인 인간형이 되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