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내공 : 어중간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한 10여년 전 쯤이다.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당시에 우연찮게 구한 비디오 테잎이었는데... 제목이 '악어'였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 딱 내 취향이었다. "
대충 줄거리를 말하자면...
한 여인이 남자에게 버림받고(그랬던가?) 한강으로 투신 자살을
시도한다. 그걸 조재현, 악어가 발견하고 그녀를 구해낸다.
그리고 붕가붕가, 심심하면 겁탈한다. -_-;; 그 뿐만이 아니다.
악어는 정말 쓰레기같은 나쁜 새끼다. 노인 과어린 아이에게
앵벌이를 시켜, 그 몇 푼 안되는 돈을 갈취한다. 그리고 돈이라면
자기 몸까지 남창으로 파는 새끼다.(이 부분 당시에는 파격적이며
충격이었다.)
아무튼 개 쓰레기에 양아치... 더 이상의 쓰레기 인생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내가 원했던 캐릭터, 영화였다.
특히 악어가 한강 밑 바닥에 긴 공원용 벤치를 가라앉혀 놓고
잠수하여 앉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뽑고 싶다. 수중 촬영이 어렵다는
시절에 저 예산 영화로써 해냈다니... 참 감탄했었다.
현재의 조재현은 김기덕이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김기덕 영화에서는 그가 거의 등장한다. 때론 조연으로,
때론 주연으로... 살짝 얼굴만 비추는 영화도 있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다보니 배우 조재현의 가치까지 같이 높아진 것이다.
김기덕 감동의 영화에는 항상 영화 속 '악어'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뭐 여성부가 뭐라고 지껄이건, 평론가가 뭐라고
떠들던 난 그런 말들은 어려워서 모르겠다.(솔직히 꼴도 보기
싫고...)
단지 중요한 점은 내가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런 암울하고
타락한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그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과 더 부각, 확대 시켰다고들 하는데...
모르겠다. 난 영화를 보면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단지... 재밌냐, 재미없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다고 김기덕
영화가 시나리오가 좋다거나, 액션이 끝내준다거나,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재미있을 요소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과
암울한 분위기다. -_-;;
영화 '악어' 이후로 난 김기덕 영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호평 받았다곤 하지만... 솔직히 찾기는 꽤 어려운 편이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인터넷 체계가 아니라 모뎀을 사용하는 통신(?)
문화(?)였기 때문에 영화 한 편을 다운 받는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때문에 비디오 테잎을 구해야 하는데... 비디오 샵에서 그의 영화를
구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구해서...
그의 영화 모두를 감상할 수 있었다.
" 더럽다. " 그의 영화를 모두 보고 나서 내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정말 욕이 나올 정도로 더러운 인간들이 그의 영화에는 가득 찼다.
그의 영화에는 늘 '악어'가 등장했고 그에 반하는 선한 캐릭터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더 더러웠다.
김기덕은 이런 영화 밖에 만들 줄 모르나...?
결국 질렸다. 다 똑같은 영화였다. 그럴 때 쯤에 나온 영화가
바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었다. 역시나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김기덕 감독이 미친 줄 알았다. -_-;; 영화 자체를 놓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감독이란 자기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장르의 다른 시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고 봤다. 다른 감독이 했다면
모르되, 그가 했으니...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역시나 다른 이들의
시선을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김기덕 감독은 악어같은 영화 밖에 못 만드나?'를
나만이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찍은 것이다. 결국 이건가?
너도 그렇고 그런 감독 중에 하나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실제상황'이라는 공동 감독 작품부터
살짝 궤를 달리한다. 당시 꽤 인기 배우인 주진모를 내세워
흥행까지 모색한 것이다. 물론 흥행은 참패했다. 그 이후에도
양동근 주연의 '수취인불명' , 장동건의 '해안선' , 이제는 대배우가
된 조재현을 내세운 '나쁜 남자'등... 흥행을 노리려는 그의
캐스팅이 눈에 보였다.(하지만 여전히 흥행할 수 있는 작품들은
아니었다. 배우는 아무리 인기 있어도 재미가 있어야지. -_-;;)
결국 그는 이도저도 아닌, 본래의 그의 작품 세계까지 흐리며
어중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본래 좋아하던 그의
색이 사라지고 대중에 편승하려는 그의 모습 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제길...
이런 김기덕 감독의 어중간함은 영화 '빈집'을 통해서 절정에
달한다. -_-;; 퇴물 배우지만 그래도 한 때는 인기 만발이었던
이승연과 떠오르는 신인(?) 재희를 주연으로 찍은 이 영화는...
참...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참석했던 시사회의 반응으로
대신 하겠다.
' 김기덕 영화 보고 웃어보기는 처음이야. '
' 초능력이지?, 초능력이 생긴 거지? '
' 중학생이 만든 것 같아... '
... 여전히 그의 영화에는 '악어'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악어'는
이미... 주연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마치 그가 자신의 '색'을
버리고 대중 쪽으로 다가선 것처럼...
영화 '빈 집'을 끝으로 난 그의 영화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가끔 케이블 Tv를 통해서 방영되는 것을... 정 볼 것이 없을 때나
시청했을 뿐이다. '활'... 뭘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김기덕 그 사람 자체도 부조리하며, 영화도 부조리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이제 영화 감독, 김기덕은 없다. 은퇴한다 어쩐다 하니...
그냥 박수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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