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foxup 작성일 18.01.30 18: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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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는 일종의 심리 스릴러다. 영화는 자유로운 시간적 배치를 통해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그려나가고 동시에 이에 반응하는 그녀의 심리 상태를 쫓는다. 이를 통해 영화는 상당히 자유로운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게 되는데 그 결과는 영화에 대한 명확한 해석보다는 열린 결말과 열린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에 케빈(에즈라 밀러)이라는 특정한 이름이 포함되어 있지만,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에바(틸다 스위튼)다. 그녀는 원래 탐험가이자 활동가였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결혼 이전에 그녀는 분명 그 방면에 전문가였음이 분명하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직업이었던 그녀에게 결혼은 낯선 것이었지만,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찾아오고 결국 프랭클린(존 C. 라일리)과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

이후 영화가 주로 묘사하는 장면들은 에바와 케빈 사이의 알 수 없는 긴장감이다. 갓난 아이 시절부터 아들은 엄마를 멀리했고, 아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했던 엄마는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 남자는 아들에 대한 아내의 원망과 생각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아빠와 아들 사이에는 아무런 심리적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딸 실리아(애슐리 게라시모비치)가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눈을 실명한 이후, 그리고 그 사건이 케빈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을 에바가 한 이후, 이들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만다.

영화 속에서 케빈은 일종의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이다. 그가 마지막에 저지른 처참한 살육극을 보건데 이를 반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는 단 한 번도 정상적인 아들처럼 엄마를 대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를 통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는 이제 곧 성인이 되어 성인 교도소로 옮기게 될 아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이제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 해답을 얻을 때도 됐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은 바로 "왜 사람들을 죽였느냐"라는 것이다. 케빈의 대답은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명료하다. "그 때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케빈은 자기의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화살을 마구잡이로 난사해 같은 학교 친구들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었고, 심지어 아버지와 여동생마저 살해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에게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증오의 대상인 엄마에게 향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에게 사이코패스의 엄마로서 일생일대의 짐을 지고 살아가라는 극단적인 선택이었을까?

어쩌면 자식을 원하지 않았던 그녀의 젊은 시절이 결국 원죄로 돌아와 원하지 않는 자식의 복수로 귀결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해석을 어떻게 하든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아들과 포옹을 한 후 교도소 밖을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가 아들과 포옹을 한 것은 영화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아들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이 붉은 색 페인트를 던져 지저분해진 집과 자동차를 말끔히 청소하고 면회를 간 엄마는 결국 아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한 여성의 심리상태를 쫓는다. 그녀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행복한 인물이 아니었다. 어쩌면 케빈과 에바는 같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에바라는 인물이 생식 행위를 통해 케빈으로 다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서로의 마음을 옭아매며 살아가는 불행한 인연일 수도 있다. 그녀가 결국 아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면 이는 곧 자신과의 화해이며 결국 자신의 마음과의 화해일 것이다.

누군가가 어떤 해석을 가하든 이 영화가 주는 느낌은 서늘한 먹먹함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자폐 현상에 빠진 인물은 어떤 의미로도 가장 불행한 인물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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