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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반경1m 작성일 09.08.12 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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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비록 아픈 역사지만, 잊지 말자.

그리고 더 이상 공권력이라는 그림자 같은 괴물이 생기지 말도록 하자.

불편한 역사를 꺼집어 내야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 5월 화려한 휴가의 기록 ]

 

 

80년 5월 17일, 광주 상무대 전투교육사령부에서 공수부대 천여명이 작전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의 이름은 '화려한 휴가' 였다.

   

<블러디선데이>는 아일랜드의 민중 유혈사태를 다룬 영화이다. 공교롭게도,

광주가 처참하게 찢어발겨졌던 5월의 그날 역시 일요일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졌던 피의 역사는 치밀하게 연구되고 기록되는 마당에,

이 땅에서 우리의 혈육들이 살상당했던 기억들은 조직적으로 지워지고

망각되어 버리는 실태이다. 우습고 창피하고,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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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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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오전 10시, 휴교령이 내린 상태에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100여명과

무장 공수대원이 대치하였다. 200-300명 정도로 수가 불어나자 학생들은

"계엄해제" "계엄군 물러가라" "휴교령 철회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곧 대치 중이던 공수부대 책임자가 "돌격 앞으로" 라는 명령을 내렸고,

공수대원들은 학생들에게 파고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곤봉은 쇠심이 박힌 살상용 곤봉으로, 이를 맞은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공수 놈들이 여고생을 붙잡고 대검으로 교복 상의를 찢으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60살이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아이고! 내 새끼를 왜들 이러요?" 하면서 만류하자

공수놈들은 "이 * 년은 뭐냐, 너도 죽고 싶어?" 하면서

군화발로 할머니의 배와 다리를 걷어차 할머니가 쓰러지자

다리와 얼굴을 군화발로 뭉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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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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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대검만으로는 모자랐던 걸까. 20일 오후부터는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사용하였다.

 

2시 30분경 공수부대는 화염방사기를 쏘아 여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타 죽었다.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하였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프로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젼을 보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 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전의 다리를 흔들어 대는 춤은 누그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mbc 이외에도 kbs와 세무서도 불에 탔다.

 

신군부는 이 방화들을 '폭도론'의 증거로 tv 등을 통해 계속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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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공수놈들은 같은 동족을 살상하고도 쓰러진 사람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연발로

위협사격을 해대었다. 아직도 공수부대놈들의 사격선 부근에서 부상한 채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애원소리는 처절했고, 이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를 끓게했다.

공수놈들은 아직 죽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민들을 구하려고 뛰어나가는 시민들에게조차 사격을 가해 사살해버렸다.

부근 건물의 벽에 바짝 붙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 박남선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샘물, 1988)

21일 저녁, 드디어 시민군은 계엄군을 도청에서 몰아내고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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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정석환에게 "최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며 전두환 자신의 명의로 금일봉 1백만원을

최웅에게 전해달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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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공수부대는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학동과 진월동을 거쳐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야산으로 철수하던 중 진월동에 이르러 인근지역에 장난삼아 총질을 가했다.

 

저수지에서 멱을 감고 있던 아이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하자 아이들은 둑 너머로 피신했지만,

전남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광범이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또한 진월동 동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도 무차별 집중사격을 가했다.

모두 피신했지만 신발이 벗겨져 뒤돌아섰던 효덕국민학교 4학년 전재수는

총에 맞고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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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전남 도청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내외신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국의 일간지 <볼티모어 선>지의 기자 블레들리 마틴은 이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주항쟁 지도부의 청년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이었던 윤상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그가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표정에는 부드러움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지적인 눈매와 강한 광대뼈가 인상적인 그는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5월 27일 0시를 기점으로 광주의 시외 통화가 끊기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계엄군이 진입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우리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 있는 고등학생들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산 사람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빛나는 미래를 위하여, 항쟁의 마지막을 자폭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자, 고등학생들은 먼저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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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앞은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금남로를 중심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장갑자 위에 장착된

서치라이트가 도청을 비추는 가운데 계엄군은 항복을 권유하는 최후 통첩을 방송했다.

 

그러나 도청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곧 총성이 울림과 함께 계엄군의

서치라이트가 박살났다. 다시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렸고 계엄군의 일제사격이 개시되었다.

달아나던 시민군을 살해했던 계엄군은 8명의 투항자들을 전부 사살하였다.

한 계엄군 병사는 한쪽 발을 시민군 포로의 등에 올려놓고 사격하면서

"어때, 영화구경하는 것 같지?"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넣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 날 이후

광주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후 서울로 올라왔던 서강대생 김의기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5월 30일 오후 5시 30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을 뿌리면서 투신 자살했다.

 

 

후일,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어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전체 사망자 수는 2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처음부터 사상자수를 은폐하기 위해 사상자가 발생하는대로 트럭에 싣고

아무도 모를 곳에 파묻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출처 : (이건 제가 캡처한 지식채널이 아녀요~ ^_^) 다음 - 공돌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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