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남과 부산은 김대중씨를 택했다...
박정희는 경남의 심장부 부산의 민심을 확인하고 김대중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게 된다...
앞뒤 다 잘라먹고 제시된 글을 보고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몇 자 써봅니다.
70년대 당시 신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젊은 피로 대두되었던 두 사람이 김영삼과 김대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선의의 경쟁관계였는데, 먼저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는 김영삼이 승리를 합니다.
그 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김대중이 승리를 합니다.
김영삼은 깨끗이 승복하고, 김대중을 지원합니다.
김대중이 먼저 대통령이 되게 하고, 그 다음으로 김영삼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 김대중이 자신을 지원해 달라는 협약을 한 것입니다.
약속대로 김영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텃밭인 부산 경남에서 김대중을 지원 유세했고, 김대중은 부산 경남지역에서 많은 득표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실 부산 경남에서 김대중을 지지한 것이라기 보단, 야당 신민당을 지지한 것이었고,
좀 더 까놓고 말하면, 김영삼의 지지 세력의 힘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 후, 알다시피 박정희의 유신, 전두환의 쿠데타...
두 김씨는 곤경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1987년 대선....
정치활동이 해금된 김영삼과 김대중은
신한민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만듭니다.
당 총재가 된 김영삼은 김대중에게 과거 71년 자신이 김대중을 지원했으니, 이번엔 김대중이 자신을 지원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김영삼이 총재를 하고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합니다.
상호 마찰이 생기고 김대중은 호남 의원들을 이끌고 나가 이른 바 호남 당이라 불리는 평화민주당을 세웁니다.
자연히 남은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부산 경남 당의 지역당으로 전락합니다.
......노무현씨가 눈물을 쏟으며 제발 두 분이 통합하라고 절규했던 것이 바로 이 때입니다.
김영삼은 김대중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욕하고, 김대중은 외면합니다.
이게 바로 선의의 경쟁관계이던 양 김씨가 서로를 비방하는 사이로 악화된 계기입니다.
이 두 사람에다가 충청 당을 만든 김종필씨까지 합쳐서 3 김씨를 대통령 병 환자 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
3 김씨는 긍정적인 지역주의를 배타적인 지역감정으로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고
실제로 지역감정이란 것을 가장 열심히 이용해 먹은 장본인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87년 대선 결과는 노태우 당선...
그리고 3 김씨는 서로 네 탓이오 하며 기존 지역감정의 골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근현대사에서,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 한 3 김씨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