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론 1부

구름을찾아서 작성일 10.12.05 18:18:22
댓글 0조회 621추천 0

요새 지역주의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는 바,  관련 자료가 되는 글을 펌글 합니다.

 

 

① 지역이동과정에서 지역감정발생 - 1960년대 이전까지

 

지역감정은 지역 간 접촉이나 교류가 없으면 생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즉 지역 간 사회적 차별은 사회적 이동성(인구의 이동관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느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특정 지역으로 이동해갔을 경우

 

두 지역민 간에는 화해관계보다는 갈등관계가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새로운 인구의 유입은 노동력의 증가에 의한 생산력의 증가가 아니라,

 

구직이나 자원획득에 있어서 더욱 심한 경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지역 사람들이 어느 지역으로 상대적으로 많이 이동해갔는지가

 

한국의 역사에서 지역갈등의 주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인들이 어느 지역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을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농민들이 토지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쉽지 않았고,

 

따라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접촉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제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는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로, 당시 일어났던 광범위한 농촌분해 과정 속에서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토지를 상실한 농민들은 도시 지역에서 노동자화되거나 유랑민이 되면서 타 지역 주민과 광범위한 접촉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각 지역인들마다 이동하는 정도가 달랐다.

 

농촌분해 과정에서 이탈된 각 지역 농민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근 대도시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경상도 농민의 경우 부산과 대구가 중요한 임노동 공급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충청도 지역 농민들은 충북지역의 탄광이나 서울․경기 지역으로 진입했다.

 

전라도 농민의 경우 토지는 비옥하고 생산성이 높으나 소작비율이나 조세수취의 여건 등이 가장 나쁜 지역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이동이 이루어졌다.

 

이들이 갈 수 있었던 지역은 대개 가까운 충청도나 대도시인 서울이었고,

 

이 과정에서 전라도 사람들과 충청도, 서울 사람들의 대규모 접촉이 일어났다

 

그러나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와 같이 살기 힘든 상황에서

 

생존경쟁자로서의 타 지역인은 원래 지역인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서울 지역과 충청도 지역에서 호남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지역감정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감정은 호남인들이 주로 이동한 충청과 서울 지방에 국한된 것이었지 전국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계기로 국민 개병제에 의해 '군대'라는 집합소로

 

 전국 각 지역 출신들의 사병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서울․충청의 지역감정이 전국적으로 전파되게 되었으며,

 

그 이후 1960년대부터 가속화된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직업․지역 측면에서의 이동이 빠르게 일어나면서

 

지역감정(호남에 대한 적대감과 편견)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2부에 계속

구름을찾아서의 최근 게시물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