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의 출혈로 그만 쓰러져 버린 난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깨어났다. 내 옆에는 네페 선배님이 자고 계셨는데, 아마 밤새 날 간호해 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시에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응? 후치히로씨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아... 네. 혹시 시에르 못 봤나요?" "시에르는 당분간 후치히로씨 앞에 오지 못할 거예요." "왜죠? 갑자기 시에르의 태도가 변하다니... 전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렇겠죠. 시에르는 마족 세계에서 가장 피를 많이 먹어 봤다던 공주로 이름 높으니까요." "하지만, 시에르는 이 인간 세계에서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딴 이야기로 흐르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제 이야기에 답해 주세요." "뭐죠?" "어째서 시에르와 함께 동행 하는 거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에르를 도와 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혹시, 시에르에게서 환한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네. 선배님 만나기 바로 전에요." "시에르가 키이라라는 자에 대한 것과 그의 군대에 대해서도 다 말해 주던가요?" "그렇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는 왜 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시에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드리죠. 얼마 전에 나왔던 원인 모를 살인 사건의 기사 거리가 실린 신문을 봤겠죠?" "네. 전 신문을 자주 보는 편이라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시에르를 만난 이후로는 어떻게 된지 아세요?" "획실히 그 땐... 살인 사건이 당분간 멈춰져서 안심이 됬다고... 신문에... 호... 혹시!" "그 혹시가 맞습니다. 시에르가 후치히로씨를 만나기 전까지 인간들을 잡아 먹고 살아 왔죠. 그것이 마족들이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거... 거짓말이죠? 거짓말이라고 말해 주세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전 시에르와 라이벌로 통했던 관계니까요. 그 정도는 압니다. 당신도 홀로 살아서 아시겠지만, 시에르는 950년 동안 살아 오면서 친구도 없었고, 파트너 조차 없었던 외로운 공주였습니다. 그래서 돕고 싶다고 했던 후치히로씨를 보고는 아마 너무 좋아 했을 겁니다." "그랬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치히로씨가 내뿜은 대량의 피를 보고는 억눌러 왔던 자신의 욕망이 그만 한순간에 폭발 했겠죠." "선배님. 시에르가 어디 갔는지 모르시나요?" "시에르의 피 냄새를 맡아서 쫒아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죠?" "시에르가 어딨는지 가르쳐 주세요. 시에르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안됩니다.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시에르라면 당신도 잡아 먹으려들꺼라구요." "부탁합니다. 선배님!" "어쩔 수 없군요." 나는 시에르를 더 더욱 돕고 싶었다. 그래서 시에르가 어딨는지 알기 위해 선배님에게 부탁을 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선배님은 결국 시에르가 가고 있는 장소를 말 해 주었다. "헉...헉... 시에르... 드디어... 찾았다...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알아?" "후치히로 나에게 오지마! 절대로!!" "네페 선배님에게 다 들었어. 너 날 만난 이후 성격 많이 변했다면서? 그 동안 외로웠지?" "오.. 오지마. 난 지금 후치히로를 잡아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많이... 외로운거였지? 걱정 마. 넌 이제 외톨이가 아니야." "난 외톨이가 아니야! 마족 세계에서도 난 외톨이가 아니었어!!" "나도 알아. 네 심정... 나도 너 처럼 외로움을 감췄지. 하지만, 그건 숨긴다고 다 가 아니야." 나는 눈물을 흘리며 점차 시에르 곁으로 향했다. "후치히로..." "넌 내가 있잖아. 안 그래?" "후치히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시에르는 나에게 달려와 꼬옥 안았다. 그것도 엄청 슬프게 울면서... "흑... 후치히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괜찮아. 서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주는 거야. 그리고, 마족의 공주가 이렇게 울면 어떻하냐?" 시에르는 다시 내게 돌아왔다. 이젠 정말 한시름 놓았다. 이렇게 시에르를 간절히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다. 아마 난 시에르를 좋아한 모양이다. *인간과 마족 Episode-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