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하얗다. 그 속에서 또 알 수 없는 사람과 마주쳤다. "당신은 누구죠?" "누구라니? 난 너야." 나라고 자칭하는 자. 나 같이 못 생긴것도 아닌데... 아니 지금 외모 따위를 생각할 게 아니지. 나와 정 반대의 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온통 살인을 즐기고 싶은 살기를 지닌 것 처럼... "나라니?" "이해 못 하겠어? 아시카 후치히로란 말이야. 또 하나의 너라고 보면 돼." "또 하나의 나?" "원래 우리는 서로 마음이 이어져있는 순수 혈통의 마족이야." "마족? 17년 동안 난 인간 그대로 살아 왔어. 마족일 리 없잖아!" 아니다. 난 마음 저편으론 마족이라는 걸 인정 해버렸다. 하지만 난 인간인 모습이 즐거웠고 행복했기 때문에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수인은 인간의 삶을 사는 마족이야. 아니지, 모든 인간들은 원래 나와 같은 생물체를 마음 속 깊히 키워 두고 있지." "마음 속 깊이 키워두고 있다고?" "그래. 인간은 기쁨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려는 게 아니라 행복을 얻기 위해서 나타나는 욕망과 질투심 등이 일어나기 때문이야." "네가 생각하는 인간들은 그런 게 아냐!!" "다음에 또 보자고. 그 때에는 네가 완벽한 마수인이 될 때지만 말야. 하하하!!" "거기서!!" 저 녀석 은근히 재수가 없는 녀석이다. 내가 악몽같은 꿈을 꾸고 식은 땀을 흘리며 일어났을 때에는 시에르가 매우 걱정한 눈빛을 지으며, 날 간호해 주고 있었다. "이제 일어났어?" "으... 응.."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시에르는 갑자기 날 향해 안겼다. 울먹거리는 소리, 그리고 어깨에 닿는 축축함... 걱정을 많이 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아... 일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처음에는 시에르를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어느 새 내 정체도 알았고, 사악한 마족이 되려 하다니... "헉... 헉... 찾았다구..." "네페 선배님..." 한참 시에르를 토닥거리며 달래고 있을 때, 때 마침 네페 선배님이...... 왜 이러지? 온 몸이 뜨거워... 으악!! "후치히로!!" "젠장! 좀 더 빨리 오는 건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양쪽에는 커다란 검은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지 죽이고 싶은 살인 욕구가... 눈에 마주치는 자들은 모두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죽이고 싶어. "안녕. 시에르." [쫙!!!] "으악!!!" 하하하!! 그래. 난 비명소리도 원해. 고통스런 울음소리를 말야! 시에르가 다쳐도 오히려 쾌락이 느껴진다. 좋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자를 쳐부수자고! [쾅!!!] "벌써 마수인의 눈을 뜨게 된건가? 젠장!!!" "이제... 후치히로는..." "아니, 희망은 있어. 후치히로는 지금 막 마수인이 됐잖아. 마수인이 되고 나서 부터 2시간 이내에 개기일식 때 천의 과일을 먹이면 다시 평범한 후치히로로 돌아갈 수 있어." "후치히로...." "뭘 꾸물대! 빨리 가야지." "으악!!!" "사... 사람 살려!!!" "좋아! 너무 좋아! 이 쾌락감... 자, 좀 더 즐겨야지..." "아브리 카센... 개기일식이여! 우리에게 빛이란 단어를 감춰 주소서!!" 뭐지? 개기일식인가? 날 원래대로 해보겠다 이 말인가? 두 손 놓고 방해 받을 순 없지. 이 쾌락감을 좀 더 즐기고 싶으니까 하하하!! "시에르! 개기일식이 완성 됐어. 이제 천의..." [퍽!!!] "으악!!!" "쯧쯧... 날 방해한 죄 값을 톡톡히 치뤄주지." "그만 둬!! 후치히로... 제발 그만 두라고..." "오호... 무섭기도 하여라. 하지만 넌 날 절대로 공격 못 할걸? 하하하!" "바위 부수기..." [쾅!!!!!] "억! 네 녀석이 날 공격하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어 올랐군!!!" [쫙!!!!] "윽... 하지만, 난... 후치히로 널... 구해 줘야만 해..." "날 구해 준다고? 헛 소리 마라! 지금 이 상태가 최고란 말야!" "그래? 나와 함께 키이라의 군대랑 싸운 것도 흥미롭지 않았단 얘기야?" 뭐... 뭐지? 갑자기 힘이 빠져. 그래. 무엇보다 행복했던건... 시에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야... [우걱!] 내 스스로 천의 과일을 집어서 한 입 베어 먹자 온 몸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태껏 느껴 왔던 사악한 기운도 사라져 버렸다. "고마... 워..." [털썩!] "아... 나야말로 고마워... 무사히 돌아와주어서..." 아... 얼마나 고달픈 일이었는가... 시에르와 네페 선배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마수인이 되어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겠지? 난 그 무엇보다도 시에르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인간과 마족 Episode-1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