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실신 10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09.08.14 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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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맹이 심어 놓은 시비가 매일 타주었던 차에 들어 있던 독은 아직까지 해독이 되지 않고 있다. 마의는 그까짓 독 충분히 해독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내몸은 내가 잘 알고있다. 조금씩 흩어져가는 내공과 쇠약해지는 신체가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

을 알려주고 있다. 나 하나 죽는 것이야 겁나지 않지만 내가 쓰러지면 마천루가 무너진다는 사실이 너무도 겁이 난다. 만향의

무위가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고는 하지만 그 아이의 여린 마음이 걱정된다. 그 아이의 여린 마음은 앞으로 시작될 전쟁과

함께 조금씩 붕괴되어갈것이고 종국에는...그 아이의 마음을 버티게 해줄 것들이 필요하다. 지하만으로는 부족하다.

 

"죄송하지만, 그는 내 주군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마군이라 했던가. 그 아이라면. 나의 발걸음은 사마군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천루 외곽 변두리에 자리잡은 사마군

의 집은 생각보다는 크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마천루에서 거의 없다시피 한 학자출신인 그의 과거이력을 생각한다면 그리 어색하지 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흐음, 만향이가 내준 것은 아닐 테고..."

문을 두드리자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기감을 드리워 집안을 살펴보자 사마건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조그마한 한숨을

쉬고는 담을 넘어 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뭘 그리 생각하길래, 사람이 와도 반기질 않는것이냐?"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마건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방문을 열었다. .

"들어가도 되겠는가?

 

"이미 주인 허락없이 대문을 넘지 않으셨습니까?"

 

사마군의 얼굴에 불만이 슬쩍 비쳤으나 나는 모르는척 웃으며 사마군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네."

 

밖에서 본 것과 달리 사마군의 거처는 생각보다 검소한 편이었다. 이렇다 할 장식품 같은 것도 없었고, 기껏해야 서책 몇권과

잘 닦인 바둑판이 전부였다. 내가 이리저리 방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사마군이 말했다.

 

"무슨일로 찾아 오셨습니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바둑 한판 어떠신가?"

 

"잘 두지 못합니다. 바둑판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버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말이죠."

 

"허허, 사람하고는 자 이리오게."

 

나는 사마군을 바둑판 쪽으로 이끌었다. 그는 못이기는 척 하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바둑. 사마군의 백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흑을 벼랑 끝으로 몰아 넣었다.

 

"생로는 없고 주위에는 이리떼만 가득하니, 바둑판의 형세가 지금 내마음과 같군 그래."

 

"어인 말씀이십니까?"

 

"하하,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겐가?"

 

"저는 우둔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방안에 싸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얼마후 나는 웃음기를 거둔채 사마군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마천루를 떠날셈인가?"

 

사마군의 눈이 언제 흐리멍텅했냐는 듯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이내 본래의 눈으로 돌아간다. 


"내 아들이 그대의 성에 차지 않은가?"

 

사마군은 난처한 표정으로 손사레를 쳤다.

"무슨 말이십니까?"

 

사마군은 고개를 저었다.

 

"만향은 매일 밤 외곽에 있는 정원으로 나간다네. 한번만 그를 다시 만나보게나. 이만 나는 가보겠네."

 

나는 말을 남기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바둑은 제가 이긴것으로 하겠습니다."

 

나가는 나의 발걸음을 사마군의 목소리가 잡는다.

 

"한수만 물려주게나."

 

"................"

 


 


서너판을 내리지더니 얼굴을 굳힌 마제가 떠난 후 나는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마천루를 떠날 셈인가?"

마제의 말은 그냥 무시해버릴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상하게 그의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왜 가만히 두지 않는 거지?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것이냐?"

머리가 복잡해진다. 처음 마천루에 들어섰을때 만향의 모습이 적을 속이기 위한 계략인 줄 알았다. 그래도 한 단체를 이끌

수장이거늘. 하지만 그것은 그의 본모습이었다. 나의 가족을 죽인 정무맹의 노예병으로 있으면서 악착같이 죽지 않고 살아

왔던 나이지만 이곳에 들어선 순간 모든 것이 뒤틀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조만간 크게 어긋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신에 엄습해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이곳을 떠나자. 혼자서 한번 해보자. 내 머리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새색시마냥 수줍게 얼굴을 드러낸 초승달이 살며시 홍조를 띤 채,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초승달을

향해 손을 가져가 보다  피식 웃으며 손을 거둬들였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지만 늘 그렇듯 답은 들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참으로 많은 기행을 저질렀다. 아버지와 스승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역겨웠다.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반하는 일을 무던히도 저질렀다. 파락호짓에 발 한자리 얹은 적도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가족들이 마인으로 몰려 죽은 시점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일 것이다. 나는 더이상 기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철이 들면서

느낀 아버지의 늙음과 내 추한 과거의 후회. 다시 시작해 보려고 대과를 준비했다. 조금이나마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표정.

나는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모든것이 끝났다. 복수를 꿈꾸지만 무섭다. 정무맹이 무섭고 나의 무력함이 무섭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복수? 아니면 복수를 가장한 삶의 연장? "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달을 바라보던 나는 곧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채비를 하였다. 그래 만향을 다시 한번 만나보자.

 

 

 

외곽의 정원에 들어서자 만향이 숨을 헐떡인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야밤에 무엇을 하는 겁니까?"

 

"헉헉...검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검이요? 만향님은 왜 검을 휘두르시는 겁니까?"

 

"두려워서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모든것이 두렵습니다, 나보다 더한 천재성을 자랑하던 아버지가 저리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두렵고 사람들이 두렵고

무력한 내가 두렵습니다."

나는 더없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내렸다. 그의 말이 고요히 잠들었던 나의 심장을 다시금 뜨겁게 만들었다.

 

"한 세력을 이끌자가 그게 무슨말입니까! 무엇이 두려운겁니까! 죽음이 두려운겁니까!"

 

만향이 아닌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무엇이 두려운것이냐. 사마군아. 죽는것이 무서우냐?

 

아니!

 

아니!

 

그래 이런 식으로 피한다해도 언젠가는 이 난세가 나를 찾아 낼 것이다. 조금 시간을 앞당긴 것 뿐이다. 문득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세상을 바꾸는 아이가 될것이야. 너의 눈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 가지는 눈이 거든.'

어느새 나는 만향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앞으로 나 사마건은 만향님에게 충심을 바치고자 합니다."

당황한 만향이 허겁지겁 일어나 나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허락할때까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그가 안절부절하며 어쩔쭐을 몰라한다.

 

"벗이, 벗이 차라리 벗이 되어주시오."

 

그런가, 벗인가. 끝까지 내 주군의 이상향과 먼 사람이야. 나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그리고 날 움직인 이상 각오해두는 것이 좋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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