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외전2-1

무심한하늘 작성일 10.06.03 00: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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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위생용품을 사들였다.
돈은 없어도 마스크나 조그마한 소독약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병이 확산 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철물을 구입했다. 돈이 없으면 하다 못해 삽이나 모종삽이라도 사서 가지고 다녔다.
철물점은 호황을 누렸고 동시에 집들의 담장엔 예전처럼 쇠조각이 박혔다.

처음 신종플루라는 감기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이 몇 죽고 감염자가 한자리수에서 순식간에 천단위로 올라갈때까지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이병에 대해서는 그렇게 태연할 수 없었다. 걸리면 100% 사망. 치료제는 없다. 예방은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이 이병에 걸리지 않는것을 기도하거나 발병자를 발견시 즉각 활동정지케한후 소각하는것뿐이었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던 a는 주위를 둘러본 후 이어폰을 빼야했다. 어떤 급박한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는데 이어폰을 꽂는다는건 자살행위였으니까.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달리기도 자신 없고 힘을 쓰는것도 자신이 없었다. 병에 걸린 사람을 아직 가까이서 본적이 없다는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오늘도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량진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다. 학원에 사람이 많고 그런 장소에서 발병자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건 알지만 그건 상관 없었다. 사람이 많으면 대처할 인원도 많다는거니까.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요즘 가방에 접이식 야삽을 넣지 않은 학원생은 거의 없었다.

학원 옥상에서 담배를 물고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공부한답시고 잠수탔는데 친한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전화비도 별로 없으니 집에 걸어본다.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서 심한 피로감을 호소하셨다. 발병은 아닌데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듯 하다. 밖에 잘 나가지도 않으셨지만 시장에는 꼭 가시던 분이 이젠 발병자를 만날까봐 집에만 계시니 아무래도 집안일을 무리하게 하셨나보다.

"엄마 괜찮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엄마. "응. 왜?" "아니. 그냥 걱정되서." "큰병 아니야. 공부 열심히 해라." "응." 대화는 항상 짧게 끝난다. 전화비가 많이 나오는걸 싫어하시니까.

수업이 시작하고 얼마 안있어서 밖에서 콩볶는 소리가 난다. 발병자가 나타난 모양이다. 근처에 경찰서가 있기 때문인지 대응이 빠르다. 경찰들은 발병자가 나타나면 바로 실탄을 쏘았다. 몇달 전 발병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할때 경찰서 내부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 서는 초토화되고 이에 급히 출동한 경찰특공대가 생존자든 누구든 모조리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경찰의 실탄 사용에 우려를 나타내고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박통이나 전통때처럼 무자비한 진압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무차별 진압 작전 이후로 경찰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그 뒤로 발병자가 아닌데 발포했을때는 중범죄자를 상대로 했다고 해도 무조건 사직서를 제출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렇지 않게 밖의 콩볶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수업을 듣고 하루가 지나고 수업이 끝나 늦은 시간에 강화버스에 올라타 지하철로 향했다. 기사석은 승객석과 완전히 분리되어 기사석에서 개방하지 않으면 승객은 기사에게 손가락 하다 댈 수 없었다. 안전면에서는 운전기사들의 직업이 최고였다. 마치 작은 감옥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입석이 없어지고 무조건 좌석제가 실시되었고 의자에는 여러가지 의미로 '안전띠'가 설치되었다. 안전띠를 매면 앞만 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없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즉각 내리게 되었다. 버스마다 두명씩의 안전요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니까.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내리게 된다.
버스회사는 어떤 의미로는 호황을 누렸다. 각종 장비를 설치하는데 정부의 지원금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자가용을 타고가다가 발병시100% 소각후 처리당하기 싫어 버스와 지하철을 통해 '안전한' 이동을 추구하였다. 발병후에 죽어도 자신의 가족에게 갈 수 있으니까. 버스회사의 버스는 늘어났고 기사와 안전요원도 늘어났다. 안전장치의 설치업자와 재료업자, 모두가 늘어났다. 취업의 문도 넓어진거다. 우스운 일이었다.

지하철을 탔다. 각 역마다 소대급의 인원이 머물며 진압을 대비했다. 전역자가 바로 신청하면 취업이 되어 간단한 기초훈련과 교육 후 지하철에 배속되어 근무했다. 군대 늦게갈껄 하는 후회도 가끔 드는 a씨였다. 최신 방어구와 근접 무기. 숙식제공. 짠 월급이지만 완벽에 가까운 복지제도. 공무원9급에 준하는 대우. 여성부에서 남여차별이라고 게거품을 물었지만 소용 없었다. 체력이 없으면 발병자를 상대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지하철에서는 좌석이 사라졌다. 대신 아이언 메이든 같은 못만 안달린 금속 캡슐에 들어가야했다. 위생상 찝찝하긴 했지만 지하철은 종점에 도착하거나 순환을 한번 돌때마다 소독하게 되었으니까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량 하나에 금속캡슐 80개가 들어있었고 이를 유지하고 지하철 공사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지하철 기본요금은 20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안전하니까 오히려 인기는 좋았다. 버스처럼 장사도 잘되었고 관련 직업과 종사자도 늘어났다.
노약자와 비만인 사람은 지하철을 타는게 오히려 불편해졌다. 장애인들은 밖에 나갈 수 없게되어 따로이 시설이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에 많은 항의가 들어갔지만 대답은 "해결책을 찾고 있으며 예산 부족으로 진행하지 못한 일들이 많으니 이해해달라."였다.
발병자의 캡슐은 즉시 제거되었으므로 걱정할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변태들이 기승을 부려 엉덩이가 닿는 부분은 조심해야했다. 이런 시대에 변태라니. 살이 바깥 세상에 닿는게 두려워 눈과 귀만 내놓을 정도인데.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미쳐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에 가는데 술취한 아저씨가 욕을 하며 길을 거닐고 있다. 역시 *것들은 여전히 미쳐있다. 술집은 발병자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대표적인 곳이었다. 술에 취하면 대응도 힘드니까. 대신 스탠드 바가 늘어나서 한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집에 가는 손님이 늘어났다. 편의점도 술장사가 꽤 되었다. "마시려면 집에서!" 소주 광고는 공익광고 비스무리하게 되었다.
경찰서에 술취한 사람이 길에서 헤매고 있다고 신고해주고 흐뭇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선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여자들에게 정말 인기가 없었던 sf나 판타지에 관한 사이트들은 항상 트래픽이 초과될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매니아들의 세계라고 생각되던 곳이 위험을 피하기 위한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보물섬이 되었다. 여전히 공상에 빠진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제법 현실적인 발병자 대처법들이 이런 사이트에서 나왔고 정부는 즉각 여러 의견을 수용했다. 그렇다고 돈을 지불하진 않았지만. 좀비 영화나 소설의 인기가 오히려 시들해진 반면 그 설정이나 배경등은 검색순위 1위였다. 가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자신이 다니는 사이트가 인기 많다는 것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a씨였다.

"a야." 엄마가 불렀다. "왜요~?" "잠깐 이리 앉아봐라." 뭔가 진지하게 하실 말씀이 있나보다. "아빠가 이번에 발병자 대책반에서 일하는 분이랑 이야기를 좀 했다는데 너 공부 자신 없으면 그쪽으로 나가보지 그러냐?" a씨는 짜증이 났다. "아. 뭐야. 힘도 없고 지구력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데서 일해. 그리고 일하다가 실수하면 나도 발병자가 되잖아." "너 솔직히 자신 없잖아! 그쪽에서 훈련시켜주고 해줄거 다 해준데. 해외로 파견도 내보내고. 너 영어 잘하잖아." "아~ 씨. 이번에 불합격하면 생각해볼께." "알았다."

몇달이 지나고 펑펑 놀던 a씨는 당연히 시험에 떨어졌다. 어차피 인기가 슬슬 식어가는 직렬이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아들이 공직에 나갈거라는 생각에 들떠있던 a씨의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화가 식자마자 발병자 대책반에 연락해서 아들을 입소시켰다.

"아이씨. 29에 내가 또 씨바 개같이 굴러야 되나. 아오." 21살때와는 달리 훈련내용은 대충 알게되었지만 이제 체력의 소모는 빨라도 회복은 극히 느린 30대의 몸이 되어가는 상황이라. a씨는 걱정이 되었다.

1주차 기초체력.
2주차 기초체력+기초방어술.
3주차 기초체력+기초방어술.
4주차 기초체력+기초방어술.
5주차 기초체력+기초공격술.
6주차 기초체력+기초공방술.
7주차 기초체력+기초무기제작.
8주차 기초체력+모의훈련.

총 8주에 걸친 훈련에 a씨는 기가 질렸다. 하지만 입소 후 퇴소는 불가능 했다. 정부는 발병자 대책반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혹독한 훈련 보다는 기초체력과 기본기를 갖춘 장정을 원했다.

1주차에 a씨는 달리다가 토했고 선착순을 하다가 토했고 팔굽혀펴기를 하다가 토했으며 윗몸 일으키기를 하다가 토했다. 교관들과 동기들은 a씨를 '또토'라고 불렀다. 무릎과 발목이 무척 아팠다. 살찐 몸을 지탱하기엔 관절이 너무 약했다. 병원에는 보내줬지만 치료 방법은 쉬는것 뿐이었으므로 치료는 불가능했다. 그저 살을 빨리 빼고 근육을 길러 지탱하는것이 답이었다.
2주차에 a씨는 토하지 않았지만 관절염에 걸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발목 무릎 허리가 아파왔다. 파스가 항상 붙어있었고 이젠 별명이 물파스가 되었다. 침상은 문에서 가장 먼쪽을 쓰게 되었다. 문을 열면 파스 냄세가 퍼졌으니까.
3주차. 다른 사람들은 다들 방어술을 연습할때 a씨는 기초체력을 연마하다가 까무라쳤다. 2주동안 쉴것을 병원에서 권고했고. 교관은 발병자대책반3기로 내려보내며 2주를 쉬게 해주었다.
4주차. 다시 1주차로 돌아갔다. 1기에서 3기가 되었다는 소식에 동기들이 위로를 해주었지만 어차피 5기까지만 뽑는거고 직위에 고하가 없다고 했으니 자신은 상관 없다면서 a씨는 태연했다.
2주를 쉬면서 적당히 운동해주고 격력했던 3주를 돌아보는 사이 몸은 슬슬 적응해갔다.다시 시작한 1주차가 정말 힘들었지만 전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자신보다 처지는 사람도 많았다. a씨는 기분이 좋았다.
8주까지의 모든 훈련이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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