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합니다 - 5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11.01.26 18: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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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며칠 후, 청룡대의 막사로 찾아왔다. 그의 뒤로 무장한 남만의 병사들이 따라 막사로 들어왔다. 목적에 의해 같은 장소에 있게 된, 서로에게 적의를 지닌 자들, 그들에 의해 막사분위기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우의 바로 옆에 서있던 남만의 병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님은 한어가 서투르십니다. 저의 이름은 권승, 중원에서 살았던 적이있으니 저를 통해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갈군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본격적인 거래를 하기 전에, 현재 남만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전장에서 남만왕은 꽤나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저희들을 위험에 빠뜨린게 한 두 번이 아니죠. 그런데 갑작스럽게 약화된 남만왕의 건강과 그 후 시작된 세력 싸움, 이런 남만의 혼란을 저희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아시다시피 힘듭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남만의 병사는 우의 확인을 받기위해 우를 바라보았고 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군의 말에 대답했다.

 

"치부이기는 하나, 왕은 현재 각에 의해 독에 중독되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병사의 말은 막사 안을 충격으로 채웠다. 독이라니. 만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든 권력이 끼어든 자리는 지저분하군요. 왕의 자리가 욕심나 자기 아버지에게 독을 먹이다니. 남만의 운도 다했나봅니다.”

 

다소 시비섞인 만향의 말에 기분이 상한듯 권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에 제갈군이 만향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눈치를 주고는 권승을 쳐다보며 말했다. 만향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남만왕은 3년전, 저희 대장에게 가슴을 꿰뚫리는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특히 그 또한 무인. 독에 의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까지 처했다는 건 미심쩍군요.”

 

남만병사는 한층 더 낮아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전투에서 입으신 상처는 쉽게 나을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그 후에도 여러 전투를 계속 지휘 하셔야 했기에, 왕의 상처는 갈수록 악화되어갔습니다. 다만, 왕께서는왕의 부재가 곧 남만의 패배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버티셨던 것뿐 입니다."

 

남만병사의 말이 끝나자 설담이 큰 소리로 웃었다. 막사 안의 모든 사람이 갑작스런 그 웃음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고 설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중, 평소 설담의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성격에 가장 많은 피해를 받았던 제갈군이 설담의 이어질 말을 막기 위해 급히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 먼저 밖으로 나온 설담의 말.

 

"역시 나야. 결국 내가 이긴 거였어. 푸하하. 남만왕이 그 정도의 실력으로 무적이라 불리었다니. 역시나 남만의 수준은 형편없어.”

 

설담의 말이 끝나는 즉시, 남만의 병사들은 칼을 뽑아들었고 이에 질세라 청룡대 조장들도 각자의 무기를 뽑아 남만병사들에게 겨눴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실내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제갈군은 피로감에 젖은 눈길로 주위를 살피더니 설담을 원망의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제갈군 눈빛을 느낀 설담이 ‘나만 믿어’라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겨눠진 병장기들 사이를 걸어 우에게 다가갔다. 짧게 깎은 머리에 앳된 얼굴을 한 우는 설담이 다가오는데도 여전히 의자 위에 앉아 설담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우를 내려다보며 설담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초면이지? 듣기론 이제야 성년식을 치룬 애송이라고 들었다.”

 

우는 설담의 빈정거리는 말에도 대꾸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앉아 설담을 응시했다. 그 눈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갈군은 상황파악 못하고 눈치 없이 지껄이는 설담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남만병사들의 칼에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봐 애송이, 네 아비에게 칼침을 먹인 자가 바로 네 앞에 있다. 넌 병1신같이 보고만 있을 거냐?”

 

그와 동시에 우의 창날이 설담의 목을 향해 찔러왔다. 설담의 목을 단번에 꿰뚫을 것 같던 우의 창은 설담의 목에 닿기 바로 직전에 멈추었다.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우의 눈빛. 설담은 자기 목을 겨눈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금속을 느끼고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보여주마. 남만의 힘을."

 

서툰 한어였지만 우의 의도는 충분히 자신의 의도를 전달했고, 설담은 밖으로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걸어나갔다. 남만병사들과 조장들은 각자의 상관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무기를 거두었다. 제갈군은 그런 막사의 상황에서 알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고는 만향에게 말했다.

 

“저 인간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만향은 제갈군의 마음을 모르는지 제 딴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담 대장님은 우리에게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거야. 무인들은 결국 피를 통해 대화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어떤 파국을 부르든 간에.”

 

어디서 주워들은 듯한 만향의 말에 제갈군은 마치 자신이 술에 취해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들뜬 눈빛으로 설담의 뒤를 따라 나서는 만향을 바라보며 제갈군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다 부질 없어.”

 

 

"아, 나는 애들 장난 같은 싸움은 하지 않아. 남자라면 생사결 이지."

 

건들거리는 자세로 손가락을 교차하고는 우두둑 소리를 내는 만향. 그 모습에 제갈군은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우가 자신과 같다면? 제갈군은 그 다음에 이어질 우의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바라던 바다."

 

어느정도 거리를 벌린 우와 설담. 둘의 투기에 주위의 나무들이 먼저 반응했다. 쉴새없이 떨리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 주위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우도 듣기와는 달리 상당한데요. 이정도 투기라니.”

 

현호의 얼굴은 우가 발산하는 투기에 자극받았는지 상기되어 있었다. 제갈군도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는 긴장된 얼굴로 둘을 주시했다.

 

"우가 대단한 무공을 익혔는지도 모르죠."

 

만향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 목소리에 현호가 의아한듯 만향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설담과 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는 온몸을 스치는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설담의 강함을 느꼈다. 설담의 투기에 자극받아 자신의 기세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우는 조심스럽게 호흡을 조절했다. 이윽고 현호의 창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쏘아져 나왔다.

 

“꿰뚫는다. 그 무엇이라도.”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쏘아져 오는 은빛의 창기. 단 한번의 찌르기로 생과 사를 결정짓는 극악의 창법이 우의 손에서 펼쳐졌다.

 

"은가창법!"

 

설담과 제갈군은 동시에 다른 의미의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은가창법, 이 무공은 이런 남만 오지에서 나타나서는 안될 무공이었다.

 

 

 

과거, 무림은 네명의 절대자에 의해 군림되고 있었다.

검성

도제

권신

창왕

강호는 그들을 "4개의 기둥"이라 부르며 경외했다. 무림에 몸을 담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결국, 무림은 네 갈래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이후 무림은 "4개의 기둥"에 의해 묘한 균형을 이루며 짧은 평화의 시대를 맞게된다. 하지만 무림은 항상 피를 갈구한다. 시간이 흐르자, 4갈래의 물길은 서로를 향해 출렁이기 시작했고 "4개의 기둥"은 고민했다. 그들은 서로의 강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미묘한 균형 사이에서 먼저 칼을 뽑은 이가 필패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피를 탐하기 시작한 강호는 그들에게 서로를 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결국 "4개의 기둥"은 비밀리에 천산에서 만나게 되고 그들은 끓어버린 강호의 피를 식히기 위한 대안을 찾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희생양을 만들기로 합의한다. 그 후 그들은 각자의 세력으로 돌아간 후, 세상의 무수히 많은 무공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추어 정과 마로 나누는 작업에 착수한다. 1년여 후, 그들은 각자의 세력을 데리고 다시 천산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선언했다.

 

"우리 강호의 네기둥은 강호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마를 벌하려 한다."

 

그 후 시작된 학살. 갑작스럽게 마인으로 몰린 무수히 많은 세력과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5년여에 걸친 학살에서 흘린 피는 무림의 포만감을 채워주기엔 충분했다. 다시 무림은 "4개의 기둥"의 균형과 함께 평화의 시대를 맞는다. 그 후, 10년이 지나, 마제가 무림에 강림했다. 그의 발걸음에 무수히 많은 문파들이 사라졌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가 걸어갔던 길에는 진한 어둠과 허무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정은 숨을 죽였다. 마제와 함께 각지에서 엎드린 채 복수의 기회만을 엿보던 자들 또한 일어났다. 무림의 사가들은 그 때를 "암천"이라 부른다. 하늘의 빛마저 막아버린 마제의 등장, 그리고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장한 5개의 마공.

 

 

창왕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한 검객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창왕의 창끝에 걸려 꿈틀거리는 아비의 심장을 씹어 먹었다. 두 눈과 아비의 심장을 씹은 폐륜의 대가로 검객의 아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10년 후 한 맹인이 창왕전에 나타난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한 자루의 낡은 창. 창왕은 그 맹인에게서 10년전 자신이 살려준 한 아이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맹인을 비웃으며 크게 웃었다.

 

"어리석구나. 아비의 심장을 먹고 살아남은 폐륜아여."

 

그리고 시작된 결투. 아비에게 배운 단 하나의 검법, 발도술. 그리고 창왕을 창으로 꺾기위해 필요한 창법.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이 둘의 조합으로 탄생한 은가 창법은 오직 단 한 번의 찌르기만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무공이었다. 하지만 창왕은 그 단 한 번의 찌르기를 막지 못했다. 맹인의 창은 창왕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 심장은 그 맹인의 이빨에 짓이겨졌다. 수비를 생각하지 않는 단 일초식의 창법. 이 극악의 무공은 이 후 무림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았다.

설담은 이 은가창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단 한 번의 고속의 찌르기. 우는 자신의 창이 설담의 목숨을 취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우의 창은 설담의 가슴에 박혔다.

 

"대장!"

 

만향이 분노하며 검을 뽑아 우에게 달려들려고 하였다. 이 때 제갈군이 현호를 제지했다.

 

"만향, 경거망동하지마라. 아직 결투는 끝나지 않았어."

 

과거 '4개의 기둥'에 의해 형성된 미묘한 균형은 각자의 세력들의 힘겨루기로 변질 되었고. 그 여파는 무림과 동떨어져 있던 일반 민초들의 삶마저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때 신투라는 도둑이 나타났다. 그는 4개의 세력의 창고를 털어 민초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4개의 세력은 그를 막으려고 노력 했지만 신투의 보법은 너무도 빨랐기에 그의 얼굴을 본 사람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권신의 손에 잡혀 발의 힘줄이 잘리고 앉은뱅이가 되고 만다. 민초들을 인질로 잡은 추격대 앞에 스스로 걸어나온 것이다. 권신은 신투의 목에 목줄을 채워 세상을 기어 다니게 만들었다. 민초들에게 보이는 경고의 의미였다. 몇 년 후, 신투에게 목숨을 빚진 민초들은 목숨을 걸고 권신에게서 신투를 탈출시킨다. 신투는 민초들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땅을 기어서 도주했다. 10년 후, 권신은 자신의 방에서 목이 잘려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날 권신을 지키던 자들 중 그 누구도 흉수를 보지 못했다. 목이 잘린채 죽은 권신 그 마저도. 유령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은밀한 발걸음 유령무보. 유령무보의 오의는 바로 허. 속도가 극에 이르니 우의 창에 꿰뚫리는 것은 허요. 그의 등 뒤로 나타나는 것은 실이다.

 

"유령무보. 가지가지 하는군. 이미 실전되어 진 걸로 알려진 마공들을 펼치는 자들이 존재하다니. 그것도 중원도 아닌 이곳 남만에서 말야.”

 

어느새 설담은 우의 등 뒤에 서 있었다. 하지만 유령무보로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던지 설담의 얼굴에는 일자의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알고 있지? 초식이 하나뿐인 은가 창법은 상대의 목숨을 취하지 못하면 그 시전자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는 자신의 등에 닿은 설담의 손을 느꼈다. 그 낯설음과 불쾌감에 우는 이를 악물었다. 몸을 뒤챌 수도 신음마저도 낼 수 없는 상황. 우는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패했군. 죽여라."

 

"우, 난 너를 찾기 위해 이곳 남만까지 왔다. 은가창법을 너에게 가르친 자가 누구냐?"

 

설담은 실전된 은가창법을 재현한 자를 알고 있다. 자신의 스승, 아니 바로 '그녀'. 설담은 그녀를 찾기 위해 이 곳 남만까지 흘러들어 왔었다. 5년여 만에 다시 잡은 그녀의 흔적에 설담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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