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후회했다.
모 주얼리(보석) 회사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할머니는 미국 주간지 《타임》에 최초로 이태리 주얼리 브랜드(상표)를 소개하는 글을 썼고, 시집도 발간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은퇴 후 서민 아파트에 살면서 주얼리 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써 근근이 용돈을 벌었다.
친구를 통해 마리사 할머니를 소개받을 당시 나는 짝사랑의 열병에 시달렸다.
정 많던 마리사 할머니는 종종 당신 집으로 나를 초대해 맛있는 저녁을 차려 주고, 카드 점을 봐 주며 곧 좋은 사람이 생길 거라고 위로해 줬다.
머나먼 이국에서 마리사 할머니는 친할머니처럼 따뜻했다.
마리사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한 아들은 은행에서 일하고 다른 아들은 하는 일마다 잘 안됐다.
그는 은식기 가게를 운영했는데 돈이 없을 때마다 할머니에게 빌려 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고, 번번이 갚지 못했다.
이런 일은 금방 소문나는 법.
할머니는 사람들을 잃어 갔고, 급기야 안 지 얼마 안 된 내게도 2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적은 돈도 아니고, 익히 소문을 들은 터라 적당히 핑계 대며 거절했다.
몇 달 후 마리사 할머니는 전기세를 내야 한다면서 다시 10만 원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거절할 수 없어 빌려 주었는데, 소문대로 할머니는 돈을 갚지 않았다.
나는 빌려 준 돈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서서히 멀어졌다.
그로부터 2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단돈 10만 원 때문에 나를 아껴 준 분을 버렸다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은 한때 친했던 사람들이 잊히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한 많은 시간과 추억이 이제 상관없는 일로 변했다.
그런 내게 마리사 할머니의 죽음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부모님, 내게 일을 주는 고객, 친구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진 접시나 상한 와인은 다시 사면 되고, 작아진 옷은 수선하거나 남에게 주면 된다.
하지만 떠나간 우정이나 잃어버린 건강은 다시 살 수도, 회복할 수도 없다.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려 한다.
적어도 미래에는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