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71

갑과을 작성일 18.07.20 02:03:29
댓글 0조회 3,368추천 0

Channel 1. 로키

 

1624710

 

2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삼민상단의 첫 분점이 문을 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이 사실상 본점이나 다름없긴 하지. 라스알하게의 본점은 공식적으로는 삼민혁명의 혁명군에 의해 몰수되었으니까. ...... 비공식적으로는 유 무형의 도움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형편은 이전에 비해 단촐 해 졌지만, 주설은 그런 것 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사뭇 우쭐대는 얼굴로 가게 앞에 걸려있는 특허장을 올려다보았으며, 가게에 진열되어있는 상품들을 애정이 뚝뚝묻어나는 얼굴로 쓰다듬었거든.

 

비록 경제에 관련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런 구멍가게에 애정을 쏟는지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겉보기엔 다 쓰러져가는 가게이지만, 이 가게는 그녀에게 있어 라스알하게를 넘어서 대륙으로 나가는 첫 걸음을 의미할 테니까......

 

아이리스씨는......?”

답답....... 아니, 걔는 방앗간에 떡을 떼러 간다고 했다.”

으응...... 그렇구먼유? 암만 단출혀두 일단 영업장은 차렸으니, 떡 돌리는 건 당연지사쥬. 지가 그런건 깜빡혔네유.”

아무래도 우리 셋 중에서는 붙임성이 제일 좋은 녀석이니까, 그 정도는 눈치껏 한 거겠지. 우리도 일단 투자자니 너를 돕겠지만, 사업의 주인은 너니까...... 다음부터는 좀 더 꼼꼼하게 챙기길 바란다.”

잉 그렇게 할게유.”

 

주설이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자신의 변화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전에는 남이야 어찌 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주의였는데, 어쩌다보니 잔소리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와 참...... IATP 연수 지명도 받지 못한 수습시절에는 선배랍시고 같잖은 잔소리를 집요하다 싶을정도로 해대던 녀석이 있었다. 그 모습을 정말로 고깝게 여겼던 나는 적어도 저런 새끼처럼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선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줄이야...... 확실히 사람이 입장이 달라지면 변하게 마련인 모양인 것 같다. 첨언하자면, 그때의 그 선배는......

 

다녀왔어요!”

 

그 되먹지 못하 인간에 대한 생각을 펼치려는 차에 답답이가 가게 앞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김을 왈칵왈칵 쏟아내는 떡 광주리가 들려있었다. 나는 녀석의 손에 들린 광주리를 얼른 받아들고 그것을 가판대 빈 곳에 올려두었다. 잠깐 잡았을 뿐인데도 손이 후끈후끈했다.

 

드디어 열었네요. 떡 돌려야죠?”

, 지가 고것은 미처 신경을 못썻는디, 아이리스씨가 일을 야물딱지게 잘 혀줘서 고마워유. 떡 띠어 오는디 돈 쪼깐 쓰셨을 터인디 영수증 청구하셔유.”

에이, 괜찮아요. 이게 뭐 어디 남 일인가? 우리 일도 되는거죠.”

 

답답이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녀석은 입술을 달싹이며 뭐라고 소곤소곤 속삭였고, 후끈거리던 내 손은 찬물을 만난 것처럼 차갑게 식었다.

 

다음부턴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되요.”

무리는 무슨.”

 

내 말이 뭐가 우스은지는 모르겠지만, 답답이는 씩 웃으며 내 손을 한번 꽉 움켜쥔 뒤에, 손을 놓고 주설과 함께 가게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인테리어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하긴, 우리가 이 집을 처음 구매할 때만 해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접스러움에 경악을 했던걸 생각하면, 뽕밭이 바다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만큼이나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제 가게도 열었으니, 다음 행선지로 가는건가요?”

...... 그랬으면 좋겄지만, 안직은 아녀유.”

? 왜요?”

양지의 권력에게는 줄을 대서 이 가게를 열었으니, 인자는 음지의 권력을 휘어잡아야지 않겄슈?”

 

 

 

 

 

 

 

Channel 2. 아이리스

 

1624710

 

주설씨가 가게를 보는 동안, 저와 로키군은 페어 게이트 이곳 저곳을 돌면서 가정집을 방문했습니다. 운터브룩까지는 아니지만...... 이곳도 그에 못지 않게 전반적으로 궁기가 감돌았어요. 길이 형성되고 그것을 따라 취락이 형성되는 일반적인 도시와는 달리, 이곳에는 가옥들이 형성되고, 따개비가 바위를 가득 메우는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가다가...... 더 이상 붙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옥들과 길의 상태는 조악하기 이를데가 없었습니다.

 

계세요?”

뉘쇼?”

, 저희는 삼민상단이라구, 요 앞에 새로 가게를 냈거든요. 그래서 인사드리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안은 아낙은 경계심으로 잔뜩 움츠려든 자세로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무엇이 불안했는지, 그녀는 연신 끽끽거리는 철문을 동앗줄 마냥 꽉 움켜쥐고 있었지요. 그런 태도에 로키군의 한쪽 눈썹이 꿈틀댔지만, 저는 아낙네가 로키군의 행동에 경계를 더 할 새라 재빠르게 그녀 앞에 광주리에 든 떡을 내밀었습니다.

 

그냥 빈손으로 인사드리면 실례잖아요.”

아이구 그냥 인사를 혀도 될 것을 뭘헌다구 이렇게 준비를 혔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철문을 꽉 움켜쥔 그녀의 손은 어느새 떡을 받아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저는 그녀가 놓치지 않도록,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떡을 행주에 싸서 아낙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나중에 마실 한번 하러 오세요.”

아따 아가씨가 요로코롬 허는디 안가고 배기겄소. 내사 날잡고 한 번 방문 혀야제. 근디 뭔 장사를 허는거요?”

, 저희는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어요. ......”

 

떡 앞에서 허물어지는 그녀의 경계심에, 문이 조금 열려 마당의 모습이 살짝 드러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마당 안을 살펴보았어요. 그 안에는...... 바깥 만큼이나 지저분해보였습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잡동사니들이 집안의 주인들을 구석에다 밀어둘 정도였지요. 문득 본다면 눈살이 찌푸려질 광경이겠지만, 그냥 눈살을 찌푸린다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겠지요. 물론 저는......

 

공병이나 폐지도 받으니까, 들고 오세요.”

...... 알겄네. 준거는 감사히 잘 묵겄소. 광주리에 떡 쌓인거 보믄 갈질이 한참일 것인디. 욕 보시요.”

감사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니죠. 이렇게 아주머니의 마음을 사로잡고 난 뒤에,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밥값은 확실히 하는구먼.”

밥값만 하겠어요. 그 이상을 하는 거지. 세상에 어떤 주주가 이렇게 회사일에 발 벗고 나서겠어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

주설 녀석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인거 같다. 우리한테서 그 집을 살 때만 해도 지독하게 멍청한 줄 알았는데.......”

속으로는 그런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둔거 말이죠?”

그래. 어쩌면 녀석이 군소리 없이 이 집을 산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걸 계획한 것 같단 말이야.”

“.......”

 

로키군의 말이 공감 되는 것이...... 저희가 떡을 안고 상점을 나서기 전에 주설씨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녀는 양지의 권력에 줄을 대서가게를 열었다고 표현한 반면에, 음지에 권력에 대해서는 틀어쥔다라고 표현을 했지요. 그것만 보아도 그녀가 그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었어요. 그녀의 계획을 듣다보면, 과연 지금 우리 앞에서 큰 그림을 그리던 그녀가, 불과 두 달 전쯤에 역전광장에서 있었던 마피아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제 가정이 맞다면, 그녀는 실로 오래전부터 발톱을 숨겨오고 있었던 거겠죠.

 

라스알하게인들과 논쟁하지 말라는 격언이...... 이런 점에서는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치밀하고, 계산적이거든요.

 

 

 

 

 

 

 

Channel 1. 로키

 

1624715

 

가게는 오픈빨이라는 것이 있어, 처음 1달은 장사가 무척 잘된다고 한다. 이때 사장이 보이는 태도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 앞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 만약 사장이 초기의 성공에 안주하여 연구 개발을 등한시 한다면 전자의 결말에 처할 것이고, 초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연구 개발에 착수한다면 후자의 경우로, 아니면 그 이상으로 뻗어갈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레가 없기에 끊임없이 자맥질을 해야 하는 상어처럼, 성공을 위해서는 이끼가 낄 새도 없이 굴러야 한다는 것이 기업가 정신의 기본이라는 건데....... 주설은 노력이라는 것에 한정한다면 앞서의 명제에 제대로 부합하는 인물일 것이다. 다만...... 내가 이렇게 노력에 한정한다면이라는 단서조항을 단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다시 한 번 해보드라구. 그니께 양아치 새끼덜이 우덜 물건을 툭툭 쳐. 그라믄 어떻게 혀야뎌?”

일단은 경고를 해야지.”

근디 말을 안 들어먹어. 그라믄?”

직무 유기를 하는 귀를 얼굴에서 분리 시켜야지.”

뭔 소리여 시방!”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설은 빽하고 소리를 지르며 쥘부채로 내 어께를 쳤다. 나는 벌겋게 달아올라 열기를 뿜는 내 안쓰러운 어께를 어루만졌다. 못난 주인 때문에 잔뜩 얻어맞은 어께는 내 손가락이 닿기만 해도 찌르는 통증을 호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왤케 폭력적이여? 써비스 몰러? 고런 놈덜도 언젠가는 우덜의 손님이 될지도 몰르는거 아녀?”

지금 니가 나한테 하는 행위도 폭력의 범주에 포함되는거 같은데.”

에헤이! 이거는 지도와 편달이지.”

 

녀석의 노력은 그 강도와 성실성 만큼은 인정하는 바이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정받을 만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북쪽으로 간다고 말하면서 남쪽으로 내달리는 것과 하등 다를바가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마피아를 포섭하는 거랑, 나를 이렇게 후드려 패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나에 대한 폭력을 지도와 편달로 포장하는 건 또 무엇이고

 

근본적으로 그놈들하고 양아치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한 거야?”

........... 그건.”

 

그녀는 내 질문에 의표가 찔렸는지 쥘부채를 펴 자신의 얼굴을 부쳤다.

 

...... 아니겄어?”

“.......너 진짜 죽고 싶은 거냐?”

 

주설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민망했는지, 더욱 과장되게 부채를 부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의뢰와 상관없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하아...... 진짜 내가 무슨 생각으로 녀석의 팔을 잘랐는지 모르겠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치도곤을 내주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하는게 어때요?”

 

더는 이 재미없는 촌극을 가만히 보고 넘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답답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의 개입에 나의 불안감은 한층 더 깊어졌다. 이 녀석의 입에서 묘책을 가장한 무슨 뻘소리가 나올지가 걱정이었다.

 

무슨 방법이라두 있는겨?”

일단 주설씨가 마피아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건 사실이잖아요? 이 가게를 들르는 누군가가 주설씨를 알아본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마피아에 소속된 사람일 가능성이 크겠죠.”

 

답답이의 제안에, 나는 귀가 번쩍 띄였다. 세상에, 저렇게 괜찮은 생각이 어떻게 답답이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설을 바라보았고, 주설의 얼굴에 어린 표정을 보건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괜히 억울해지는데? 답답이가 진작에 그 말을 했다면, 내가 굳이 주설에게 얻어맞아가면서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았나?

 

 

 

 

 

 

 

Channel 2. 아이리스

 

1624715

 

걱정과는 달리 제 제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로키군은 볼이 퉁퉁 부은 채로 진작에 말해줬으면 이렇게 두들겨 맞지는 않지 않았냐.’라며 툴툴댄 것만 빼면 말이죠. 그러면서도, 로키군은 자기 할 몫은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제가 낸 제안에 좀 더 디테일을 붙이더라구요. 예를 들자면......

 

이거 답답헌디 굳이 써야 허는겨?”

이런 걸 해야 나중에 드러났을 때 임팩트가 사는 거야.”

아니 뭔 깜짝 파티도 아니고...... 나가 갸덜을 굳이 놀래켜야 할 이유는 뭐여?”

 

주설씨는 그렇게 궁시렁 대면서도 결국 우리가 건네준 부르카를 걸쳤습니다. 아무래도 온몸이 가려지다보니, 그녀의 팔도 또한 보이질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로서는 일견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이김에 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요.

 

로키군의 디테일이 더해진 우리의 작전은 이랬습니다. 이곳이 마피아의 수중에 있으니, 이곳에서 가게를 연다면 십중팔구 마피아나, 그들의 영향권 안에 있는 조무래기들이 우리 가게에 높은 확률로 시비를 걸겠지요. 잠깐.......만요. 로키군이 그들을 혼쭐내주면, 아마 원래 무리가 우리를 덮칠거다? 뭐 이렇게 생각한거에요?

 

저희 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주설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주적은 마피아이지, 그들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조무래기들까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그들도 언젠가는 우리의 고객이 될거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보충을 한 거에요. 주설씨의 이른바 만으로는 이들이 마피아인지, 아니면 동네 양아치들인지 확신을 할 수 없으니, 안전장치를 하나 마련하자는 거지요. 그건 바로......

 

어서오세요.”

어서 오시긴 지미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라니, 벌써 안전장치를 이렇게 써볼 기회가 마련이 되네요. 언 듯 보아도 하수인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사내는 우리의 인사에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뱉는 걸로 답을 했습니다. 로키군은 물론이고 저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태도였지만, 주설씨는 흔들림이 없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브루카로 얼굴을 가린 터라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 도리가 없긴 했지요. 그는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있기라도 했는지, 우리의 예상범위에서 찰싹 달라붙어 한치도 벗어남이 없는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든 행동들이 어서 내게 시비를 걸어봐라.’라고 사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주설씨는 우리가 혹여라도 실수를 할 새라 손을 들었고, 우리는 그녀의 신호에 따라 가만히 있었습니다. 청년은 우리를 도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주설씨의 제지 때문인지 쉽지 않았어요. 결국 사내는 가게를 몇 차례 빙빙 돌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작전을 바꾸기로 했나봐요. 그는 로키군의 눈앞에 떡 버티고 섰습니다.

 

니가 여그 기도냐?”

......?”

기도도 모르냐? 본께로 이짝 업계에는 츰인갑네잉.”

 

예상치 못한 우리의 무지에 남자는 퍽 당황한 듯 하다가,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려는지 로키군의 어께를 툭툭 건드렸습니다. 주설씨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이 남자가 보이는 생명경시의 태도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지요. 다만 로키군은 남자와 눈을 마주치는 대신에 주설씨를 흘긋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취하는 액션에 따라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 같은데, 그것이 오히려 남자에게는 이 녀석 내 눈을 피하는데?’라는 또 다른 착각을 낳게 만든 모양입니다. 그는 기고만장해져서 로키군에게 어께동무를 하고는 허우대는 멀쩡한거 봉께로 쓸만허겄구만, 인자부터 성이라고 혀라.’라는 낯뜨거운 소리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주설씨가 결국 브루카를 벗었습니다.

 

손님, 아무리 친근혀두 우리 사원헌티 너무 격없이 허시는거 같은디.......”

“.......뭣이여?”

 

남자는 자신의 말을 잘라먹는 주설씨에게 화를 내려다가, 브루카 안에 감춰져 있던 주설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어라......? 이거, 처음부터 우리가 원하던 걸 찾은 건가요?

 

이 씨벌련이 여그서 잠수타고 있었냐?”

 

 

 

 

 

 

 

Channel 1. 로키

 

내 앞에 서 있던 이 남자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는 주설을 보는 순간 별생각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비정한 마음의 상태가 영 좋지 않을 때 우리 가게에 나타난 것이었다. 주설은 내게 눈짓을 했고, 나는 곧바로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 이 남자는 주설을 보며 주머니칼을 빼들었지만 여기서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녀석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란, 주설을 보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의 얼굴에 무언가가 날아드는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비정한 마음의 통제를 빗겨난 내 감정 실린 주먹이 녀석의 광대뼈에 묵직한 상흔을 남겼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녀석의 입에서 피가 섞인 침과 함께 하얀 물체가 후두둑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와악!”

 

녀석은 무언가로 꽉 찬 입에서 나오는 투박한 비명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럭저럭 많은 수의 실전을 통해 경험적으로 깨우친 바가 있다면, 먼저 타격을 가한 쪽에서 자신이 선점한 유리한 고지를 계속해서 유지하려면, 타격을 입은 상대가 정신을 차릴 새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사내의 몸 위에 올라타 녀석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땅에 두어 차례 찧었다. 녀석의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니가 초대장을 날라줄 비둘기냐?”

...... 뭔 씹소리여.”

...... 아직 길이 덜 들었구먼.”

 

기본적인 은유를 모르는 이 낭만 없는 남자에게 나는 뺨을 몇 차례 후려치는 것으로 은유법의 아름다움을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 주었다. 녀석의 뺨이 움푹 꺼지는 것으로 보아, 내가 아까 본 하얀 물체가 녀석의 치아였다는 심증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몇 차례의 따귀가 오가자 그는 코 뿐 만 아니라 입에서 피를 질질 흘렸다.

 

너는 뭐라고?”

...... 나넌.”

응 말해봐.”

나넌......”

따라해. 나는 비둘기다.”

비둘기다.”

틀렸어.”

 

나는 녀석의 뺨을 다시 한 번 후려쳤다.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눈망울에는 분명 따라하지 않았냐?’라는 억울함 섞인 원망의 감정이 보였지만, 틀린 건 틀린 거다. ‘비둘기다.’라는 말 앞에 나는이라는 어구를 빼먹지 않았는가. 정확한 문장요소가 결합되지 않으면, 그 뜻은 명료함을 잃고 다의성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선 내게 모욕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

 

다시 따라해 봐. 나는 비둘기다.”

.....나넌 비둘......기다.”

그래,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구먼. 나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말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의미가 명료하게 전달이 되는군.”

시벌...... 뭐라고 허는거여.”

됐고, 우리 사장이 할 말이 있을 거야. 비둘기면 비둘기답게 편지를 잘 전달해라.”

 

이만하면 메신저로서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이 됐다고 판단되어, 나는 주설에게 차례를 넘겼다. 남자는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는지 연신 씨근덕댔지만, 아까에 비하면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주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설은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마이크가 넘어온 것이 당황스러운 듯 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고 메신저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했다.

 

너그 그...... 뭐냐. 패밀리 있지?”

“......”

그 패밀리헌티 잘 전달혀. 우리가게는 자릿세고 뭐고 낼 생각 1도 없으니께, 괜히 사람 불러다가 행패부리는 수고같은 건 안하는 게 신간 편할 거라고 말여.”

“......”

알겄냐?”

“.......”

로키.”

?”

쩌놈...... 귀가 먹었는 가 본디?”

그래?”

 

나는 주설의 메타포를 알아듣고 다시 한 번 손을 치켜들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이 말했던 이른바 비둘기 론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주설씨의 전언을 안고 갔던 사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많은 수의 동료들을 데리고 돌아왔거든요. 그는 자신이 당한 이른바 부당한 처사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 씨벌 다 엎어브러!”

 

분기탱천해서 우리 삼민 상단을 세간 살이 한 조각 남겨놓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설 리가 없을테니까요. 그의 지시에 모두가 와하고 들고일어나 우리 가게를 덮쳤고, 이내 우리가 들여놓은 물건들이 공중으로, 사방으로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과하다 싶은 그들의 액션에 불안감이 들어 로키군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의 모습을 찬찬이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그랬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주설씨가 한 말이 있었거든요.

 

넘덜이 오믄 암만해두 울 가게를 뒤집어 웊고 지랄을 허겄지. 그려두 로키 니는 가만이 있어야 혀.”

왜 그래야하지? 녀석들이 너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지지 않았나?”

대신에 여그 행정체계가 핫바지가 아니란 것두 확실히...... 알게 됐자너? 글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가만이 앉아가지구 멍때리믄 우덜이 상당히 곤란시러워지지. 로키 니는 쟈들이 뒤집어 엎든 말든 그거는 신경 꺼버리구 두 가지를 확인해야 써.”

두 가지? 그게 뭔데?”

첫짼, 전번처럼 시방 와서 뒤집어엎는 넘덜 리더가 누군지 확인해야 한다는 거랑, 둘째는.......”

 

로키군은 물론이고, 로키군의 옆에 서 있는 저도 눈을 바쁘게 놀리며 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붉은 머리칼을 한 사내...... 그를 찾아야만 해요.

 

음마? 저게 누구여? 이야...... 반갑다? 이 시벌럼아.”

 

동료들이 가게를 뒤집어 엎는 것을 구경하던 사내가, 로키군을 발견하자마자 껄껄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맞아요. 바로 그입니다. 프로하기온 역 하차장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로키군에게 제압당했던 바로 그 사내였어요. 그때도 그랬지만, 그날 이후로 더욱 운동에 매진을 했는지, 그의 몸은 한층 더 우락부락해 보였지요. 그는 로키군을 향해 손을 까딱까딱했지만, 로키군과 저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야 뭐......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 발이 굳어버린 탓이 컸지만, 로키군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요. 로키군은 사내를 보자, 찰흙 두상의 입가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반겼습니다.

 

오래간만이군.”

이야, 이거 전번에 빚을 갚을라구 프로하기온 일대를 이 잡듯이 뒤졌드만 귀신같이 사라져가꼬 내사 입장이 제법 난처했는디 요로코롬 알아서 겨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야?”

나를 찾았다고? 이 잡듯이? 유머감각과 기억력을 등가 교환한 모양인데, 찾긴 뭘 찾아. 그날 지갑 흘린 것도 모르고 줄행랑을 놓던 놈이.”

 

로키군의 응수에 그는 머리터럭만큼이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로키군의 신랄한 말이, 그것과 극렬한 대조를 이루는 무표정한 얼굴과 어우러져 그의 감정을 더욱 상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쨌거나 로키군의 도발은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 그는 성난 코뿔소처럼 로키군에게 내달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주설씨가 계획한 대로에요. 이제 가장 큰 고비만 남은 셈입니다. 로키군의 입장에서는 마뜩잖겠지만, 주설씨가 그리려는 큰 그림을 완성하려면 로키군은 어쩔 수 없이......

 

솜씨 없는 요리사가 태워먹은 검은 빵 같은 사내의 주먹이 로키군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습니다.

 

 

 

 

 

 

 

Channel 1. 로키

 

주설의 지시는 내게 있어서는 정말로 가혹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저 근육량만 무식하게 키운 저 근육돼지가 자신의 체중을 싣은 주먹을 그대로 맞아야만 한다니 말이다. 일단 아픈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저렇게 느려터진 주먹에게 뺨을 내준다는 건, 내 직업을 생각하면 모욕이나 다름이 없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이라면, 옛 동료들이 이 통한의 똥꼬쇼를 지켜볼 일이 없다는 거겠지. 만약 이 광경을 펜릴이 본다면...... 성난 코뿔소 드립을 갱신할 새로운 래퍼토리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먹이 내게 날아 들어온다. 아니, ...... 저속 재생하는 것 같은 저 느려터진 속도를 생각한다면 날아온다.’는 수식어는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으니, 기어들어온다고 수정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예전에 마스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상대가 내게 적의를 품고, 내게 주먹을 휘두르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이다. 소위 실전파를 자칭하며 되먹지 않은 이론이나 주절거리는 망상가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그것을 지적하자 마스터는 멋쩍어 하면서 그 발언을 철회한 바가 있는 이른바 흑역사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흑역사가 진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나저나...... 이거 대체 언제쯤 내가 이 주먹에 맞게 되는걸까?

 

빠득!”

 

영겁과 같은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녀석의 주먹이 내 광대뼈에 닿았다. 그래도 두부살 물렁뼈는 아니었는지 녀석의 주먹에 맞은 내 뺨에서는 뼈가 어긋나는 파열음이 났다. 뼈를 부술 정도라...... 저정도면 확실히 주설이 눈독을 들일만 한 것 같다.

 

머릿속의 수다쟁이가 녀석의 주먹에 대해 품평을 하는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떠올랐고, 광대뼈에서 시작된 통증은 한지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처럼 서서히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 이거 지독하게 아픈데. 답답이가 회복은 시켜줄 것만 믿고 알겠노라고 했지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크악!”

 

나는 녀석의 주먹을 얻어맞고, 그대로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다행이 마지막 순간에 얼굴을 튼 덕분에, 턱뼈까지 박살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는건 무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왼쪽 뺨이 욱씬거렸다.

 

인자는 니를 찾던 애타는 내 맘을 알아주겄냐?”

그래...... 꽤나 열렬한 사랑을 했구먼...... 근데...... 아오, 이거......어쩌냐?”

뭐가?”

난 남자는 별로 안 좋아 하는데.”

 

이제 한 대를 맞았으니, 명분이 섰다. 주설은 절대로 상대가 먼저 나를 가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건드려선 안된다고 당부를 했거든. 아마 법률이 정한 정당방위를 기대한 모양인데, 이거 정당방위만 따지다가 사람이 먼저 죽을 판이다. 어쨌거나 명분은 명분대로 챙겼으니, 녀석을 두들겨 패도 된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녀석이 내게 달려들기 전에 재빠르게 그를 향해 내달렸다.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사내는 그 육중한 몸을 놀려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딴 느려터진 주먹에 맞을 리도 없고, 더 맞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곧게 뻗은 녀석의 팔을 짚고 더욱 높이 도약했다. 녀석의 정수리가 내 발밑에 보였다.

 

나는 녀석의 관자놀이를 무릎으로 찍었다. 무릎이 찡해지는 것이, 유효한 타격이 들어갔다는 확신을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녀석의 고개도 오른쪽으로 홱 꺾였다. 하지만

 

나가 말혔지? 니를 존나게 찾았다니께?”

이런 시발.”

 

녀석은 쓰러지는 와중에 내 발을 잡고 그대로 나를 날려버렸다. 부서진 광대뼈 때문에 눈이 흔들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착지는 그럭저럭 해냈지만, 거리감이 부족해서 그만 발을 삐어버리고 말았다. 이거 오늘 스타일을 이만저만 구기는게 아니구먼. 애초에 저 거지같은 선빵을 맞는게 아니었다. 주설 이 새끼...... 그래서 나한테 이길 생각은 말고 물고 늘어지기만 하라고 한 건가? ‘비정한 마음이 좀 더 멀쩡했다면, 돈될일 없는 자존심 따위는 얼른 포기하고 합리적인 공략법을 찾았을 테지만....... 오늘은 이쪽도 영판 컨디션이 별로인지라, 결국 나도 자존심의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오늘 병풍 뒤에서 흠향 하는겨?”

누구? ?”

아니, 니여.”

 

나는 녀석과 지독하게 치고받고 싸웠다. 아무리 기동성을 빼앗겼다고 했지만, 이제껏 의뢰를 해오던 것과는 정 반대로 임했던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녀석이 때리는 대로 맞았고, 녀석은 녀석대로 내가 후려치는 대로 맞았다. 처음엔 광대뼈가 지독하게 아파왔지만, 몇차례 치고박다보니 이젠 광대뼈가 아팠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 저 근육돼지 새끼.

 

맷집이 보통이 아닌데?”

나가 여까지 꽁으로 올라왔겄냐? 남부럽지 않게 때려 불라면 남부럽지 않게 쳐 맞아보기도 혀야제.”

 

결국 녀석에게서 마운트를 빼앗겼고, 녀석은 내게 아낌없이 파운딩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으로서도 공격의 방향성이 한정되어 있었고, 나도 바텀인 상황에서는 굳이 발에 대한 의존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누운 채로 위빙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녀석의 공격을 흘려낼 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였기 때문에, 결국 나는 온몸이 욱신거릴 정도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음마? ! 짭새 떳는갑소. 인자 정리혀고 갑시다.”

어 그려. 이거...... 아쉽게 됐네잉. 남은 건 할부처리 되냐?”

 

녀석은 부하의 말에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그건 녀석의 오산이었다. 주설이 그리는 큰 그림을 완성하려면, 나는 이 녀석을

 

“......미안하지만 고객님, 저희는 현금만 받습니다.”

 

붙잡아야 한다. 녀석은 내 팔을 뜯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내 악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경찰들이 들이닥쳐 우리들을 체포했고, 녀석은...... 우리를 향해 욕지꺼리를 쏟아내며 경찰에게 끌려갔다.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의 희생덕분에 작전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 가게에 침입해온 마피아들은 이곳의 수비대원들에게 붙들렸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구치소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로키군의 희생이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현행범은 영장을 청구하지 아니한다.’라는 만민법이 이곳 사막의 도시에도 그 효력을 발휘한 덕분이겠지요.

 

로키군의 얼굴이 이토록 크게 부어오른 것은 처음이었던 지라, ‘과연 효험이 있을까?’ 하는 다소 불경스러운 의문이 들긴 했지만, 다행이도 기도는 곤죽이 된 얼굴도 완전히 복구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문을 읊으며, 아버님의 권능을 행사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의료법은 지독한 악법인 것 같아요.

 

로키군의 상처를 수습한 뒤에, 우리는 먼저 구치소로 간 주설씨의 뒤를 따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로키군과 몇 달을 지내보니 이전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경시청 건물이, 지금에 와서는 들어가는데 정말 고역스러웠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위조된 신분증이 있으니 별다른 저항이 없지만 아무래도...... 심리적으로는 저항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내가 과연 이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안고 문턱을 넘어야만 했습니다.

 

수비대원의 안내를 받아가며 우리는 취조실로 들어갔습니다. 취조 1실이라는 허름한 명패가 걸린 문에서는 거친 고함소리가 우리의 고막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아가며 문너머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결박된 채 의자에 고정되어있었습니다.

 

! 씨벌럼년들이 다 모였구만!”

이렇게 보니 나름......반가운데?”

반갑기는 니미 뽕이다 이 새끼야. 그나저나 아주 대단들 하셔? 이런 식으로 우덜헌티 빅엿을 멕일줄은 생각도 못했어야.”

너그들 겉은 양아치 새끼덜 상대할라믄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지. 거 듣자하니 합의라는 좋은 것이 있다는디...... 해줄까?”

 

반쯤 약을 올리는 주설씨의 물음에 붉은 머리의 사내는 가운뎃손가락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주설씨도 곤조가 있는 여자라 그런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켜 올라간 그의 가운뎃손가락에 자신의 명함을 끼워 넣고, ‘생각 있으면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를 데리고 취조실을 나섰습니다. 문지방 너머로 종이를 박박 찢는 소리와 함께 모공이 송연해지는 고함소리가 거칠게 넘어왔습니다.

 

잃어버릴 것 없는 놈이라 꽤나 완강한데?”

글씨, 내 생각은 달러......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상, 잃을 거 없는 넘은 없는거여.”

 

주설씨는 곧바로 사건을 맡은 담당자를 찾아갔고, 그와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담당자는 그녀에게 시종일관 공손한 태도를 보였고, 그녀는 격조에 맞게 그를 대했다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주설씨의 요청에 담당관은 자신의 부하직원을 불렀고, 서류더미 속에서 부하직원이 헐레벌떡 달려와 상관에게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담당자의 손에서 그녀의 손으로 넘어왔지요.

 

이건 뭐에요?”

갸가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거쥬.”

가족을 건드리겠다는 건가?”

녹림당이 왜 청산에 마을을 맹글었는지 알어? 수년간의 투쟁을 하믄서...... 수많은 변절자가 있었지. 우덜헌티는 권력이나 부에 대한 약속 겉은 걸로는 씨알도 안 멕혔지만...... 가족의 모가지에 칼을 들이대믄 결국은 넘어오게 되더라 이거여.”

효율적인 방법이긴 해.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이나 재정적인 손실을 감내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거니까.”

암만.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거 같은 넘덜도, 처자식, 부모성제 앞에서는...... 피가 철철 나게 마련이여.”

 

쪽지가 가리키는 곳은 라거 하우스였습니다. 이곳에 대해서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프로하기온에 처음 정착했을 때 로키군이 이곳의 지리를 알아야 한다며 지도를 제게 건네주고 숙달을 시켰었어요. 그때 라거 하우스라는 명칭을 보고 저는 적잖이 흥분을 했습니다. 라거라면 맥주를 의미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는 그곳에 가면 맥주가게가 거리마다 즐비하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사막의 더위를 맥주로 날려버리는 장면을 상상했거든요. 저는 로키군에게 라거 하우스에 데려다 달라고 고집을 부렸고, 로키군은 대체 무슨 이유로 저기를 데려다 달라고 하는 거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결국 며칠을 떼를 쓴 끝에 저는 목적을 이룰 수 있었어요. 사막의 더위에 지쳐있던 저는 목을 때리는 맥주의 타격감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큰 꿈은 라거 하우스의 실체를 보자마자 보기 좋게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뭐랄까요? 그곳에는...... 먼지를 뒤집어 쓴 창고 건물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죠. 우리가 맥주를 지칭하는 라거라는 단어는 창고에서 유래되었다는 걸 말이에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에피소드였지만, 그때의 실망감은......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그 민망함은...... 두 번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계세요?”

뉘셔?”

 

개업 떡을 돌리는 마음으로 집주인을 부르자, 허름한 창고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기름때로 반질반질해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프로하기온의 여성들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머리에 부르카도 걸치지 않고 있었어요.

 

여기가............ 리겔씨의 집인가요?”

맞기는 헌디...... 뉘시유?”

저희는.......”

리겔의 친구입니다.”

 

친구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반갑게 맞이하는 게 보통이죠. 그래서 웬만하면 초면사이에는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찾게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저희의 일반적인 상식이 어긋나 버린 모양입니다. 그 마법의 단어를 듣자마자, 그녀의 얼굴은 우거지가 울고 갈 정도로 팍 구겨졌습니다.

 

뭐요? 그 망나니새끼가 오늘도 거하게 사고라도 쳤소?”

......그게.”

민티카 이년아! 손님헌티 그게 뭔 말버릇이여! 아이고 우리 아 친구라고 허던디 못난 아덜이라 죄송허요.”

 

젊은 여자의 뒤를 따라오던 노파는, 앞서오던 여자의 말투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잔뜩 얽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찰싹 때리고는 우리에게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 앙상한 몸으로 어찌나 허리를 굽히시던지, 허리가 꺾이는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어요. 노파의 사과에 저와 주설씨는 물론이고 로키군까지 허리를 굽혀 맞절을 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맞절이 간신히 끝을 내고, 노파는 우리에게 우리 아들이 혹시 사고를 쳤습니까?’라고 이야기를 꺼냈어요. 이거 참...... 어머니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하나 난감한 생각이 들던 차에, 주설씨가 별안간 폭탄발언을 꺼냈습니다.

 

어휴, 아녀유...... 갸가 인자는 맘 잡구 살기로 혔어유. 오늘 여그 온 것두, 갸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건디유 뭘.”

? 뭐시여? 취직?”

. 그려유. 멀쩡히 세금 내는 데여유.” 

갑과을의 최근 게시물

짱공일기장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