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미웠다

고수 작성일 23.04.04 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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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수억의 빚을 남기고 빚쟁이들을 피해 잠적했다.

 

어머니는 그 빚을 갚으며 나와 여동생을 키웠다.

 

매일 밤 찾아오는 양복입은 사내들의 폭언와 폭력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지금도 상대가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몸이 굳는다.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방대를 졸업하고 작은 기업에 취직해 어떻게 나 하나 먹고 살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동생이 도박에 빠져 수억을 빚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빚을 갚고 또 동생의 빚을 갚아 갔다.

 

동생 빚 1억을 어머니가, 1억을 내가, 남은 1억은 동생이 개인회생을 통해 갚았다.

 

그리고 어느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암이라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비를 내고 아버지와 정리를 했다.

 

어느새 나는 중년이 됐고 어머니도 너무 늙어버렸다.

 

이제는 끝났을까, 하던 중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를 유산했다고 한다. 결혼한적이 없으니 상상은 갔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임신기간동안 일을 못해 개인회생이 밀려 있었다. 갚지못하면 그동안 갚아온 모든게 사라질 상황이었다.

 

하늘이 미웠다.

 

어머니 처럼 살기 싫었것만, 평생 남의 빚만 갚던 어머니 처럼 나도 그러고 있었다.

 

엊그제 그녀를 만나 이별을 통보했다.

 

상황이 나아지면 결혼하자고 차일피일 미루다 둘다 혼기를 놓쳐버렸다.

 

너무 미안해서 울수밖에 없었다.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조금 남아있던 퇴직금을 모두 받아 동생을 줬다.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터럭만큼의 미련도 없이,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다.

 

아, 하나 남아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르고, 아마도 그게, 내게 남은 마지막 소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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