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방은 어둡다. 한 남자가 길을 걷고 있다. 칠흑같이 어둡지만, 손정등이나 초도 없이 캄캄한 길을걷고 있었다. 그건 남자의 몸속에 기생하는 이존재의 힘이었다. 곳곳에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허나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사람들은 불 없이는 나다니지 않는다.이괴수는 인간의 머리를 좋아한다. 이괴수는 빛을 싫어한다. 그 이유때문이다.
남자는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전쟁의 폐해에도 이 건물만은 무너지지 않았다.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가 반쯤 기울어진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생각한다. 신은 있는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철문의 되창이 쓱 열리다니 사람의 미간이 보인다. 주름진 미간. 문 안쪽의 사람이 말한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쉴 곳을 찾고있습니다.잠시만이라도 쉬어갈수 있을까해서요.- -그러십니까? 들어오세요.-
되창이 닫히고, 철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남자를 맞이한건 성당의 신부였다. 교회안은 촛불들이 켜져있어 생각보다 환했다. 주황 빛이 감도는 교회안. 고요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며, 가슴이 저미는 외경심을 남자는 느꼈다.오랫동안 빛을 보지못한 남자는 눈을 찡그리다. 이내 눈에 익숙해졌다. 신부가 묻는다.
-혹시..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살던 곳에선 저를 검생이라 불렀습니다.- -검생이라...칠흑같은 길을 불도 없이 걸으셨군요...- -네. 이젠 이 어둠에 익숙해졌나봅니다..하하.-
검생은 멋쩍게 웃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피가 묻은 자신의 손을 뒤로 감쳤다.길을 걸으면서 이괴수를 죽이다 묻은 피였다.사람의 피처럼 붉었다. 검생은 주제를 바꿨다.
-여기는 무척 환하군요.- -예. 그렇습니다. 초가 많이 구비되있거든요. 아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김신규신부라고 합니다. 그냥 김신부라고 부르세요.-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 검생은 김신부에게서 이유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검생 안의 이존재가 크크 하고 웃는다.
[어이 이봐, 저 박신부라는 녀석에 이괴기생수가 느껴져.]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녀석 몸에 이괴수가 기생하고 있어. 뭐 나하고 차원이 다른 약한 하찮은 녀석이지만.]
검생은 박신부를 쳐다본다. 선한 눈빛. 나이에 알맞게 주름이 진 얼굴은 인자한 인상이 풍겨나왔다. 선한 사람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검생이었다. 검생은 우선 비밀로 하기로 했다.나쁜 사람같지는 않고, 피차 피곤해질테니. 검생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갑자기 외람된 질문이지만...신은... 있는 걸까요? 세상이 왜 이렇게 x같아진거죠? 아! 죄송합니다. 말이 험해졌네요.저도 모르게...그만...-
김신부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다. 그도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터였을것이다. 한참후에야 입을 뗀다.
-솔직히...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들어서 신의 대한 회의를 느낍니다. 허나...이게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지요...- 김신부의 말끝에 씁쓸한 여운이 감돌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십자가 앞에 한 어린 소녀가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아 묵주를 잡고 기도를 하는 소녀에게서 고귀한 자태마저 느껴졌다. 기도가 끝났는지 박신부에게로 다가오고는 나를 경계하는지 박신부뒤로 숨었다. 박신부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겁낼 필요 없단다.자.인사해야지?-
내성적인 성격인지 고개를 박신부옆으로 빼꼼히 내밀고는 인사를 꾸벅한다. 검생은 그런 소녀가 마냥 귀여워보였다.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순수함을 느낄수 있었다.
-민리야. 기도는 다했지? 그럼 가서 쉬렴.-
민리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가버렸다.
-하하. 죄송합니다. 내성적인 아이라서...저 아인 전쟁 중에 태어나 부모도 전쟁 중에...지금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귀여운 아이군요. 순수함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검생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검생은 잠에서 깨 눈을 떴다. 며칠째 잠을 자지않고, 길을 걸은지라 피곤이 쌓여 오랫동안 잠에 취한 것 같았다. 지금이 낮인가,밤인가 하고 검생은 생각했지만, 이젠 그런 구분은 필요없을거란 생각을 하였다.언제나 어두운 검은 날이니까. 은은한 촛불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벽에 검생의 그림자가 비치인다. 사람의 그림자. 그림자는 순간 이존재의 모습을 한다. 뿔이 3개가 달렸고, 천사처럼 깃털이 있는 날개가 비치인다. 이존재를 실제로 봤을때에는 천사로 착각하기 쉬웠다. 하얀 날개와 하얀 피부 미남형의 인자한 얼굴은 천사의 그것이었다. 허나 이존재는 우리와 다른 존재.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장난치지마.]
크크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쾅쾅.
누가 세차게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저씨. 아저씨. 신부님이 아파요.-
민리였다. 검생은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한 민리가 있었다. 검생은 민리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김신부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있었다. 아픔을 참는지 입을 꽉 다물고 있었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신부님 괜찮으세요? 이봐요!-
검생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수록 고통이 큰지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봐.이봐. 이거 큰일 나겠는걸.]
이존재의 말이었다.
[계약에 의해 이괴기생수가 몸을 장악하기 시작했어. 아마 그동안 이괴기생수의 힘을 빌어 이곳과 소녀를 지켰겠지. 하지만, 이괴기생수는 나처럼 인간의 생명을 먹지 않아. 사람의 내부 장기들을 먹어치우지. 그대신 힘을 빌려줬겠지만, 내부장기가 먹히는 고통을 그동안 참아왔던거야.]
검생은 할말이 없었다. 자기가 아닌 것들을 지키기위해 자신을 희생하다니.가슴이 쓰려왔다. 자기는 그때 그러지 못했기에. 박신부는 더 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이제 곧 이괴기생수가 몸 전체를 흡수해서 밖으로 나오려할거야. 그래야 비로서 이괴기생수의 완전체가 되는거지.]
이존재의 말그대로 이괴기생수가 세상밖으로 나오려고, 온몸을 휘젓고 있었다.
-민,민리를 데리고 도망가세요. 전... 더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그,그래도...신부님을 두고..- -전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제 몸에 악마가 살고있습니다. 전 이 악마의 힘으로 교회와 민리를 지키고있었습니다.전 여지껏 검생님 같은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제 곧 제몸을 뚫고 나와 검생님과 민리를 해칠겁니다. 그리고 이괴수들이 쳐들어올겁니다.-
면밀히 말하자면 악마는 아니다.
챙그랑..쾅.
이괴수들의 침입이었다.
-어서...민리를...민리는 한번도 햇빛을 본적이 없습니다. 무례한 부탁인줄 알지만...민리에게..햇빛을...희망을..-
민리가 김신부의 팔을 붙잡고 울었다. 이괴수들의 발자국소리가 점점 커졌다. 난 민리를 팔로 들어 올렸다.
-민리야. 가자.- -안돼요..안돼. 신부님을 두고 갈수 없어요.-
검생은 가슴이 시려왔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 어린 생명은 살려야했다. 검생은 발로 창문을 깨트려 밖으로 나왔다. 이괴수 몇 마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식사중에 나왔는지 한 이괴수의 입엔 먹다 이빨에 낀 인간의 뇌수가 있었다. 난 민리를 어깨에 들쳐업었다. 이런 것들을 민리가 봐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 검생은 민리에게 말한다.
-민리야. 아저씨 믿지? 눈을 꼭 감아. 절대 떠선 안돼. 넌 꼭 살아야해. 신부님의 소원이시란다.-
눈물을 짜던 민리는 눈을 꼭 감고 검생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쿠르르.. 이괴수가 내는 소리였다. 이괴수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괴수들의 손톱이 길게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지체 할 시간이 없다. 검생은 주먹에 기운을 모았다. 푸른신형이 검생의 주먹을 감쌌다.그의 미간이 심하게 주름졌다. 그는 분노에 차있다.
파팍.
검생은 일순간에 이괴수들의 머리를 주먹으로 날려버렸다. 이괴수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더니 하나둘 쓰려졌다. 붉은 피.
크아아아아!
성당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쯔쯔.. 드디어 완전체가 모습을 드러냈군.]
이존재의 말이었다. 교회 사방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괴수들이 교회 사방으로 튕겨져나와 뒹구렀다. 창문에서 어두운 뭔가가 나왔다. 박쥐 날개를 가진 존재. 이괴기생수완전체.
[저게..완전체...] [크크. 이괴기생수에게 완전체는 숙주의 사념에 따라 변하지. 저건 김신부의 생각하는 완전체의 모습.]
크어어어!
완전체는 하늘을 향해 울부짓었다. 완전체의 목에는 십자가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앞에는 완전체의 이괴기생수.뒤에는 이괴수들. 진퇴양난이었다. 검생의 등뒤로 민리의 숨결이 느껴졌다. 민리는 검생의 옷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포기할순 없지.너의 힘이 필요해.] [크크크. 맘대로 해.]
검생은 몸, 신경 곳곳에 정신을 집중했다. 완전체가 빠른속도로 달려왔다. 검생은 기운을 온몸에 감싸고 방어자세를 취했다.그러나 완전체가 팔을 한번 휘두르자 방어자세가 흐트러지고 뒤로 쭈욱 미끄러져 나갔다. 등에 민리가 업혀있어 쓰러지지 않으려 한것이었다.
[생각보다 강해.] [크크..좀 더 집중해봐. 더 많이 더 많이. 크크크] [......]
희생.
[좋아...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민리야 내뒤에 꼼짝말고 있어야돼 알았지?-
민리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인다. 검생은 두 주먹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운을 모으기도 전에 완전체의 공격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왼쪽 팔이 잡히고 복부를 강타당했다. 검생은 우욱 소리를 내며 자지러졌고.완전체는 왼쪽 팔을 놓지 않고, 계속 복부를 가격했다. 검생은 간신히 오른쪽 손에 기운을 모아 완전체의 머리를 노렸다.그러나 이미 눈치챈 완전체가 그의 오른팔을 날카로운 이빨을 물어뜯어 버렸다.
-으아아!!-
검생의 오른 팔이 나가떨어졌다. 피가 사방으로 솟구쳐 흘렀다.검생은 비명을 질렀다. 민리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아직 끝이 아니얏!]
검생은 오른 발로 완전체의 머리를 가격했다. 완전체는 뒤로 주줌했고,그제서야 완전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제길. 무기라도 갖고 다닐걸.] [크크크. 내가 무기야. 잘 활용해보라고. 더 많이, 더 많이 생명을 받쳐.]
-젠장!!!빌어먹을!!!-
검생엔 왼손엔 검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리고 완전체의 심장을 꽤 뚫었다. 완전체는 피를 내뿜으며 잠시 울부짓더니 이내 동작이 멈췄다. 검생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끝난건가 하고. 그러나 끝난게 아니었다. 이괴수들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젠장.]
검생은 비틀거리며 일어섰지만, 더 이상 기운이 없었다. 출혈이 너무 심했던 탓이다. 떨어져 나간 오른 팔. 그때였다. 완전체는 손을 꼼지락하더니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울부짓었다.
-죽..죽은게 아니었나..하아..-
크아아아!!
맹렬히 달려드는 완전체. 검생은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전체는 검생을 지나쳐 이괴수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크크..인간치곤 대단해. 완전히 사념을 점령당하지 않았어. 희미하게나마 사념이 존재하는군.]
크어어어! 팍!탓!
이괴기생수완전체와 이괴수간의 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수에 밀리는 완전체는 이괴수들에게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일시에 완전체에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묻어뜯기 시작했다. 완전체는 사지가 뜯기고 내장이 찟겨나기 시작했다.
크아아...
완전체의 희미한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검생은 이괴수무리들과 싸우는 완전체 아니,김신부를 뒤로 하고 도망쳤다.
-아저씨...흐흑..팔이...?-
민리가 흐느끼며 말했다.
-으응..아저씨는 괜찮아..- -.....응..훌쩍...-
말끝에 힘이 없었다. 불쌍한 아이. 검생은 생각한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깟 팔도 버릴수 있다.그리고 이 아이를 빛이 비춘다는 제주도로 데려가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이 아이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은 검생이었다. 비록 자신은 희망을 믿지 않더라도. 다신 자기가 살자고 남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검생이었다.
-신은 있는거죠?- -그래. 널 지켜주실거야.-
[과연...크크크..그럴까?]
검생은 이존재의 속삭임을 무시했다.검생은 신은 자기만은 지켜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한쪽 팔이 허전하다. 이존재의 힘인지 통증이 없고, 피도 멈추었다. 씁슬한 미소를 짓고는 민리를 업고 어두운 길을 걸었다. 잠이 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제주도로 가려면 오랫동안 길을 걸어가야 할것이다. 오늘 하늘은 너무나도 슬프게 어둡다. 비가 올 것 같았다. 검은 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