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들~ 소심하고 비겁한 남자입니다.

매너리즙 작성일 09.01.11 23: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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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초년생 처음으로 부장한테 엄청나게 깨졌습니다.

 

내 잘못도 아닌지라 무지무지 서럽고 억울하고 그렇더군요.

 

금요일 사고친것에 대한 수습으로 놀토에 회사에 나와 고생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바빠요? 저녁 같이 먹어요.'

 

 

여기에서 행님들에게 조언듣고 안만나기로 결심한 후,

 

그녀에게 솔직히 다 말하고 이별을 할 순간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두근거리더군요.

 

 

'7시에 **역에서 볼께요.'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시간이 되서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이상한 감정들과 수많은 생각들과 갈등...

 

심장과 머리가 터져버릴것 같은데, 약속장소에 다와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10번출구로 나오세요."

 

 

밖으로 나가니까 하얀색 포르테가 빵빵거리더군요. 그녀였습니다.

 

 

"저 차 샀어요."

 

 

활짝 웃는 그녀 모습에 지금까지 생각하고 결심했던걸 다 잊어버렸습니다.

 

아직 운전이 서툴러서인지 핸들에 바짝 붙어앉아 운전하는 그녀의 진지한 표정...

 

왠지 웃음이 나오더군요.

 

 

"스시 좋아하세요?"

 

"찾아갈 줄이나 아세요?"

 

"어제 밤에 연습했어요."

 

 

자랑하고 싶었나봅니다. 날 만나려고 연습한건 아니겠지만... 점점 더 가슴이 뭉클해 지더군요.

 

목적지로가는 동안 아무말도 안하니까 묻더군요.

 

 

"무슨 일 있었어요?"

 

"무서워서요."

 

"연수는 많이 받았어요. 길을 몰라서 그렇지."

 

 

어렵게 목적지에 도착했고, 스시를 먹으면서 평상시처럼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무척이나 즐거워하는 그녀 모습에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도 목적이 있는지라, 은근슬쩍 운을 띄웠습니다.

 

 

"저 왜 만나세요?"

 

"재미있어서요."

 

 

공부하랴 일하랴 현재 자신의 시간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만나면 즐겁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목적에서 이탈.

 

평상시와 다른 걸 눈치챈 건지 말하더군요.

 

 

"오늘은 제가 재밌게 해줄께요. 딴사람 같아요."

 

 

정말로 재밌게 해주었습니다. 이야기도 많이하고 많이 웃고... 10시가 넘어 스시집에서 나와 그녀의 차로 갔습니다.

 

 

"집이 어디세요? 데려다 드릴께요."

 

"아뇨. 제가 데려다 드릴께요."

 

 

차는 없지만 업무상 운전은 많이 해봐서 그녀보다 제가 하는게 낳을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서툰 운전에 집중한 채론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가 그녀의 귀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습니다.

 

 

"휴 살았다. 사실 아까 겁 무진장 났어요. 누구 태워본것도 처음이고 집말고 다른데 가는 것도 처음이고..."

 

 

그러고는 보조석 쪽으로 얼른 타더군요.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슬퍼졌습니다.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았습니다. 운전을 하고 그녀 집 쪽으로 향했습니다.

 

보조석 의자를 최대한 뒤로 하고 의자에 묻히듯 편안하게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익숙해보였습니다.

 

 

"전 이게 편해요. 필요해서 사긴 했지만 운전은 정말 싫다."

 

 

누군가 그녀를 편하게 해줬겠지요. 난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말을 꺼낼 용기가 나더군요.

 

그때 마침 그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핸드폰을 보더니,

 

 

"잠깐만요."

 

 

남자친구였습니다.

 

 

"저녁 먹고 집에 가는 길이야."

 

 

조용 조용 전화를 끊고 날 보더군요.

 

 

"사실 오는 중에 남자친구가 전화했었어요. 저녁먹자고..."

 

"가지 그랬어요."

 

"선약이잖아요. 그것도 제가 만나자고 한건데..."

 

"그래도 돼요."

 

 

그녀가 웃더군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 말투 참 좋더라."

 

 

처음봤을 때, 세상일에 별 신경 안쓰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부탁했던 일을 세심하게 처리해줘서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 먹지도 않은 샌드위치 보고 좀 속상했어요. 두번째 우연히 만나서 문자 오고 갔을땐, 정말 당황스러웠구요."

 

 

친구(개미핥기)가 원흉이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네?"

 

"남자친구 입장에서..."

 

 

저는 짱공행님들하고 약속했던 걸 시작했습니다.

 

 

"지연(가명)씨 많이 좋아해요. 만나면 심장이 뛰어요. 그런데 헤어지고 나면 현실이 펼쳐지죠.

 

 10평짜리 온기없는 원룸에서 들어갈때면 더 심해져요."

 

 

전 제 지금 상황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집안사정에서부터 학자금 대출상환까지 소소한 모든 것들을...

 

 

"그런건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되잖아요."

 

"지연씨 좋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겠죠."

 

 

제가 무슨 말 하려는 건지,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두웠던 거에요?"

 

 

우울해졌습니다. 마지막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엔 하고 말았죠.

 

 

"많이 보고 싶을 거에요. 지금도..."

 

 

한동안 서로 말없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쪽에 거의 다 왔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남자들은 왜 모든 걸 다 지금 이순간 결정지으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잠자코 들었습니다.

 

 

"남자친구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도 모든게 다 일방적이었어요.

 

 난 해야할 일이 아직도 많은데... 물론 기다려 준다고 결론은 내렸지만,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말부터 꺼내죠. 신우씨 만나면 즐겁고 편해요.

 

 남자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남자친구라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신우씨는 이해해 줬고,

 

 굳이 설명할 필요없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게 좋았어요. 그런데 신우씨도 똑같네요.

 

 지금 당장 무언가 결정해야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고 내렸습니다. 그녀도 내렸습니다. 운전석 쪽으로 왔지만 날 보지 않더군요.

 

차에 탄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어디선가 들었던 멘트를 써 먹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날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차가 멈추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문자가 왔습니다.

 

 

'보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요?'

 

 

답문 안하고 그녀의 차만 바라봤습니다. 그녀가 내리더군요. 그리고 나한테 왔습니다.

 

 

"그냥 이렇게 계속 좋아해주면 안되요?"

 

"남자친구 많이 좋아하나 보네요."

 

 

나를 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있었어도 나 역시 좋아했을 거에요."

 

"여자친구 생겨도 나도 이렇게 계속 좋아해 줄께요."

 

"내가 좋아요?"

 

 

나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머리를 쓰다듬어줬습니다. 그제서야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나 이상하죠?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는 거 같죠? 나도 알아요. 하지만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해요."

 

 

그냥 안아주었습니다. 가만히 있더군요. 추운날이었는데 무척이나 따스했습니다.

 

겁먹은 고양이 한마리를 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잘 있어요."

 

 

대답이 없었습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너무 보고싶어지면 전화할게요."

 

 

역시나 아무말도 않더군요. 내가 가려고 하니까 그녀의 조그만 손에 소매를 꽉 잡았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내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한참 뒤에 그녀의 손에 힘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헤어지고 집에 왔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정말 잘한 짓일까? 하는 의혹이 생깁니다.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이거 아니면 저것으로 나뉘어져 있을까요?

 

남자친구를 정말로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생각을 바꿔놓았습니다. 옳고 그름이라는 것이 사람의 감정에까지 적용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행님들의 리플에 결심을 하고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나를 좋아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남자친구의 입장이 되어 보아라. 남의 여자를 빼앗지 말아라.

 

이런 리플들에 그녀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지만 제가 그녀의 손을 놓고 뒤돌아 선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너무너무 좋아져서 그랬습니다.

 

너무 너무 좋아져서 나로 인해 상처 받을까봐. 그렇게나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나에 대한 호기심과 갑작스럽게 찾아든 감정에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봐.

 

그래서 헤어진 겁니다. 그걸 그 순간에서야 느꼈습니다.

 

짱공행님들... 제 마음 속에서 무언가 바뀐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나마 사랑에 대한 정의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랑의 감정이란 것은 어느 순간 어떻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도덕적, 사회적 관점으로 좌우될 수 없는 이성적으로 어찌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말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너무나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양다리도 어장관리도 나를 이용하는 것도 아닌, 그냥 그 순간 그 감정자체가 너무나 크고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남자친구 입장도, 제 입장도 생각해보았지만, 정작 내가 너무 좋아하는 그녀의 입장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두고도, 또 다른 사람에게 설레는 감정...

 

그로인해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만날 수 밖에 없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감정...

 

우리는 너무 사회적인, 도덕적인 감정에 억메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그 순간, 그 느낌 그대로 누군가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고 단념하고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또 다시 성숙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행님들도 한번만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감정에 치우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남자친구를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는 그녀의 슬픈 목소리가 전 무엇을 말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님들... 섹스따위가 아닌, 진정한 사랑의 감정에는 관대해 지십시요.

 

그리고 그녀의 곁에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있어주십시요.

 

제가 그녀와 헤어진 것은 남자친구가 있어서도, 저의 지금 상황이 안좋아서도 아닙니다.

 

그 순간, 헤어지겠다고 결심한 것은...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비겁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곁에 어떠한 모습으로도 있어주지 못하는 것을 선택했으니까요.

 

행님들...

 

행님들이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녀에게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어장관리들, 흑기사든, 멍청한 물주든... 행님들이 사랑한다면... 그냥 그렇게 있어주십시요.

 

전 그녀에게 핑계를 대며 그렇게 하지 못한 비겁한 놈입니다.

 

또 다른 변화가 생기면 그때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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