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인물] 끝내 못 이룬 개화의 꿈

행동반경1m 작성일 09.10.27 2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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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에게 칼로 사지가 찢긴후 거리에 효수된 김옥균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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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 입었을때와 한복을 입었을때 김옥균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급진 개화파의 거두 백온 김옥균입니다. 어릴적 통상개화론자였던 박규수의 집에서

 

유대치, 오경석을 스승으로 모시며 박영호, 서광범, 홍영식등과 함께 개화사상을 배우고 훗날 이들과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조선에선 주요요직에 종사하였고 일본 개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지키 문하의 메이지유신 주역들과 두루 친하게

 

지냈기도 했습니다. 그는 개화에 드는 막대한 돈 때문에 1882년 수신사 고문으로 일본에가 17만원의 차관을 얻는데 성공하며

 

고종의 신임장을 가지고 400여 만원이라는 거금의 차관을 얻기 위해 일본에 가지만 명성황후의 방해 공작과 일본에서도

 

1년 조세수입의 22분 1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빌려주기에는 너무도 부담되어 실패하게 됩니다.

 

또 그는 메이지유신 성공으로엄청나게 발전한 일본을 보고 조선 개화에 더욱 더 불타 오릅니다..

 

하지만 소극적인 민씨정권을 보며 분개했고 그들과 대립합니다.

 

 

그리고 화폐주조문제와 서재필이 정계에서 축출되어 정치적으로 고립이 되자 청프 전쟁으로 군대를 베트남으로

 

돌린 청군의 사정을 이용, 결국 일본의 힘을 빌려 우정국 사업 개축연을 이용하여 갑신정변을 일으킵니다. 먼저 명분을 위해

 

고종 확보가 주요하기에 창덕궁에서 나오지 않는 고종과 명성황후를 청군이 쳐들어 왔다며 설득하고 밖에선 폭탄을 터트려

 

겁을 줘 결국 경우궁과 계동궁으로 옴겨 가뒀지만 청군과 백성들의 합세, 일본군의 배신으로 결국은 유명한 3일 천하로

 

끝나고 맙니다.

 

 

그 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도망가 명성황후가 보낸 자객을 피해 10년 동안 일본에서 도피 생활을 하지만

 

 이일식과 홍종우의 꾀임에 넘어가 상하이로 갔다가 그곳 여관에서 홍종우가 쏜 총탄 3방을 맞고 죽게 됩니다.

 

명성황후는 김옥균의 시체를 궁으로 가져와 집접 칼로 4등분을 한 뒤 위에 있는 사진과 같이

 

저자거리에 머리를 걸어두웠다고 전해집니다.

 

 

                                                                                                                           출처 : I Love Soccer - 孔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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